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드나드는 몬테네그로 “마실” 문화

유튜브, 넷플릭스 없어도 재미있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

by Lois Kim 정김경숙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1월 25일 일요일


몬테네그로에서 처음 맞은 한가로운 일요일 낮.


슬리자나(호스트 가족)의 친구 부부가 불쑥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커피를 부랴부랴 준비해서 내 온 슬리자나. 두 시간 정도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 다른 이웃집인 메리마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자”는 말에 따라 메리마집에 간 것이다. 미리 약속을 정하고 온 것처럼 우리는 거실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또 술을 한 잔씩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서너 시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말.

‘마실.’


예전에 우리도 이런 문화가 있었다. 특별한 용건 없이 이웃집에 들러 앉아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옆방에서 놀고, 어른들은 차 한 잔에 하루를 나누던 시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없던 시절의 오락은 사람 그 자체였다.

사람 간의 소통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몬테네그로에는 아직 그런 마실 문화가 살아 있었다.


언듯언듯 떠오르는 어렸을 때 기억이 있다. 일주일 한 번 정도 엄마는 저녁 상을 다 치우고 이웃집 아줌마집에 놀러 갔다. 나는 이 날을 무척 기다렸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모일 때 아이들도 딸려 오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한데 모여 동네에서 일어난 이런 저런 대소사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소꿉장난을 하거나 따뜻한 아랫목에서 재잘거렸다.


어느덧 집집마다 TV가 놓이면서 이런 남의 집 놀러가는 마실 문화는 점점 사라졌다. 그러다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면서는 TV 앞에 한데 모이던 가족 모임도 없어졌다. 이제는 각자 방에서 따로 스마트폰으로 저녁시간을 보낸다. 이 방에서 저 방에 있는 가족에게 문자나 카톡을 하는 것도 다반사.


그래서 몬테네그로에서 만난 마실 문화가 정말 반가웠다.


손님의 손님을 얹어가건만 슬리자나는 그 이웃집에 갈 때도 미리 전화를 하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냥 가서 서너 시간 거실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한다. 당연히 주인은 천연 허브차를 우려내오고, 이어 커피를 내오고, 또 현지 전통 술을 대접한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다.


흥미로웠던 점 한 가지. 커피 찌꺼기로 점을 보는 발칸반도 문화가 재밌었다. 터키식으로 만든 커피에는 찌꺼기가 있다. 다마신 커피 잔을 엎은 다음, 잔에 남은 커피 찌꺼기의 모양을 보고 그 날의 운수점을 친다. 사실 심각하게 점을 본다기 보다는 서로의 근황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식이다. “오늘 키스할 남자를 만날 거래”, “오늘은 크게 운 좋은 게 없네. 집에 가서 일찍 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저녁 식사시간이 올 때까지 이웃집에 지내다가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정리를 하고 있는데, 슬리자나는 맥주 한잔 하겠냐고 부른다. 맥주 먹고 푹 자잔다^^.


늘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슬리자나. 음악을 듣다가 슬픈 노래가 나오니, 눈물이 글썽인다. 전에 있었던 코소보 사태를 노래한 노래란다. 많은 젊은 이들이 죽었던 전쟁. 오늘은 서로 언어는 잘 안통하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유튜브가 없어도, 넷플릭스가 없어도, 흥미로운 대화는 끊김이 없다. 한국에 있었다면 기술을 거슬러 못가겠지만, 몬테네그로로 와서 기술을 거슬러가는 것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오지 않을.


이제 몬테네그로 호스트 가족과 겨우 이틀째이다.


유튜브보다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재미있는 사회에서, 나는 다시 사람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말이 느려진 대신, 표정과 손짓이 많아졌다. 나는 다시 “말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1) 아침 저녁으로 나와보는 아드리아해안가 산책

(2) 정성들여 우러낸 차를 내온다.

(3) 커피잔을 거꾸로 엎은 다음 잔에 남은 찌꺼기로 운수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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