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는 주말 아침.
평소라면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한 시간은 족히 남들의 피드를 새로고침하며 뒹굴었을 텐데, 손을 뻗어 더듬거릴 액정이 없으니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환상 진동도, 지겹도록 울리던 단톡방의 알림음도 없는 방 안은 깊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불안함에 손톱을 물어뜯던 어제와 달리, 신기하게도 오늘은 초조함의 자리에 묘한 해방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늘 주머니를 무겁게 늘어뜨리던 쇳덩이가 사라진 코트는 낯설 정도로 가벼웠다. 길을 찾을 지도 앱도 없으니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고개를 처박고 걷느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2년이나 살았던 동네에 이렇게 예쁜 적벽돌 담장이 있었구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양지바른 담벼락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평화로운 아침. 카메라 렌즈를 거치지 않은, 맨눈으로 마주한 진짜 세상이었다.
골목을 걷다 보니 어디선가 고소한 버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냄새를 따라간 곳에는 영어로 된 세련된 간판이나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그저 '베이커리'라고 정직하게 쓰인 작고 허름한 동네 빵집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갓 구워져 나온 빵 냄새만큼은 기가 막혔다.
나는 갓 나온 소금빵 하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습관이란 무섭다. 벤치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지금 햇빛 딱 좋은데. 커피잔 옆에 소금빵 무심하게 툭 놓고 찍으면 빵 결이 진짜 예쁘게 나올 텐데.'
스토리에 올릴 구도까지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졌지만, 내겐 셔터를 누를 카메라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체념한 채,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소금빵을 맨손으로 집어 들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짭짤한 소금의 감칠맛, 그리고 그 안에 숨어있던 촉촉하고 진한 버터의 풍미가 입안에 확 퍼졌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년간, 나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온도를 포기하며 살았다. 음식이 나오면 완벽한 탑뷰(Top-view)를 찍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기본이었고,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보정 앱으로 색감을 만지고, 해시태그를 고민해 업로드하는 동안 빵은 늘 딱딱하게 식어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밍밍하게 녹아내린 지 오래였다. 나는 음식의 맛을 즐긴 게 아니라, 이 핫플레이스에서 이 비싼 디저트를 먹는다는 이미지를 씹어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식어버린 빵을 씹으며 타인의 '좋아요'로 배를 불리던 그 가짜 식사 시간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평범한 벤치 위에서의 아침 식사가, 역설적으로 지난 몇 년간 유명 카페에서 한 시간을 줄 서서 먹었던 그 어떤 디저트보다 선명하고 달콤했다.
등을 벤치에 깊게 기대고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뺨에 닿는 늦겨울의 바람은 제법 상쾌하게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 주었다.
이 완벽한 순간을 증명할 사진 한 장, 알아줄 사람 한 명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부러움 섞인 댓글이 없어도, 이 소금빵은 충분히 맛있고 이 아침의 햇살은 눈부시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나의 오늘은 이렇게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 던진 자리에, 비로소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진짜 감각이 새순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남기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정작 눈앞의 가장 눈부신 순간들을 카메라 렌즈 뒤로 유보하곤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전시하기 위해 공들여 찍은 100장의 사진보다, 온전히 내 혀끝과 피부로 느낀 단 한 번의 감각이 우리 영혼을 더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내 일상을 누군가에게 결재받듯 보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의 부러움 없이도, 지금 당신이 맨눈으로 보고 맨입으로 느끼는 그 행복은 이미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눈으로 담기보다, 카메라 앵글부터 맞추느라 진짜 바람과 햇살을 놓친 적은 없나요? (기억은 핸드폰 갤러리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저장될 때 더 오래갑니다.)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네를 20분만 산책해 보세요. 어떤 소리들이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