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문학(글쓰기)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갈래는 엄연히 다르지만 말이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둘 다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참혹한 죽음에 직면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영화 속 피아니스트가 한 고아 소년에게 말했다. 피아노로 두려움 좌절감 분노 그리고 희망을 연주해 보라고. 영화 속 주인공은 자유를 잃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나는 따뜻한 방에서 영화를 감상한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는 중이다.
"2014년 한 과격파 단체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장악하고 회교법을 엄격히 시행했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Broken keys)>의 첫 자막이다. 영화는 부드럽고 온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의 꿈'. 온화한 분위기의 그 음악. 뜨거운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의 리듬과도 같이 부드럽다. 반면에, 과격단체의 공격으로 이미 삶의 터전은 파괴되었다. 두려움과 좌절감으로 간신히 일상을 이어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는 사람, 침묵하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소파에서 책을 펼쳐 놓고 필기하며 공부하는 사람, 빨래를 널고 있는 사람,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공부를 하는 어린이. 이 모든 장면은 주인공 피아니스트 카림(타렉 야쿱 분)의 피아노 선율로 하나가 된다. 위장된 짧은 평온을 깨고 들어 오는 과격단체들. 피아노 연주를 금지했는데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서, 카림의 낡은 피아노 건반에 총구를 겨눈다. 피아노 건반이 총탄에 맞아 망가져버린다. 이미 삶의 비애로 무장했기 때문일까. 카림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카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자유로운 연주를 하기 위해 유럽으로 망명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나 망가진 피아노를 팔아야 경비를 마련할 수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피아노를 복구하고 팔았다. 이젠 유럽에 가서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아가 된 어린이가 눈에 밟힌다. 카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카림은 유럽행을 포기하고, 대신에 목숨을 걸고 지아드(고아)를 탈출시킨다. 금지된 피아노 연주를 함으로써 무장단체를 유인하여 교전을 일으킴으로써, 지아드의 안전한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 희망 없는 삶은 숨 막히게 힘든 일임을 아니까, 고아 소년 지아드의 희망을 지켜주고 싶으니까.
영화의 끝부분, 어린 지아드는 전장을 탈출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희망을 안고 트럭에 오른다. 트럭은 하얀 먼지를 남기고 떠난다. 그 순간에 카림은 폐허가 된 곳에서 확성기를 틀어 놓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검색해 보니, 베토벤이 청력 장애를 겪으며,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의지와 집념으로 희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한다. 언젠가 내 기억 속에 들어온 이 문장을 좋아한다. '미래가 밝아서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있어서 미래가 밝다.' 내 글 속에 희망을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