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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23. 2018

계절이 폭군처럼 느껴질 때

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문학동네, 2017년

  김애란이란 비범한 작가를 알게 된지도 꽤 됐다. 문학상을 수상할 때마다 앞에 '최연소'자가 유독 많이 붙었었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점점 관록이 붙어가는 그녀의 소설을 대할 때마다 시간이 아깝지 않다.  


  『바깥은 여름』은 단편소설을 묶어 놓은 소설집이다. 보통 표제를 단편 중 하나의 제목으로 하는데, 이 책 어디에도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없다. 따로 책 제목을 붙인 의도를 생각해 보았다. 책을 읽기 전이라, '바깥'과 '여름'이란 단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 지난여름을 생각하게 됐다.

  올해와 작년 두 해의 여름을 겪어내며 느낀 건, 여름은 더 이상 싱그럽고 초록이 만연한 곡식이 익는 계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름은 자비 없이 위력을 가하는 난폭한 폭군이다. 폭염이나 열대야란 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살인적인 열기와 그로 인한 살의와 전기세 공포는 전엔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에어컨은 인내와 맞바꾼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이 됐다. 그마저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나도 그중 하나다. 에어컨을 쓸 수도 있었지만, 이상한 오기와 반항으로 버텼다. 이런 무모한 저항이 몇 년이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 대항하는 하루살이가 된 기분이다. 여름이라는 무자비한 폭력에 소극적으로나마 맞서는 삶이 무의미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바깥은 여름'에는 무언가를 잃거나 어딘가에서 떠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어느 계절을 살건, 바깥은 늘 여름이다. 그리고 이 '여름'은 싱그러운 낭만의 계절이 아니라, 폭염이 지속되는 무자비한 절기로 유추할 수 있다.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자연히 세상과 분리되어 시차에 시달린다. 그 시차는 개인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한다. 세상과 영원히 분리되고 싶은 욕망까지 더해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는 상실의 고통만으로 힘겨워하는데 세상의 시선도 견뎌야 한다. 동정의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은 참척을 당한 이웃을 감당하지 못해 슬슬 피한다. 부부의 남은 생은 영원히 아이를 잃은 계절에 머물며 여름이 되어도 텅 빈 마음엔 찬바람이 불 것이다.


  초등학생 노찬성은 죽어가는 개 에반을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병들어 힘들어하는 개를 안락사시키려 모은 돈을 야금야금 헐어 쓰며 아이는 죄책감과 욕망, 무거운 현실과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른다. 개의 죽음을 생생하게 지켜본 어린 시절 한 때가, 노찬성의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노찬성은 개의 비참한 최후를 부인해보지만, 누구보다 그가 잘 안다. 갖고 싶은 휴대폰 장식품과 맞바꾼, 안락사를 시켜주지 못해 비롯된 끔찍한 현실을.


  오랜 시간 함께 한 애인을 떠나고 싶은 여자는 그럴듯한 구실을 찾는다. 그녀는 매일 매시간 변하는 날씨와 교통 상황을, 건조하지만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몇 년째 공시생으로 있는 애인은 그녀에게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지만, 혐오하고 극복해야 할 상대이기도 하다. 직업적으로 민첩함과 정확함을 겸비한 그녀가 애매하게 애인에게 매여있는 모습은 답답하지만 현실적이다. 그녀가 (이별할 구실이 될 만한) 애인의 결정적 허물을 보고 오히려 안도하는 모습은, 상실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또 하나의 모습으로 인상적이다.


  지구에서 소수 부족이 점점 사라져 절멸하는 세태는 그저 상실이란 말로 치부하기엔 너무 거대한 '잃음'이다. 자기 아이에게서 문득 발견한 이중적인 모습은 엄마 가슴에 커다란 블랙홀을 만든다. 제자를 구하려 계곡에 뛰어들었다 죽은 남편은 세상에 남은 아내에게 물음표를 남겼다. 아내는 묻고 싶을 것이다. 그 아이를 구하려 할 때 남은 사람 생각은 안했냐고.




  잃은 것과 남은 사람 사이엔 어쩔 수 없는 시차가 발생한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 폭군 같은 사건은 그 이전의  삶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세상에 아무것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 후에 어디로 갈지, 바깥과 내 안의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다른 사람의 상실을 목격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먹먹하고 서늘해진다.


  지금 바깥은 초겨울이다. 내 안이라고 다르지 않아 역시 초겨울이다. 이 계절의 일치를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겨울을 좋아했는데, 여름만큼 폭군처럼 구는 겨울 또한 그리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시간이 늘어날수록, 계절을 잊고 살고 싶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계절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싶지 않다. 둥글게 살면서 계절도 둥글게 넘기고 싶다. 예전엔 그럴 수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그게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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