모두 일시 정지. 나란히 걸으며 말을 주고받던 사람도 말을 멈추고 섰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던 사람도 전화를 끊는다. 혼자 걷던 내 눈길도 한 곳에 쏠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길 위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로 모였다. 신호대기를 위해 멈춰 선 승용차의 바퀴로. 곧바로 차가 떠난 자리에 무언가 검은 물체가 남았다. 고양이. 다람쥐 만한 새끼 길고양이가 도로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숨죽이고 지켜봤다. 모두의 바람이었으리라.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고양이는 작은 몸체를 옆으로 뉘고 두 세 다리를 바들바들 떨다가, 바로 멈추었다.
"어떡해. 죽었나 봐. 엉엉"
어떤 젊은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도로 옆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노인 남자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고 와서 고양이 사체를 담아갔다. 도로에는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고, 차들은 또 달렸고 신호 대기하느라고 멈췄다. 그랬다. 어린 고양이가 길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 핏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새끼 고양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나온 건지도 모른다.
엿새쯤 지나 10월 29일, 많은 사람이 길 위에서 죽었다. 친구와 함께 세상 구경 나온 많은 젊은 생명이 스러져 갔다. 길 위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라 힘들었는데, 그 뉴스를 접하니 또 선명하게 다가왔다. 산 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했다.
위장된 평온 속 어느 날, 또 슬픈 뉴스가 보도되었다.
"참사를 겪은 A군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군은 참사 당시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홀로 살아남았다. 이후 심리 상담을 받고 학업에 더욱 열중하며 일상 회복에 힘썼지만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출처 : 시사저널)
길 위에서 고양이가 죽는 모습을 본 나도 이러한데, 아비규환 속에서 친구가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본 10대 나이의 A군은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른 뉴스를 보니, A군은 참사 현장에서 다리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의 몸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으면 어미의 가슴은 찢어진다. 다리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자식을 맞이해야 하는 어미의 가슴은 어떨까 말이다. 찢긴 가슴이 아물기도 전에, 이젠 죽은 자식을 안아야 하다니. A군의 친구는 또 어떻겠나. 친구의 죽음을 대면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까. 산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A군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어떤 정치인은 이렇게 말하여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다. 본인이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출처:매일신문)
라고 말하였다. A군에게 학교 내 심리치료와 주 2회 정도의 정신과 치료 등을 받도록 했음을 거론하였다. 한마디로 정부에서는 할 일은 다 했다는 발언으로 들린다. 사람들은, A군 죽음의 원인을 개인의 멘탈이 약해서라는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잘못된 태도라고 질타했다.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 정치인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건 정치적인 발언이다. 참사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에서도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공치사일 뿐이다.
어제 본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총탄과 폭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된 상황. 여자와 남자가 이슬람 무장 단체에 쫓기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를 재워주고 보호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담아 물었다. 옆에는 두 어린아이가 음식을 먹고 있다.
남자 : 재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은 거절할 텐데요.
은인 : 애들 때문에요. 아직 친절이 남아 있단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여자 : 몇 살인가요?
은인 : 몰라요. 우리 애들 아니에요. 숨어서 쫄쫄 굵고 있길래 데려왔죠. 부모를 못 찾겠더라고요.
남자 아이 : 샐러드 먹기 싫은데...
여자 아이 : (잠시 후, 팔을 높이 들어 접시를 닦는다.)
총탄이 난무하는 참혹한 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굶주림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돌보는 사람은, 모두의 은인이다. 무장 단체의 총탄에서 무사히 구출된 두 사람에게도 은인이지만,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영화로 보는 우리에게도 은인이다. 그에게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검색해 보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친절'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10.29 참사에서 살아남은 젊은이에게, 살아남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살아갈 희망을 느끼게 하는, 인간에 대한 친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