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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Oct 25. 2018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야!

영화 <너의 결혼식> (2018)

  첫사랑을 미화하는 달달하고 깜찍한 영화가 또 하나 세상에 나왔다. 교복 입은 소년 소녀의 만남부터 사춘기 시절의 에피소드와 이별, 지극히 현실적인 재회로도 막을 수 없는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변신, 대놓고 염장질 하는 예쁘장한 클리셰 범벅의 화면들까지. 첫사랑 이야기는 세상 누구나 주인공인 만큼, 그 어떤 클리셰도 용서되고 내 얘기처럼 몰입하게 하는 만능 키 같은 정서를 담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과 승희


  남자는 사랑에 관한 한 운명론자이지만 타이밍을 방패로 삼는다. 여자는 3초 만에 짝을 알아본다고 호언장담하지만 현실적이다. 고등학생 황우연(김영광)은 서울에서 전학 온 환승희(박보영)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전형적인 첫 만남이다. 그날 이후 허당인 우연과 깜찍한 승희는 만남과 이별, 재회와 어긋남, 고백과 연애를 반복하며 친구에서 연인으로 빛나는 젊은 날을 함께 한다.  


한때 승희의 남자친구


한때 우연의 여자친구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보류한 채 더 빨리 연인이 되지 못한 핑계로 곧잘 타이밍을 걸고넘어진다. 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천신만고 끝에 입학한 우연은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한다. 승희가 솔로일 때는 우연 옆에 여자 친구가 있다. 친구로 위장했지만 언제든 연애 가능한 잠재적 연인인 두 사람에게 타이밍은 가혹한 게 아니라, 감정이 무르익고 좀 더 자랄 만큼 유예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이들이 사랑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사람 사이의 우연과 필연이다. 굳이 타이밍 운운하지 않아도 이들의 연애담은 누구나 비슷한 에피소드 한두 개쯤 겹치는 20대 사랑의 전형이다.


결국 연인이 된 두 사람


  반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만큼 특별할 게 없다. 그냥 너니까, 너라서, 이 한마디면 된다. 친구인 승희에게 연애하자는 우연의 오글거리는 멘트도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전형 중의 전형이다.

"세상의 반이 여자면 뭐해, 니가 아닌데.." 

  헤어지는 이유는 세상의 연인 수만큼 다양하고 구구절절하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가정'을  '연인'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연인들


  세월이 흘러 우연이 결혼식장에서 승희 옆에 서지 않고 하객으로 참석하는 변명으로 타이밍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한때 세상에 지들 둘만 있는 것처럼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더니, 서로에게 상처 주며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이별을 한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했으면 돌이켰어야 한다. 물론 우연은 승희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 상처 받은 승희는 쉽게 우연을 용서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용서가 쉬웠다면 애초에 상처 받지도 않았다. 떠나는 승희를 잡지 않은 것도, 기다리지 않은 것도, 줄기차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것도 우연의 자유 의지다. 결정적으로 우연은 그 많은 시간을 살면서 승희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왜?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 의지 대가로 받은 게 승희의 청첩장이다. 청첩장을 받는 기분이 상쾌하진 않겠지만, 우연이 그제야 그녀에 대한 미련과 원망으로 애가 타 방방 뜨는 건 우습다. 사실 그가 진짜 미련이 남아서 그랬다기보다 과하게 객기를 부려가며 지나간 사랑을 정리하는 나름의 의식을 치른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한다면, 승희가 없었던 지난 몇 년간 왜 그러지 못했냐고,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라고 하고 싶다. 여기엔 타이밍이 낄 자리가 없다. 그녀가 그의 곁에 없었던 무한할 정도로 많았던 매 순간이 다 (그녀를 붙잡고, 그녀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그놈의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연인 시절


  사랑했다 헤어지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승희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우연은 어긋난 타이밍을 구실 삼아 자신의 사랑이 끝났음을, 죽고 못살것 같은 승희와의 이별을 편리하게 수긍하고 합리화했다. 그가 신부 대기실에 있는 승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은, 그동안 핑계대며 이용만 했던 타이밍을 마지막으로 알차게 써먹은 것처럼 보인다. 다음 사랑에서는 타이밍을 핑계 삼지 않길 바란다. 첫사랑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지나간 사랑에서 배우고 성숙해진 남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되니까.




  벌써 2000년대를 추억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아련하면서도 당혹스럽다. 세기가 바뀌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애들(?)이 한창 결혼할 시기가 되어 추억을 반추하는 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내가 나이 먹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다. 그놈의 '타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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