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은 예로부터 우리 문화 속에서 친숙한 동물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공예품들 중에는 거북이 장식된 예가 많다. 왕실의 어보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관복의 흉배, 병풍이나 문방구류 특히 벼루에서 거북 모양 장식이 발견된다.
(좌) 조선시대 거북문양 흉배(온양민속박물관 소장) ⓒ 아산시, (우) 문정왕후금보(1547) ⓒ 퍼블릭 도메인
거북을 즐겨 사용한 가장 큰 이유는 '무병장수'와 '건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거북 외에도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 해, 달,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대나무'가 존재하지만, 이 중에서도 거북은 '장수'의 이미지가 특히 강한 편이다.
십장생보다 더 오래된 개념으로 '사령수(四靈獸)'가 있다. 사령수란 고대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공유된 사상으로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네 가지 상서로운 동물에 대한 개념이다. 사령에는 기린, 봉황, 용과 함께 거북이 포함되는데, 거북은 여기에서도 장수를 의미했다. 우리나라에서 사령수가 보이는 것은 이르게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거북은 2천 년 이상 '장수'를 상징해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거북은 '장수'의 이미지 외에도 친근한 이미지가 있다. 친근한 이미지가 형성된 이유는 '구토지설(龜兎之說)'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용왕의 딸이 가진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해와야 했던 거북은 어렵사리 토끼를 구슬려 바다로 데려갔지만, 평소에 간을 두고 다닌다는 토끼의 말에 다시 뭍으로 되돌려주었다. 그러자 토끼는 거북의 어리석음을 비웃고는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삼국사기 김유신 편 중 일부 요약
구토지설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이른 것은 삼국사기 중 김유신 편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보장왕의 신하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당신도 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소?'라고 물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러한 점을 보면 이미 삼국시대에도 구토지설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이야기로 파생되면서, 토끼전, 토생원, 별주부전, 토생원 등으로 불렸다. 그리고 판소리에서는 이 이야기가, '수궁가(水宮歌)'라는 제목으로 널리 유행하였는데, 이는 판소리를 대표하는 판소리 십이 마당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구토지설이라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유행해 버리는 바람에 거북은 어리석으면서도 충직한 신하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친근한 인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것이다.
수원시 주최 인형극 포스터 ⓒ 수원시
우리나라에서 거북이 이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 거북이라는 생물 자체가 느릿느릿하여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오래 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앙코르에서의 거북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앙코르에서의 거북을 살펴보자.
바이욘 사원에 그려진 거북(자라)에게 엉덩이를 물린 사람 모습 ⓒ 박동희
2010년 즈음 바이욘 사원 남경장의 해체조사 과정에서 청동으로 된 거북 모양 합이 출토되었다. 청동합은 얇은 외피로 되어있고, 오랜 기간 땅 속에 매장되어 있었기에 찌그러진 형태로 출토되었다. 하지만 거북 모양임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2015년 즈음 바이욘 북쪽 연못 한가운데의 조사 과정에서도 돌로 된 거북이 출토되었다. 또한 2020년 스라스랑 연못의 조사과정에서도 두 마리의 사암조 거북이 출토되었다. 등 껍질 부분에 진단구를 봉안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었고, 등껍질 속에서 크리스털로 된 용 모양 조각과 삼지창 모양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2021년에도 코끼리 테라스 앞에서 3개의 거북 모양 은제 유물이 출토되었다.
스라스랑에서 출토된 거북 모양 진단구함 ⓒ Apsara Authority
이와 같이 사원의 중심부나 중요성이 높은 위치의 땅 속에서 거북 모양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크메르 사원의 중심부에는 중요한 보물들이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의 경우 도굴꾼에 의해 약탈되었다. 하지만 도굴의 특성상 급히 훔쳐가야 하기에 가장 아랫부분에 있던 유물들은 도굴꾼의 손을 타지 않고 남겨지는 경우가 있다. 거북은 매장되는 귀중품들 중에서 가장 아랫부분에 안치되기 때문에 많이 남겨지는 듯하다.
그런데 거북을 왜 가장 아랫부분에 놓였을까? 이는 힌두교 창세 신화 중 하나인 '사무드라만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사무드라만탄에서 거북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데바(선신)과 아수라(악신)은 불로불사의 약 암리타를 얻기 위해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야 했다. 신들은 바다를 휘젓기 위해 거대한 나가 바수키를 밧줄로 삼아 수미산을 묶어, 바다에 던져 휘젓기로 하였다. 온몸이 당겨져 몸속에 있던 바수키의 독이 세상에 떨어질 뻔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바수키로 묶어두었던 수미산이 빠질 뻔한 것이다. 이때, 비슈누 신이 스스로 거대한 거북, 쿠루마(Kurma)로 변하여 수미산 아래를 받쳤고, 무사히 우유 바다 휘젓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 우유 바다 휘젓기 신화 중 일부 요약
(좌) 사무드라만탄의 중심부 사진(앙코르왓), (우) 거북이 부분 확대 ⓒ 박동희
신화에서 거북은 바닷속으로 빠지려는 메루산의 하부를 받쳐 안정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이야기로 인해서 앙코르에서 거북은 '안정'과 '견고'의 이미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원의 중심부의 가장 바닥 부분에 거북형 유물을 안치하는 것도 거북의 이미지를 반영하여 사원을 견고하게 지어지길 바랬던 바람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앙코르에서의 거북의 이미지는 구토지설에서의 거북과 같이 어리석음에 대한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쿠루마 자체가 전지전능한 비슈누 신의 화신이다 보니 그러한 이미지가 형성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캄보디아, 각각 주로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서 거북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그 동물이 가진 이미지가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에서 거북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좌)멩메아리아 사원 사무드라만탄 장면에 조각된 거북, (중) 프라삿 엔코사이의 거북, (우), 프레아비히어의 거북 ⓒ 박동희
참고자료
김부식, 三國史記 제41권 열전 제1 김유신 편, 1145년?
Long Kimmarita, Angkor Turtle shell held secret treasure, Phnom Penh Post, 20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