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는 못 만날지도 모르지만.
나를 닮은 딸이 하나 꼭 낳고 싶었다.
아이를 원하냐는 남자들의 질문에, 나는 곧잘 그건 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울 파트너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하면
으레 상대방들한테 “현명한 대답”이라는 반응이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 답은 여자들한테 들어본 적이 없다고.
나는 그 말에 더 놀라곤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태어나고 싶냐고 의사를 물어보고
이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게 아닌데
오로지 부모의 의사,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굉장히 큰 자만이라는 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를 닮은 딸을 하나 낳아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아이의 첫 문데이 날에는 아무도 모르게 둘이 케이크도 사다가 축하 파티를 해주고,
남편, 딸과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산책을 이따금씩 한다던지
다 크고 나면 일 년에 한두 번은 함께 뮤지컬을 보고 아이와 후기도 서로 나누면서
밤거리를 같이 걸어오는 그런 꿈을 꾸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는 아빠 자질의 싹이 보이는, 부모는 처음이니 서투르더라도
함께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자기는 좋은 아빠가 될 거라며 자신 만만해하면서도
음식 냄새를 아침부터 피우는 게 싫다며 짜증 내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를 반드시 셋 낳아달라고 하면서도
나에게 맞벌이는 필수이며, 자기는 집안 청소도 할 줄 모르지만
돈은 아껴야 하니 가사 도우미도 쓸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행복한 엄마,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려 하는 부모 관계,
그런 것들을 아이에게 주려 노력하고
내 세대의 짐을 내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엄마가, 부모가 되고 싶었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에 만났던 사람과 약혼까지 가고 파혼했을 때
나는 “내 엄마처럼 살지 않다”라고 상대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반짝거리는 약혼반지만 남긴 채 끝이 나버렸다.
오래된 외국 친구가 이혼을 하고 모국으로 돌아가
몇 년을 자유롭게 보낸 후, 거기서 만난 타국의 남자와 소박하게 결혼을 하고
남편과 친구를 똑 닮은 아들을 낳고 사진을 보내왔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결혼 생활이 어떠냐고,
그는 잘해주냐고 물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서 감사해"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자기의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를 하려 노력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또 “아이를 낳아야지,” “낳으면 다 키우게 돼있어” 가 아니라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상대는 그런 사람인지
현실적으로 잘 객관화가, 주제 파악이란 게 되어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나의 이번 생은 아이가 찾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다음 생엔 꼭 내가 엄마 구실을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또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그런 나에게 내 아이로 한 생명이 찾아와 주렴
하면서 위로하는 그런 달콤 쌉쌀한 금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