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하는 것은 흔히 쉬워 보이고,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 사람들은 보통 대충 할 바엔 아예 안 하고 만다.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려운 건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대충, 꾸준히 하는 건 어떨까? 어려운 두 가지를 복합해 놓았으니 확실히 더 어려울 법하다. 차라리 꾸준히 제대로 했으면 했지 대충 할 건 뭐람? 하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그걸 잘 하는 사람을 아주 가까이 두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기타를 구매했다. 기본 코드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소리가 잘 나지 않았고, 많이 느렸다. 나는 좀 정확하게 줄을 잡아보라 나무랐고, 그럴 때마다 스읏하는 소리를 내며 '그냥 대충 쳐 보는 거야.'라고 나를 막았다. 대충 쳐서 실력이 느냐고 잔소리를 늘어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기타를 치는 모습을 자주 볼 일은 없었지만 '동호회에 가입했다' '실력이 늘고 있다' '이런 곡을 친다' 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몇 년이 흘러 그의 기타 연주를 구경했다. 여전히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도 치고 있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실력으로 말이다.
이것은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역시나 정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타를 여전히 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치진 않잖아?'라고 물으면 '내 스타일이 있어.'라며 도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엄마를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도 기타를 쳐봤으니까, 좀 더 정확하고 흔한 방식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는데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게다가 이젠 나보다 훨씬 오래, 자주 기타를 친 사람에게 말이다.
엄마는 너무 몰두하는 일 없이 '대충의 무드'를 계속 유지했다. 심지어 연주회가 하루 남은 상황에도 그냥 칠 수 있는 만큼만 쳤다. 옆에서 웃으며 "연주회가 코앞인데 그렇게 여유 부려도 돼?"라고 물으면 단호하게 그래도 된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연습을 마쳤다. 스트레스 하나 받지 않고 기타를 내려놓는 모습, 누가 봐도 아직 멀었는데 이 정도면 됐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어느 날 문득 경이롭게 느껴졌다.
엄마는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취미를 갖겠다고 선언한 후 많은 것에 도전했고, 그러는 동안 집엔 엄마의 결과물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결과물들은 살짝 어설프지만, 그럴듯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들을 빤히 쳐다보기라도 하면 엄마는 웃으며 '대충 한 거야'라고 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뒤를 돌아 내 방을 둘러보았다. 살아온 흔적은 있으나 만들어낸 흔적은 없었다.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은 분명 여러 번이었는데 계획을 했었다는 기억 외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나는 항상 마음만 먹고 주저했나 보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 봐, 포기하게 되면 상심할까 봐. 그 고민 속에서 '대충'이라는 선택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매 순간 총력을 다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다 쓰는 요즘 시대라, 조금씩 힘을 빼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살아나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니, 여러 시도들로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 시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려 하지 말자. 쓰기도 전에 계획만으로 지치게 되면 도전 자체를 꺼리게 되고, 하다가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지 말고 대충, 설렁설렁하되 꾸준히 해보는 거다. 괜히 '그럴 거면 뭣하러 해'와 같은 자존심만 세우지 않는다면 대충 하는 것은 꾸준히 하기 쉽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나만 알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캐치하면서 혼자 뿌듯해하다 보면 어느새 방 안은 여러 가지로 채워질 것이고, 그것마다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는 것은 결국 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