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Aug 11. 2018

러브리스, 돌아오지 않는 아이

영화 <LOVELESS> (2017)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감독

  자주 접하기 힘든 러시아 영화는 왠지 정치색이 강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더빙된 (버전으로 본) 러시아 영화 <LOVELESS>는 얼핏 보기엔 진지한 가족 드라마다. 아이의 실종을 둘러싼 부부 이야기인데, 이 작품이 현재 러시아의 암울한 상황을 은유한 영화라는 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2000년에 태어나 2012년에 사라진 열두 살 알렉세이


  보리스와 제냐 부부에겐 열두 살짜리 아들이 있다. 2000년에 태어난 알렉세이는 부모 어느 쪽에서도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는 눈만 마주치면 살벌하게 다투며 이기심을 드러낸다. 보리스는 젊은 여자를 임신시켜 이미 살림을 차려 살고 있다. 차갑고 무감해 보이는 이 중년 남자는, 회사에서 잘릴까 봐 이혼 사실을 숨기려 한다. 제냐도 40대 후반의 남자와 연애 중이다. 애정 없는 남편 대신 택한 남자는 20대 딸을 둔 돈 많은 홀아비다. 서로 자식을 떠넘기는 부모의 싸움을 엿듣게 된 알렉세이는 숨죽여 오열한다. 그리고 다음날 사라진다.


엄마 제냐와 알렉세이


  냉소적인 위기의 부부는 실종된 아이를 찾아다니면서도 서로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는다. 보리스의 젊은 애인은 그가 안 돌아올까 봐 불안해하며 전화를 해댄다. 혹시나 싶어 찾아간 제나의 친정 엄마는 아이가 없어진 상황에서도 걱정하기보다 이럴 줄 알았다며, 딸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제나가 사랑 없는 가정에 환멸을 느껴 탈출구로 애정 없는 임신과 결혼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이 각자의 이기심을 내세우며 다툴 동안, 아이를 찾을 확률은 점점 줄어든다.  


아빠 보리스


  러시아 공권력의 실종 아동 찾기 시스템은 사무적이고 소극적이다. 경찰은 아이가 스스로 돌아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으라고 노골적으로 충고한다. 국가 기관보다 민간 자원 봉사자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수색에 돌입한다. 아이의 학교 친구에게 은신처를 알아내고 수색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다. 보리스와 제냐는 이제 병원에 들어온 무연고 시신까지 확인하지만 알렉세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찾는 빛바랜 포스터엔 흐릿한 문구만이 남아있다.

'알렉세이 슬렙초프. 2000년 출생. 2012년 10월 10일 집을 나가 스베틀로고르스크가로 걸어간 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차가운 도시의 겨울 풍경과 부모 사이에 흐르는 냉기는 아이가 돌아왔다가도 발을 돌리고 싶게 만들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


  영화 곳곳에서 러시아 국내외 정세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불안한 정치 상황과 사건 사고 뉴스는 공기처럼 인물들 사이를 흘러 다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아이의 부모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냉소를 품은 사람들은 이런 소요가 일상인 듯 동요 없이 받아들인다.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극심한 혼란과 체제의 변화를 겪은 러시아 사람들의 냉소는 단지 차가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게 아닌 듯싶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은 주변 약소국에 대한 부당한 억압으로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국민들의 냉소와 피로를 가중시켰을 것이다. 2012년 장기 집권체제로 돌입한 푸틴의 독재에 국민들은 이 영화의 아이처럼 가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급작스럽게 밀려들어온 자본주의는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준다. 제냐가 돈 많은 나이 많은 남자의 품에 안기듯, 자본주의에 아부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풍요는 러시아라는 거대한 나라를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대한 TV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엔 아무 감정이 없다. 테러로 지옥 속에 산다는 시민의 호소에도 무덤덤하다. 뉴스를 보던 보리스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못 돌아다니게) 우리 속에 가둔다. 회사에서 잘릴까 봐 이혼 사실을 숨기려 했던 이 남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 없는 가장이다. 'RUSSIA'라고 쓰인 옷을 입고 트레이드밀 위를 달리는 강인한 여전사 같은 제냐는, 돌아오지 않은 아이 생각에 우울한 얼굴이다. 그녀의 삶은 단단할지 모르겠지만, 사라진 아이는 영혼에 박힌 가시처럼 그녀를 결코 편안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덤덤하고 정 없는 가장과 강해 보이지만 우울한 엄마, 이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부모는 사라진 아이에게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부부는 헤어지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그들의 과오와 잘못된 선택에 대한 상징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거지까지 요리이듯, 이별까지 사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