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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12. 2018

나이값 못하는 공포스러운 코미디

영화 <Hello, My Name is Doris> 2015

  웃자고 본 영화가 날 당황스럽게 한다. 아니, 솔직히 무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코미디를 보고 유쾌하게 웃겠지만, 난 안쓰러움과 짠함을 넘어 소름이 돋더니 어느 순간 경멸하게 됐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남은 잔상은 공포다. 이런 미친 영화 같으니라고.



  뉴욕 의류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도리스(샐리 필드 Sally Field)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며 평생 싱글로 산 60대 여자다. (그녀의 나이가 정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보기에는 적어도 60대 이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도리스는 깊은 상실과 해방을 동시에 맛본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그녀는 새로 부임한 30대 아트 디렉터 존(맥스 그린필드 Max Greenfield)에게 첫눈에 반한다.


'존'을 연기한 맥스 그린필드


  존에 대한 감정으로 들뜬 채 엉뚱한 상상을 하던 도리스는 동기부여 강사의 강연에 고무되어 요상한 신념에 사로잡힌다.  "I'm Possible! 난 가능해!"

  친구의 열세 살 짜리 손녀에게 연애 상담을 하더니, 가짜 계정을 만들어 존의 페북 친구가 된다. 그녀는 페이스북으로 존의 취향을 파악한 후 스토커처럼 그의 주위를 맴돈다. 존은 다소 엉뚱한 도리스를 좀 이상한 직원이라 생각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그 나이에 보기 드문 취향을 가졌다며 좋게 본다. 존의 친절에 힘입어 도리스는 그와 농도 짙은 로맨스를 꿈꾸는데, 존이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는 걸 보자 충격받는다. 그녀는 시련당한 사람처럼 술을 잔뜩 마신 후, 존의 페북에 이상한 댓글을 달아 그가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만든다.  


  하~ 깊은 한숨이 나온다. 이 아주머니(or 할머니)가 왜 이러실까 싶다. 그녀가 몇십 년 연하의 남자에게 반하고 연정을 품는 건, 뭐 개인감정이니 그럴 수 있다. 짝사랑하는 이성에 대한 엉뚱한 상상은 코믹하고 애교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표출하는 순간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동시에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는 게 상식을 가진 인간의 사고 아닐까.


  처음엔 가능성 없어 보이는 도리스의 짝사랑이 짠하고 안쓰러웠는데, 그녀가 스토커처럼 행동하며 상대의 사심 없는 호감과 매너를 사적인 감정으로 오해하자 짜증이 났다. 관객과 주변 사람과 상대방도 알지만 그녀 혼자만 모르는 진실이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가 난다. 나이 들고 선량한 여자를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주책맞게 만들었을까 싶다.


친구 손녀와 노는 도리스


  사실 그녀는 정상이 아니다. 저장강박증이 있어 정신 상담도 받는다. 오랜 세월 병든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느라 결혼도 마다했다. 그 피해의식과 상실감은 혼자 남겨진 외롭고 초라한 자신을 은연중에 부인하게 만들었을 법도 하다. 동생 부부는 어머니가 남긴 집에서 그녀를 내쫓으려 한다. 아무것도 못 버려  집을 쓰레기장처럼 해놓고 사는 그녀는 고집불통에다 사회성도 별로 없다. 그녀가 현실감각을 잃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큰 문제없이 보이지만,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그녀의 행동은 과함을 넘어 불쾌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불행한 여자를 밉쌀 맞은 가해자로 만드는 이 어처구니없는 코미디가 그래서 더 못마땅하고 공포스럽다.  


  도리스가 존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친구들에게 환호받는 건, 그녀가 젊은이들에게 어필해서가 아니라 독특한 호기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존은 선의로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건 서글픈 망상이고 주책일 뿐이다. 그녀가 존의 침대에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공포영화 못지않게 소름 끼치면서도 안타깝다. 자식뻘 되는 어린 남자를 좋아하게 된 여인의 적나라하고 깊은 감정이 그려졌다면, 공감까진 못하더라도 '맞아, 저럴 수 있지~' 하며 개연성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이 안쓰럽고 살짝 맛이 간 아주머니의 오버 액션은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억지스럽다. 초등학생도 안 할 법한 짓을 하니 말이다.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세월이고 연륜이다. 그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요구하는 필연적인 숫자다. (누굴 좋아하는) 감정과 (자유로운) 상상과는 별개로 세상의 지배를 받는다. 나 혼자 자유로운 영혼이면 뭐하나. 철없고 주책맞은 늙은이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다. 30년쯤 연하인 남자를 좋아하는 나이 지긋한 여자의 감정은, 눈치없는 스토커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다. 그 폭풍 같은 감정의 실체가 궁금하지만 이런 식은 절대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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