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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Dec 09. 2018

베어타운엔 곰이 아니라 인간들이 산다!

책 <베어타운>  Fredrik Backman, 다산책방, 2018년

  갑자기 추워졌다. 사실 갑자기도 아니다. 12월이니 추울 때도 됐다. 사람들은 지난여름 지독히 더웠으니 반대급부로 이번 겨울이 혹독히 추울 거라 말한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가자 몇몇 언론들은 '북극보다 심한 한파'라고 떠들어댄다. 과장과 자극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자들의 입바른 소리가 아니더라도, 겨울은 원래 추웠다. 너무 급격한 기온 변화와 자연 파괴로 인한 이상 기후가 문제이지,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운 건 자연의 순리다.


  추울 땐 가슴을 덥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골라든 책은, 지금 바깥 날씨보다 더 추운 이야기다. 이야기의 감수성 때문에 추운 게 아니라 소설의 배경 자체가 혹한이 일상인 곳이고, 그보다 더 서늘한 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민낯 때문이다.  


  『오베라는 남자』로 세계를 놀라게 한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Fredrik Backman)의 신작 『베어타운』엔 인간들의 땀과 눈물, 뜨거운 희망과 타오르는 증오가 뒤섞여 있다. 얼음과 불을 뒤집어쓴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겨울에 접하기 딱 좋은 서늘함과 좌절, 그리고 희망과 연대를 보여준다.        



  일 년의 4분의 3이 눈으로 덮인 채 어둠과 추위가 지배하는 북구의 작은 마을, 베어타운. 쇠락해가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늘어가는 실업자와 빈집에 절망한다. 사람들은 한때 번성했던 마을을 기억하며 꺼져가는 용기와 희망을 되살리려 애쓴다. 아이스하키는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다. 부자들이 사는 하이츠나 중산층이 사는 중심가, 그리고 이민자를 비롯한 하층민이 사는 할로까지. 이들이 모두 함께 연대하고 뭉칠 때는 오직 하키 경기를 할 때뿐이다. 특히 청소년 하키팀은 마을의 미래와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베어타운 청소년 팀이 우승하면 아이스하키 훈련센터가 마을에 들어설 테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 컨퍼런스 센터, 쇼핑몰, 새로운 산업단지, 고속도로가 생기며 심지어 공항 건설 같은 호재로 이어질 수 있다. 죽어가는 마을을 심폐 소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청소년팀의 우승뿐이다.


  이런 와중에 마을의 운명을 짊어진 아이들 사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희망과 미래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람들은 즉각 반응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고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편을 가르고, (어제까지 친구이자 이웃이던) 증오의 대상이 된 상대편을 미워하기 쉽게 그들의 인간성을 거세한다. 마을의 공동체는 와해되고 증오와 비방이 난무한다. 부당함을 폭로하고 정의를 사수하려는 쪽은 마을의 미래를 와해시키는 세력으로 전가된다. 마을 사람들은 미래와 정의, 희망과 좌절, 돈과 심판 사이에서 방황하며 부조리와 이기심을 드러낸다.


  혹독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온기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히 공동체의 연대는 견고하고, 사람들은 정의와 공평성에 민감하다. 정의와 공평이 담보되지 않으면, 각자의 이익이 천차만별인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자연환경이 혹독한 북유럽에 복지국가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생산성과 미래의 번영이 달린 일엔 그들의 철두철미한 공정성과 정의도 주춤한다. 인간이 크고 뜨거운 희망을 품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 희망을 놓지 못해 불의에 눈 감은 대가는 혹독하다. 인간 외에 모든 것이 혹독한 그곳에서 인간마저 혹독한 자연처럼 변질되면,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을 견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비밀은 아무리 눈에 묻혀 얼음이 되어도 언젠간 드러나게 마련이다.


  베어타운의 이야기는 단지 숲으로 둘러싸인 스웨덴의 어느 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안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지구의 어느 나라, 어느 곳의 이야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보편적인 현대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몰락한 마을의 현실은, 공동체 정신이 거의 사라진 내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 늘어나는 실업, 출생률 저하, 위기감에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머나먼 스칸디나비아의 얘기가 아니라, 내 나라 내 이웃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다. 한 소녀가 당한 성폭행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눈 감길 종용하는 분위기 또한 내가 매일 뉴스로 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권력 쥔 남자들의 (구역질 나는) 행동, 한 명의 유망주를 위해 침묵을 종용하고 거기에 반발하는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마녀사냥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난 또한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을 중심으로 뭉치는 마을을 파헤쳐 현대 사회가 처한 부조리한 현실과 온갖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지구에서 최고의 복지 국가라는 스웨덴도 심각한 실업문제와 빈부격차가 있으며, 여성 혐오와 이민자 차별이라는 문제에 예외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정말 의외지만, 전체적으론 보수적일지라도 성적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인 북유럽에서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는 소년을 보며, 심지어 호모포비아까지 있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 (하긴『오베라는 남자』에도 자신이 게이라고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하는 청년이 나오긴 한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아닌 척하면서) 얼마나 쓰레기처럼 굴 수 있나를 눈 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베어타운'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말, 생각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놀랍도록 생생하다. 이 이야기엔 인간의 쓰레기다운 면도 수두룩하지만, 인간만이 만들어내고 할 수 있는 따뜻한 정과 위로도 넘쳐난다. 또한 아이스하키라는 환상적인 스포츠를 구현하는 선수들의 투지와 인간 한계를 극복하려는 열정은, 하키를 1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등줄기에 땀이 찰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다. 한편, 그렇게 얼음판과 락커룸에서 데스토스테론을 분출하고도 딴짓을 하는 그들의 에너지에 기가 빨리기도 한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대단한 이야기꾼이 지어낸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인간이란 뭘까,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은 참 나약하고 치사하고 더럽다. 그런데 또 강하고 따뜻하며 위대하다. 이 책의 작가도 말했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소설을 읽다 보니 공동체 의식이 경우에 따라선 위험할 수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끈끈한 연대는 공동체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겐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드물게 소수의 정의가 승리하면, 그 공동체는 와해되기 쉽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와해는 더 견고하고 공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한 일시적 무너짐이고, 그 바탕 위에 다시 재건된 공동체는 더 단단하고 투명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베어타운에서 술집을 하는 걸 크러쉬 라모나의 사이다 발언처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지 않듯,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건 불이익이 아니다. 불의일 뿐이다.  


"이 아이들을 키운 장본인이 하키가 아니라 당신들이란 걸 언제쯤 인정할래? 자기들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놓고 자기들이 창조한 쓰레기 탓으로 돌리는 남자들은 어딜 가나 있다니까? 종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둥, 총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둥, 다 똑같은 개소리잖아! 내가 말할 때는 입 다물고 있어!

  염병할 남자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지 않아. 그리고 씨발,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남자들! 항상 염병할 남자들이 문제라고!"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스웨덴 사람들은 미안하다, 고맙다 같은 말을 거의 안 한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엘리베이터도 같이 안 탈 정도로 내성적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 속의 마을 사람들 역시 이웃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땐  '커피 한 잔 할래?',  '같이 맥주나 마시자'로 마음을 표현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라 이야기 배경이 스웬덴이란 실감은 날씨에 대한 묘사나 고유명사를 접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 다른 나라 이야기라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간간이 드러나는 스웨덴 사람들의 국민성이 엿보이는 대목에선 그 나라의 혹독한 자연 못지않게, 그들의 서늘한 감성에 놀란다. 어쩜 저렇게 무뚝뚝하고 개방적이면서도 보수적일까 싶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이 책은 꽤 두꺼운데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때론 울컥하기도 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대신 손은 시리다. 장담하는데, 이 이야기도 머지않아 영화로 나올 것이다. 페테르와 미라, 마야와 아나, 케빈과 벤이와 아맛을 실물로 보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상상만 해도 그들이 얼음 위에서 스틱으로 치는 퍽을 맞은 것처럼 얼얼하면서도 짜릿하다. (실제로 맞으면 기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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