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에 차를 세우고 알게 된 것들

by 지안

외출 준비를 서두르다 보면 늘 마음이 앞선다. 약속 시각은 다가오는데 아이들의 움직임은 유독 느릿하다.


그날도 나는 마음이 급했다. 남편 친구네 가족과의 약속이었고, 목적지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아이에게 간식을 평소보다 서둘러 먹였다. 아이는 제 속도에 맞춰 씹지도 못하고 연신 입을 벌려야 했지만, 나는 내 스케줄에 맞추라고 아이를 다그쳤다.


결국 사건은 차 안에서 터졌다. 쌩쌩 달리는 도로 위에서 아이가 갑자기 구토를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아이를 살피는 그 찰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빨리 가려던 욕심이 결국 가장 늦게 가는 길을 만들고 만 셈이었다. 갓길에 서서 아이의 옷을 닦아주는 동안,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 보였다.


나는 그동안 아이의 속도가 아닌 나의 효율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늘 말한다. "크면 다 좋아져", "나중엔 밥도 잘 먹고 잔병치레도 줄어들 거야." 하지만 그 '나중'을 기다리는 엄마의 시간은 매 순간이 시험대와 같다.


나 역시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자꾸만 아이를 채근해왔다. 하지만 갓길에서의 그 소동은 나에게 확실한 경고를 주었다. 아이는 이미 온전히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믿지 못해 사단을 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이런 날엔 세상의 눈치가 보인다. 약속 시각에 늦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성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할까 봐, 누군가 피해를 볼 까봐 마음이 졸아든다.


아이의 식사는 원래 어른보다 훨씬 길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나는 아이를 믿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식탁 위에서도 이제는 억지로 숟가락을 입에 밀어 넣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집어 먹고, 충분히 씹고, 배부름을 느낄 수 있도록 본인의 속도를 존중한다.


그래야 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느리더라도 직접 먹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주체성을 키워간다.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성장한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켰던 그날, 나는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는 법보다 아이의 호흡을 살피는 법을 먼저 배웠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의 속도를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 늦어짐에 대해 세상에 당당히 양해를 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육아라는 길 위에서 배운 가장 솔직한 운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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