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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04. 2021

#02 나가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캄보디아에도 십이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여러 캄보디아인 친구들과 '띠'와 관련된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한국과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었다. 호랑이띠나 용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스스로 강한 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으스대었고, 반면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약한 동물이라고 놀림받았다. 그럼에도 인드라 신이 주최한 달리기 대회에서 1등으로 들어온 것은 '쥐'라며 위안 삼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띠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습이 한국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캄보디아 절에서 볼 수 있는 띠별 성금함, 우측에 토끼띠, 중간에 나가띠, 왼쪽에 뱀띠이다. ⓒ 박동희


그런데 캄보디아와 한국의 십이간지 사이에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용띠'가 '나가띠'로 불리는 것이었다. '나가(नाग)'란 산스크리트어로 뱀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기에, '나가띠라는 것은 뱀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캄보디아인 친구들에게 되물었지만, 명확하게 용띠 순서에는 '나가띠(츠남 롱; ឆ្នាំរោង)'가 맞고, 그다음 순서로 '뱀띠(츠남 머사읜 ; ឆ្នាំម្សាញ់)'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캄보디아에서 나가는 뱀이 아니고 용인 것일까?


(좌) 벵 메아리아 사원의 나가 ⓒ 박동희, (우) 숭례문 통로 천정에 그려진 용 ⓒ 위키피디아 m-louis(CC BY-SA 2.0)


캄보디아에서 볼 수 있는 나가의 모습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1. 뱀의 몸통과 같이 긴 몸 
2. 동그랗게 부릅뜬 눈알과 날카로운 송곳니의 사나운 얼굴
3. 하나, 셋, 다섯, 일곱, 아홉 등 홀수의 머리
4. 머리 위에 화려한 식물 문양의 장식
5. 가슴 혹은 등 쪽에 연꽃과 같은 둥근 문양의 패턴


이러한 특징은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는 용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어 보인다. 천년 묶은 이무기가 승천하여 '용(龍)'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 것처럼 용 또한 기본적인 형상은 뱀과 닮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형상은 아홉 가지 동물들의 형상이 결합한 형태다. 중국의 "광아(廣雅)" '익조(翼條)'에 기록된 용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 따르면,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같다 한다. 그 외에도 용의 특징으로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구름' 속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나가와 용을 비교해보면 특징이나 세부적인 모습에서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라삿 안뎃 사찰의 지붕장식 ⓒ 박동희


캄보디아에서 살다 보면 나가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은연중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전통가옥의 지붕 장식일 것이다. 전통가옥을 보면 지붕 모서리에 나가 모양의 장식이 대번에 눈에 띈다. 정확히는 지붕의 내림마루 전체가 나가의 형태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내림마루가 나가의 몸통이 되고, 아래 방향의 끝 부분에 나가의 머리가 위치한다. 마치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상징하는 나가이기에 비 오는 날 지붕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과 함께 보면 더욱 의미가 깊어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지붕장식을 캄보디아에서 니억짜엥(នាគចែង)이라고 부른다. 


한편 용마루 끝부분인 종마루에 하늘로 늘씬하게 솟아오른 장식도 눈에 띈다. 이는 캄보디아어로 쪼위어(ជហ្វា)라고 부르는 장식인데, 이 또한 하늘로 향하는 나가의 모습에서 기인했다 한다. 이 사실을 듣고도 한 동안 이는 나가의 꼬리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림마루 중간 즈음에 나가의 꼬리가 별도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쪼위어가 나가의 꼬리라는 생각은 수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쪼위어가 나가가 아니라는 이견도 있다. 가루다의 모습으로 좌우로 빠져나가는 나가의 꼬리를 잡고 있는 형상이라거나, 단어 그 자체로 '쪼'는 꽃다발이라는 뜻이 있고 '위어'는 하늘이라는 뜻이 있으니, '하늘로 향하는 꽃다발'이라는 해석도 있다.


(좌) 1930년에 촬영된 캄보디아의 건축물 ⓒ 위키피디아(퍼블릭도메인) (우) 나가 장식이 뚜렷한 일반 가옥(시엠립) ⓒ 박동희


니억짜엥과 쪼위어로 장식된 지붕은 현재로서는 사찰이나 왕궁과 같이 격이 높은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왼쪽의 사진은 1930년 대에 촬영된 선착장의 사진인데, 나가로 장식된 지붕의 화려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오른쪽 사진은 시엠립에 있는 일반 민가의 입구 부분인데, 전통적인 나가 장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인 연구자들이 남긴 옛 사진들을 보면 오래된 민가에서도 나가를 이용한 지붕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 국립박물관 ⓒ 박동희


니억짜엥과 쪼위어가 특징적인 건물로 프놈펜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프랑스인 역사가 조르쥬 글로스리에(George Groslier 1887–1945)는 캄보디아에 박물관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박물관이 가지는 의의를 살리고자 캄보디아 전통 건축의 형태를 박물관 디자인에 반영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캄보디아 전통 건축들을 살펴보았고, 지붕의 특징에 착안하였다. 그 결과, 높게 솟은 지붕과 나가 모양 장식이 가득 담긴 크메르 전통을 살린 박물관이 완성될 수 있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특색 있는 박물관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좌) 앙코르 유적 티켓 오피스(시엠립) ⓒ 박동희, (우) 나가장식의 흔적이 남은 일반 가옥(시엠립)  ⓒ 박동희


니억짜엥과 쪼위어를 활용하여 지붕을 장식하는 관습은 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010년대에 새로 만든 앙코르 유적의 입장권 판매소이다. 하늘로 향한 쪼위어는 단순화되어 불분명하지만, 아래로 향하는 니억짜엥은 명확히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2000년 경에 만들어진 현대의 건물이다.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여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순화시켜서 건립한 것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적이 남아있는 니억짜엥과 쪼위어의 모습이 흥미롭다.


시엠립의 나가 다리 ⓒ 박동희


나가의 모습은 다리에서도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필자의 집 근처에 위치한 다리이다. 작은 다리지만 화려한 나가로 장식되어 시엠립 사람들은 '나가 다리'라고 부른다. 외출을 했다가 오토바이 택시인 툭툭을 타고 집으로 갈 때마다 길 설명이 복잡해서 애를 먹었었는데, "나가 다리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집에 돌아오기가 쉬워졌다. 그 후로 덕을 많이 보고 있기에 고맙게 생각하는 다리이다. 


콤퐁 크데이의 나가 다리(Spean Preah Toeus) ⓒ 박동희


그런데 나가를 이용하여 다리를 장식하는 역사는 길다. 나가는 고대로부터 세상과 세상을 연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속세와 신역을 연결해 주는 의미로 사원으로 들어가는 답도나 사원의 입구와 연결된 테라스가 나가로 장식되었다. 같은 의미에서 다리의 장식도 나가로 이루어졌다. 강을 기준으로 이쪽 세상과 반대쪽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에 나가로 장식된 것은 세상을 연결하는 나가의 상징에 부합하는 것이다. 다리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기 시작한 역사는 천년이 넘는다.


(좌) 프레아피투 까오썩 사원(앙코르)의 나가 ⓒ 박동희, (우) 앙코르 왓의 나가 ⓒ 박동희


캄보디아 도처에서 나가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나가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예로부터 크메르인들이 생각해 온 나가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숨어있는 곳은 아무래도 앙코르 유적일 것이다. 앙코르 유적에 부조벽화로 조각된 나가의 모습에는 신화가 담겨있고, 그 신화 속에서 나가의 역할이 드러난다. 여러 종류의 나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 대표적으로 '1. 세샤, 2. 바수키, 3. 무찰린다, 4. 칼리야', 이 네 종류의 나가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세샤(Shesha)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우주의 바다에는 나가라자 세샤가 떠있고, 위대한 신인 비슈누 혹은 나라야나가 세샤를 침대 삼아 누워있다.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의 배꼽에서 연꽃 줄기가 돋아났고, 연꽃이 핀다. 그 속에서 브라흐마가 태어난다.


(좌) 앙코르 왓의 첫번째 고프라의 린텔 ⓒ 박동희, (우) 크발스피안의 조각 ⓒ 박동희


이 이야기는 비슈누와 관련된 경전에서 많이 등장하는 천지창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우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세샤가 등장한다는 것으로 세샤가 모든 나가의 시초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 장면은 우주의 끝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최후의 나가이기도 하다. 즉 세샤는 영원의 존재로 볼 수 있다. 


바수키(Basuki)

선신들이 힘을 잃자, 비슈누는 생명이 깃든 우유 바다를 휘저을 것을 제안하였다. 천년 간 휘저으면 그 속에서 불노불사의 영약 '암리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바수키'를 밧줄로 삼아 메루산을 감싸 바다에 던져놓고 데바와 아수라가 좌우에서 힘을 합쳐 바다를 휘젓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온몸이 당겨진 바수키는 결국 참지 못하고 품고 있던 독, 하라하라(Halahala)를 뱉어내게 되었다. 이 독은 너무나도 맹독이었기 때문에 지구에 떨어지면 지구가 사라질 것이 명백하였다. 이에 시바가 나타나 이 독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시바 자신도 이 독을 삼키기에는 위험하여 목에 머금었다. 그 후로 시바의 목은 바수키의 독 때문에 파랗게 변했다. 그 후로 '푸른 목'의 신이라는 뜻의 '니라칸타(Nilakantha)'라는 별명이 생겼다.


(좌) 앙코르 왓의 우유바다 휘젓기의 바수키 ⓒ 박동희, (우) 프레아 비히어 사원의 조각 ⓒ 박동희
(좌) 프라삿 엔 코사이의 린텔 ⓒ 박동희, (우) 앙코르 왓의 기둥 장식에 묘사된 우유바다 휘젓기 ⓒ 박동희


나가 라자 바수키는 '사무드라만탄', 혹은 '우유 바다 휘젓기'라고 불리는 신화의 주요 요소로, 신들에 대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바수키 스스로의 의도와 달리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맹독 하라하라를 뱉어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원망은 그 누구도 가지지 않는다.


무찰린다(Muchalinda)

부처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기슭에 있는 우루벨라(Uruvelā)에 머물 때, 7일간 깊은 명상에 들었다. 갑자기 계절에 맞지 않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러자 용왕 무찰린다가 나타나 명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부처님을 감싸고 보호하였다. 부처가 명상에서 깨어나자 용왕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부처에게 경의를 표했다. 


(좌) 반띠아이 츠마 ⓒ 박동희, (우) 바이욘 중심탑에서 나온 본존불 ⓒ 박동희
(좌) 방콕 국립박물관의 무찰린다 ⓒ 박동희, (우) 태국 마하비라봉 박물관에 전시 중인 무찰린다 부처 ⓒ 박동희


무찰린다는 앞선 두 이야기와 달리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나가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이 이야기에서도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12세기 이후로 크게 유행하였고, 똬리를 튼 나가라자의 대좌는 선정에 든 부처를 상징하는 심벌이 되었다.


칼리야(Kaliya)

라마나카(Ramanaka)에 살던 거대한 나가 칼리야(Kaliya)는 나가들의 천적 가루다(Garuda)의 공격을 피해 살 곳을 찾고 있었다. 브린다반(Vrindavan)에 살던 한 수도승이 가루다에게 브린다반에는 살아서 들어올 수 없는 저주를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칼리야는 브린다반의 야무나강에 숨어 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칼리야가 살게 된 후로부터 야무나강이 독으로 오염되었고, 이로서 브린다반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에 영웅 크리슈나가 야무나 강으로 뛰어들어 칼리야를 찾아내어 공격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칼리야를 위해 칼리야의 부인들이 크리슈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고, 크리슈나는 칼리야로부터 두 번 다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풀어주었다.

한편 크리슈나는 가루다에게 칼리야가 두 번 다시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사실을 전달했고, 마침내 가루다는 칼리야를 향한 분노를 거두어, 칼리야는 다시 라마나카로 돌아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좌) 반띠아이 삼레 ⓒ 박동희, (우) 반띠아이 스레이 ⓒ 박동희
(좌) 프레아 비히어 ⓒ 박동희, (우) 바푸온 ⓒ 박동희


마지막으로 거론된 칼리야는 앞서 이야기 한 세 나가와 달리 나쁜 나가로 묘사되는 나가이다. 칼리야는 도시의 사람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강에 기거하여 사람들이 물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강력한 나가였지만 영웅 크리슈나가 칼리야를 혼내주었고, 결국 반성하고 착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였다는 내용이다. 앙코르에서 볼 수 있는 칼리야의 모습은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를 크리슈나가 반으로 쪼개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앙코르 유적에 그려진 나가의 이야기를 보면 나가란 도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해를 끼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할 때에는 나가의 왕이라는 뜻의 '나가라자'라고 불린다. 마지막에 거론한 칼리야는 나가라자라고 불리지 않는다. 나가의 대표 격인 '나가라자'는 전반적으로 선한 이미지가 있는 편인 듯하다.


나가의 모습은 앙코르 말고도 캄보디아에서 전승되는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가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1. 캄보디아의 건국신화인 '카운디냐와 소마데비 이야기', 2. 앙코르를 다스렸던 '저주받은 문둥왕 이야기', 3. 앙코르 제국의 운명을 쥐고 있었던 '나가 여인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카운디냐 신화

인도의 사제 카운디냐는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 잠에서 깬 그는 신목 아래에 있던 신궁(神弓)을 챙겨 배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배가 다다른 곳은 나가 공주 소마가 다스리는 땅이었다. 소마는 외지에서 온 침략자에 맞서 싸웠지만 카운디냐가 가진 신궁의 위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한 카운디냐는 아무것도 걸치치 않고 있던 소마에게 옷을 건네었다. 그리고 소마와 혼인을 맺고, 땅을 함께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라를 캄푸치아라 명명했다.
시엠립에 있는 나가의 딸 석상 ⓒ 신보람


캄보디아의 건국신화는 우리나라의 단군왕검 신화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단군왕검 신화를 살펴보면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통치하던 땅에 외부의 세력(환웅)이 침략해 와서 곰 부족(웅녀)과 결탁하여 그 땅을 통치해 나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캄보디아 건국신화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인도의 한 세력(카운디냐)이 세력 싸움에서 밀려 바다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가는 길에 군대(큰 활)를 얻었다. 그 후, 그들은 현재의 인도차이나에 이르렀다. 이 지역에는 뱀의 정령을 수호신으로 삼던 기존 세력이 있었지만, 인도에서 침략해온 세력에 제압당했고, 항복했다. 인도를 떠나온 세력은 기존의 세력과 합세하여 새로운 나라를 통치해나갔다.          



나병에 걸린 왕 이야기

프레아 통 왕자는 용왕의 딸과 결혼한 대가로 용왕으로부터 넓은 땅을 선물 받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이 땅에서는 용왕이 무서워하는 브라흐마의 신상을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인의 간섭이 싫었던 왕은 왕국에 성벽을 두르고 입구에 거대한 브라흐마의 얼굴을 조각했다. 

오랜만에 딸을 보고 싶어 앙코르에 온 나가 왕은 브라흐마의 얼굴이 조각된 성문을 보고 분노하였다. 이에 곧장 땅을 파고 들어가서 왕국의 한가운데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왕과 만나 혈전을 벌였다. 힘든 싸움 끝에 앙코르의 왕은 용왕을 죽였고, 왕국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용왕의 피를 덮어쓴 왕은 저주를 받아 나병(문둥병)에 걸렸고,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죽음을 맞이한 왕은 저승의 왕 야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바이욘 사원에 그려진 왕과 나가라자의 싸움 ⓒ 박동희


나병에 걸린 왕의 이야기는 바이욘 사원 벽면에도 조각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이다. 앞서 이야기한 건국신화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는 버전으로 '프레아 통왕자와 나가공주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앞의 건국신화와 도입부는 유사하지만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나가라자와 앙코르의 왕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였고, 둘 다 죽음으로 귀결되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나가여인 이야기

궁전 안에는 기이한 장소가 많은데, 방비가 엄하여 볼 수가 없다. 전해 듣기로는 그 안에 금으로 된 탑이 있고, 왕이 밤에 탑 위에 올라 눕는다. 현지인들이 말하기를 탑에는 머리 아홉 달린 뱀의 정령이 있어, 이 땅의 지주신으로 여자의 몸을 하고 있다. 왕은 매일 밤 여신을 만나 잠자리를 갖는데, 왕의 아내도 그 들어갈 수 없다. 밤 이경에 나와 처첩과 잠을 잘 수 있다. 만약 하루라도 정령이 안 나타나면, 왕은 곧 죽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왕이 하루라도 방문하지 않으면 재앙이 내리게 된다.  <진랍풍토기 궁실편, 필자에 의한 의역>
피미아나카스 ⓒ 박동희


이 이야기는 1296년에 앙코르를 다녀간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서도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크메르 제국은 힌두교를 기반으로 종교와 정치가 매우 밀접한 형태로 국가가 운영되었다. 하지만 건국 이전부터 있었던 나가 신앙이 앙코르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나가의 모습은 뱀을 기반으로 한 상상의 동물이다. 하지만 신화를 살펴보다 보면 나가는 반인반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나가는 물속에서는 뱀이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한 형상의 나가를 볼 수 있다. 아마 캄보디아에서도 이와 같이 인간의 모습을 한 나가의 이미지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인도 마하발리푸람의 "Descent of the Ganges" 중에 묘사된 나가의 모습 ⓒ 박동희


캄보디아의, '나가'. 뱀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을 뱀으로 볼 것인가 용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여러모로 살펴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가란 뱀도 아니고 용도 아닌 듯하다. 그냥 그 자체로 나가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에 걸맞게 비유를 하자면, 뱀보다는 용에 가까울 것이다. 크메르인을 '뱀의 민족'이 아니라 '용의 민족'으로 보고,  앙코르를 '뱀의 사원'보다 '용의 사원'으로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지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오히려 경외심이 들지 않을까?!


프레아 코 사원(앙코르)의 나가로 장식된 린텔 ⓒ 박동희


참고자료

'Naga' Hindu mythology, Britannica dictionalry

ចិន្ត ច័ន្ទរតនា, 'នាគក្នុងសង្គមខ្មែរ', កេរដំណែលខ្មែរ 2011.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용(龍))]

안소연, 오가영, 강지영, "카운디냐와 소마공주", 아세안문화원, 2018

Rudiger Gaudes, 'Kaundinya, Preah Thaong, and the "Nagi Soma": Some Aspects of a Cambodian Legend', "Asian Folklore Studies", Volume 52, 1993, pp.33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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