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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18. 2021

#04 가루다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프놈펜 국립 박물관의 가루다 석상 ⓒ 박동희


프놈펜 국립박물관의 입구를 들어가면, 가장 먼저 거대한 가루다 석상과 마주하게 된다. 커다란 부리와 부릅뜬 눈, 큰 날개와 근육질의 다리, 세 개의 발가락과 좁고 튀어나온 가슴 그리고 깃털 등 여러모로 맹금류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정쩡한 자세와 4등신의 캐릭터화 된 모습은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캄보디아 북부에 위치한 코켈(Koh Ker) 사원에서 출토된, 10세기 초반의 작품이다. 강함과 친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묘사되어,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바하나(Vahana; 탈 것)으로서의 성격이 잘 나타난 걸작이다.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의 첫 작품이 이 석상인 것은 이 작품이 예술적으로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가루다에 대한 캄보디아 사람들의 애정이 담겨있는 이유도 반영되어 있다. 가루다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공유되는 우주관 속 상상의 동물 중 가장 특별한 동물로 취급된다. 가루다는 어떤 동물보다 강하며 정의롭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헌병대의 문양으로, 주변국인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가루다를 국장(國章)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엠립 시내에 위치한 캄보디아 헌병대 간판을 들고 있는 가루다 ⓒ 박동희



가루다로 그려진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국장 ⓒ 퍼블릭 도메인


가루다에 대한 이야기는 마하바라타나 푸라나 등 여러 고전에서 등장한다. 원전에 따라서 전하는 이야기가 달라 세부 내용의 전후관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설적인 현자 카시야파(Kashyapa)는 자매인 두 명의 아내, 비나타(Vinata)와 카드루(Kadru)를 맞이했다. 두 아내는 자식을 가지길 원해 카시야파를 찾아갔다. 카드루는 천 명의 자식을 낳고 싶다고 말했고, 비나타는 두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카시야파는 흔쾌히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두 아내에게 축복을 내렸다. 두 아내들은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각각 천 개와 두 개의 알을 낳았다.  

이로부터 500년이 지났을 무렵, 카드루가 품고 있던 알들이 부화하여 천 명의 나가(Naga) 자식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비나타가 품고 있던 알들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자식을 빨리 보고 싶어 조급한 마음에 비나타는 하나의 알 껍질을 쪼개 보았다. 그러자 일출과 같은 붉은빛과 함께 아루나(Aruna)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루나는 예정보다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한낮의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을 가지지 못했다. 아루나는 어머니의 조급함을 탓하고 동생의 알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을 당부하고는 날아갔다. 하늘로 날아간 아루나는 태양신 수리야의 마차를 끌게 되었고, 붉게 타오르는 아침 일출을 상징하게 되었다.

아루나가 떠나버린 후, 비나타는 카드루와 천 명의 나가 자식의 모략에 빠져 카드루의 노예로 전락했다. 비나타는 힘든 생활을 버텨 나갔지만, 두 번째 알은 여전히 부화하지 않았다. 아루나가 태어난 후, 500년이 지난 뒤에서야 드디어 두 번째 알이 부화했다. 그렇게 알 속에서 거대한 반인반조 '가루다(Garuda)'가 깨어났다. 가루다의 형상은 새와 닮았지만 부분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리와 등, 다리는 독수리와 같았다. 눈은 크고 동그랬으며, 에메랄드빛 몸, 황금빛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가루다는 카드루와 나가들의 노예로 살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분노했다. 어떻게 하면 노예가 된 어머니를 풀어줄 것인지 나가들에게 물어보았고, 나가들은 인드라신이 가지고 있는 성수, '암리타'를 가져오기를 요구했다. 가루다는 신들의 왕 인드라를 찾아가 싸웠고, 가루다의 용맹을 인정한 인드라는 암리타를 내어주기로 결정했다. 나가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가루다는 인드라에게 앞으로 나가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을 요청했다. 인드라는 가루다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편 가루다의 용맹이 마음에 들었던 비슈누 신은 가루다에게 자신의 바하나가 될 것을 부탁했고, 가루다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비슈누는 가루다에게 자신의 권능과 함께 축복을 내렸다.

가루다는 곧바로 암리타를 나가들에게 가져가 어미니 비나타를 풀어 줄 것을 요구했다. 나가들은 암리타를 먹기 전, 몸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가루다의 이야기를 듣고 암리타가 든 병을 풀 위에 올려둔 채, 강으로 몸을 씻으러 갔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인드라는 나가들이 몸을 씻는 사이 암리타를 다시 가져가 버렸다. 몸을 씻고 나온 나가들은 암리타가 사라진 것을 보고는 당혹해 하다가 혹시 한 방울이라도 풀에 떨어졌을까 싶어 풀을 핥았다. 하지만 풀이 너무 날카로워 혓바닥이 베어 버렸고, 나가의 혀는 바늘과 같은 혀가 되었다고 한다. 

<가루다 이야기 편집 및 요약>


앙코르 왓 부조벽화에 조각된 가루다 ⓒ 박동희


비슈누의 상징과도 같은 가루다는 크메르 사원이 건립된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며, 다양하고 풍부하게 남겨졌다. 비슈누는 앙코르 역사 속에서 시바와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힌두교 신이었다. 앙코르가 건국되었던 9세기 초반부터 힌두교 신봉이 중단된 13세기까지, 그리고 왕국의 중심이었던 앙코르 지역부터 지방 거점도시에 이르기까지 비슈누 사원의 건립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비슈누인 상징이었던 가루다는 오히려 비슈누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종교 건축이란 그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주신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특징이 있다. 대신에 주신을 상징하는 친근한 요소들을 도상으로 활용한다. 크메르 힌두교 사원도 이러한 경향이 있어서, 비슈누 사원에서 비슈누 신보다 가루다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좌) 프레아코 사원[9세기]의 장식린텔 , (우) 크라방 사원[10세기초]의 부조벽화 ⓒ 박동희
(좌) 이스트메본 사원[10세기]의 장식린텔, (우) 바푸온 사원[11세기]의 부조벽화 ⓒ 박동희


하지만 꼭 비슈누 사원에서만 가루다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루다 자체가 비슈누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초중반에는 주로 비슈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비슈누신과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도 가루다가 가진 성격만으로도 사원의 장식으로 활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가루다는 비슈누를 땅에서 들어 올려 비슈누의 신성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떠받드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코끼리테라스의 중심부의 측면에는 가루다와 타오가 윗부분을 받쳐 올리고 있는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가루다가 비슈누를 받들고 있듯이 코끼리 테라스의 위에 우뚝 선 왕을 가루다가 들어 올리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왕의 권위를 드높였다. 이러한 개념은 앙코르왓의 천국과 지옥의 부조벽화에 그려진 천국의 모습에서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좌) 코끼리테라스[12말, 13초]에 조각된 타오와 가루다 ⓒ 박동희, (우) 앙코르 왓[12세기]의 부조벽화 ⓒ 박동희


또한 가루다가 나가를 압도하는 존재라는 성격을 반영한 묘사들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특히 12세기 후반, 13세기 초반에 해당하는 바이욘기 사원들은 대승불교 사원들이 대부분인데, 이 사원들에 사용된 가루다는 비슈누의 바하나로서의 성격이 사라지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게 표현된다. 크메르 사원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나가장식 난간에서 가루다가 표현되기 시작하기도 하고, 고프라의 모서리 부분에 나가를 밟고 있는 가루다가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프레아칸 사원의 최외각 담장에는 가루다 장식이 둘러쳐진다. 프레아칸에서는 가루다가 사원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좌) 바이욘기에 가루다가 더해진 나가 장식 난간, (중) 반띠아이 끄데이 사원 고프라, (우) 프레아칸 외벽의 가루다 ⓒ 박동희


앙코르기가 끝나고 나서 크메르 사원 건축이 중단되면서 가루다를 활용한 유적 사례가 급감했다. 하지만 가루다는 일반 사찰 건축이나 민간 예술에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고, 현재까지도 크메르인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호감 가는 상상의 동물로 자리 잡고 있다.


참고자료


Britannica,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Garuda". Encyclopedia Britannica, 20 Dec. 2018

Adi Parva, Chepter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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