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SNS는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캄보디아에서의 SNS 유행도 어떤 나라에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유선전화나 TV의 보급의 단계를 건너뛰고 스마트폰의 시대에 접어들다 보니 SNS의 유입은 더욱 빨랐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SNS의 유행과 함께 재미난 뉴스들이 많이 들려왔다. 벌목이나 밀렵과 같은 불법의 현장이 SNS에 공개되면서 범법자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존에는 여러 수단을 써서 빠져나갈 수 있었던 범법자들이었지만, SNS에 퍼져버린 증거들로 인해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뉴스 중에서도 특히 기억나는 뉴스가 하나 있다. 2017년 12월 말에 뜨거웠던 뉴스다. 경찰들이 SNS를 통해 확인한 불법 투계 도박장을 추적, 급습하여 관계자들을 모두 체포하였고, 도박에 사용한 투계 92마리를 모두 처분하였다는 소식이었다. 이 이야기가 특히 기억나는 이유는 그 뒷 이야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우선 관계자들은 모두 방면되었는데, 그 이유가 투계장을 운영한 사람이 훈센 총리의 조카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한편 처분한 닭들은 경찰들이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준 캄보디아 친구도 웃으면서 이 이야기를 하였는데, 듣고 있던 나 또한 이야기를 듣고 복잡한 미소가 지어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SNS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현대적인 모습과 압류한 물품을 자연스럽게 유용하는 구태한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은 캄보디아에서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불법 투계장에서 압류한 닭을 잡아먹고 있는 경찰들 ⓒ The Phnom Penh Post
이 뉴스를 통해 당시에 새로이 알게 되었던 것이 투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골에서 공공연하게 투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모습을 보아왔다. 싸움닭에게 장어를 먹인다는 캄보디아인 친구의 이야기에, 한국에서는 인삼을 먹인다고 답하며 닭이 부럽다는 농담을 나눴던 적이 있었기에 투계가 불법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불법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앙코르 유적의 벽화에서 등장할 정도로 유례가 깊은 전통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점도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투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2세기 초반에 건립된 앙코르 왓과 12세기 후반에 건립된 바이욘 사원의 벽면에는 투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앙코르 왓의 남서쪽 부조벽화 회랑에 그려진 투계하는 장면 ⓒ 박동희
위 사진은 앙코르왓 부조벽화 회랑 남서쪽 모퉁이에 그려진 투계하는 장면이다. 한가운데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두 마리의 수탉이 그려져 있다. 두 마리의 닭 뒤에는 각각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닭을 붙잡고 있다. 주변으로도 여러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손짓 발짓을 하는 모습에서 상당히 흥분된 현장의 모습이 느껴진다. 내기 도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닭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장소에서 여러 차례의 닭싸움이 진행되는 듯하다. 이 장소를 살펴보면 화려한 양산 혹은 천막, 그리고 화려한 기둥이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아마도 투계는 고대 크메르 시대에 부자나 힘 있는 사람들이 즐겼던 고급 스포츠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바이욘 사원에 조각된 투계하는 장면 ⓒ 박동희
위 사진은 바이욘(Bayon) 사원 서쪽의 바깥 회랑에 그려진 투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도 앙코르 왓의 투계의 모습과 유사하다. 중앙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두 마리의 수탉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닭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매우 흥분한 분위기이다. 뒤쪽에는 손에 그릇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도박에 건 돈과 같은 것이 들어있으려나 싶다.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왼쪽에는 머리카락이 짧고 귀가 긴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긴 머리를 뒤로 말아 묶고, 짧은 턱수염이 난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왼쪽은 크메르인이고 오른쪽은 중국인 화교이다. 당시의 투계는 국가 대항전의 양상도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 유적에 남겨진 고대 크메르인들의 놀이에 대한 자료는 매우 국한된다. 부족한 자료 속에서 투계를 즐기는 모습이 두 건이나 남겨져 있다는 것은 당시에 투계가 유행하였던 전통 놀이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현재 시골에서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투계의 모습은 고대 앙코르의 투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놀이는 보호하고 계승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투계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현대사회의 통념상 동물을 서로 싸우게 하고 이를 보고 즐거워하는 문화는 계속되기 어려울 듯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금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AFP, 'Police ruffle feathers by eating 92 roosters', Phnom Penh Post, 2017.12.29
Buth Reaksmey Kongkea, '26 arrested for betting on illegal cock fights in capital', Khmer Times,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