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돌아간 집에서 배운 진짜 사랑
액정이 깨진 임시 폰을 들고, 나는 홀린 듯 본가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평소 본가에 갈 때면 나는 늘 성공한 딸이란 배역을 철저히 준비했다.
양손에는 유명 백화점에서 산 화려한 디저트 박스를 들었고, 화장으로 다크서클을 꼼꼼히 가렸으며, "상훈이가 이번에 승진했대", "부장님이 나 없으면 안 된대" 같은 자랑거리들을 장전하고 문을 열었다. 그래야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늘어난 후드티 차림,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몰골은 또 왜 이래, 어디 아파?"
엄마의 그 한마디에, 지난 몇 주간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의 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현관에 선 채로 나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상훈이랑 헤어졌어. 나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
회사에서도 너무 지치고,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남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나 지금 진짜 엉망진창이야."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두려웠다. 어릴 적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져가야만 환하게 웃어주던 엄마였다.
자랑할 것 하나 없이 껍데기만 남은 초라한 딸을 보며 한숨을 쉬거나 실망하실까 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찌개 불을 끄고 다가온 엄마는 나를 다그치지도, 왜 헤어졌냐고 캐묻지도 않았다. 그저 거칠어진 내 두 손을 꼭 잡고 주방 식탁으로 이끌었다.
"앉아. 밥부터 먹자. 찌개 금방 끓어."
잠시 후 내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꾹꾹 눌러 담은 쌀밥이 놓였다. 백화점의 비싼 디저트도,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따뜻한 한 끼였다.
"지안아, 꼭 남들처럼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돼.
네가 좋은 회사 안 다녀도, 남친 없어도... 너는 그냥 내 딸이야.
밥 잘 먹고 안 아프면 그걸로 된 거야."
눈물이 후드득 밥그릇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동안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의 가치는 내 연봉, 내 남친의 스펙, 내 SNS의 '좋아요' 숫자로 매겨진다고 믿었다.
그 증명서가 없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런 포장지 없이 너덜너덜해진 맨얼굴로 마주한 이 식탁 위에서, 나는 완벽하게 수용받고 있었다.
조건 없는 사랑은 내가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었다.
따뜻한 찌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을 녹였다. 내가 그토록 목말라하며 찾아 헤매던 인정은, 남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이 평범한 밥그릇 안에 이미 소복이 담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인정중독의 깊은 뿌리에는 '내가 잘나지 않으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할 트로피를 사냥하러 다닙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과 관계는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날에도, 심지어 처참하게 실패해 바닥에 주저앉은 날에도 기꺼이 당신 곁에 남아 밥을 덜어줄 사람. 그 조건 없는 온기만이 우리의 인정 중독을 끊어낼 유일한 해독제입니다.
내 주변에 나의 '사회적 타이틀'이나 '성공'과 상관없이 나를 아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보고, 오늘 아무 용건 없이 안부 전화 한 통을 걸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