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by 강지영

마침내 홍시를 사 왔다. 그냥 홍시가 아니라, 주먹만 한 대봉 홍시다. 마트에 갈 때마다 홍시가 있던 자리를 눈여겨봐 두었는데, 잘 익은 홍시가 나왔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무엇이 싱싱한 건지 무엇이 맛있는 건지, 나는 잘 안다. 채소든 과일이든 딱 보면 안다. 홍시를 좋아하는 딸아이를 부른다.

"oo아, 홍시 사 왔다. 언능 와 봐."

물로 겉면을 살살 닦는다. 젖먹이 엉덩이처럼 말랑하고 부드럽다. 꼭지 부분을 떼고 반으로 쪼갠다. 칼 대지 않고 손으로 해도 잘 갈라진다. 손바닥에 놓고 작은 숟가락으로 퍼 먹으면 된다. 먹기도 편하고 맛도 좋다. 열대과일처럼 강한 단맛은 없어도 은근한 단맛이 참 좋다. 입으로 들어가기 바쁘게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oo이는 홍시를 참 잘 먹어. 그래서 나는 네가 좋다. 호호"

"잉! 근데 엄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홍시를 좋아했어?"

"그럼, 나는 홍시가 참 좋았어. 네가 홍시를 좋아하는 거 보니까, 내 딸이 분명해. 히힛"

"홍시 좋아하는 것도 유전인가 보네. 히히."

"그러게."


어렸을 적 우리 집에도 감나무가 있었다. 두 그루나 되었다. 봄에 감나무 꽃이 피고 지면 아이들은 감꽃을 주워서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감꽃 몇 개만 주워도 노란 목걸이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감잎이 단풍 들어 떨어지고 감이 익으면, 아버지는 감을 우려냈다. 감을 따서 큰 항아리에 담고 풀잎을 넣은 후, 따뜻한 물을 붓는다. 뚜껑을 덮고 항아리를 이불로 감싸서 하루 밤을 재워 두면, 생감의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큰한 감이 된다. 이른 아침에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우린 감을 먹었다.


우려낸 감보다 내가 좋아한 것은 홍시다. 때로 성질 급한 감들은 나무에서 홍시가 되기도 했다. 홍시가 되어 바닥에 철퍼덕 떨어지면 흙이 묻어서 내가 먹을 양이 줄어든다. 그러기 전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홍시를 발견하면 바로 따 먹는 게 상책이다. 가을 햇살과 선선한 가을바람은 단단한 감도 홍시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그 재주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홍시를 따 먹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엄마와 아버지는 감을 모두 따서 장독대로 가져가 큰 항아리에 담았다. 맨 꼭대기 서너 개만 남기고. 항아리에 담긴 감은 점점 말랑해져서 자연 홍시가 된다. 하나 둘 꺼내 먹고 항아리에 반쯤 남으면 감과 나는 그때부터 '숨바꼭질'에 돌입한다. 엄마는 감의 위치를 자꾸 바꾸셨다. 우리 집 장독대에는 항아리가 많았다. 빈 항아리도 여럿이었다. 어제 홍시를 먹던 항아리를 오늘 열었는데, 홍시가 보이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는다. 다른 항아리를 열어보면 되니까. 홍시를 찾을 때까지 항아리를 이것저것 열어 본다.

"아휴, 엄마는 홍시를 어디다 둔 거지?"

꿍얼대며 홍시를 찾는다. 엄마에게 홍시를 어디다 두었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가 홍시를 숨긴 걸 아니까. 엄마가 홍시를 아끼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몰래 홍시를 먹는 나를 엄마는 혼내지는 않으셨다. 엄마가 아끼는 홍시는 누구에게 주었냐면, 바로 형부였다. 그때 나는 엄마가 사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았다. 시골이라 음식을 사다 대접하기가 여러 모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 딸이 홍시를 좋아하고, 내가 홍시를 좋아하는 걸 보니, 분명히 울 엄마도 홍시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홍시를 먹는 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가 홍시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먹은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그랬던 게 분명하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소중히 아끼는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지금은 먹거리까지도 풍요롭다. 엄마에게 홍시를 얼마든지 사드릴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엄마는 이미 이승에는 안 계신다. 홍시는 엄마 생각이다.


큰언니가 좋아하는 가수 나훈아는, '홍시'를 절창했다. 나도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홍시는 그리움인 걸 알았다.



♪ 홍시 ♬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 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 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 세라 사랑 땜에 아파할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한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나훈아 작사. 작곡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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