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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Jan 15. 2022

#06 권력의 상징 '코끼리'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코끼리는 동남아시아 고대 국가에서 국력의 상징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14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라오스 북부에 존재했던 '란쌍 왕국(1354-1707)'의 국명이다. '란(ລ້ານ)'이란 현지어로 100만을 뜻하고, '상(ຊ້າງ)'이란 코끼리를 뜻한다. 즉, '100만 마리의 코끼리를 보유한 왕국'이라는 뜻이다. 분명, 군사력이 강한 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실제 100만 마리의 코끼리를 보유한 것은 아닐 것이고, 여기에는 나라 이름을 지을 때 흔히 적용되는 과장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왕조의 깃발 ⓒ Sodacan (Wiki CC.4.0)


코끼리를 내세워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모습은 앙코르 왕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앙코르의 왕궁 정면에는 '코끼리 테라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월대가 남겨져 있다. 3미터가량의 높이기단형 구조체가 300미터 이상 이어지는데, 단의 측면에는 왕국의 부강함을 상징하는 장식들이 부조로 조되어 있다. 왕궁의 입구와 이어진 중간 부분에는 가루다와 타오(사자) 같은 신화 속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지만,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부분에는 줄지어 있는 코끼리 부대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코끼리의 등 위에는 크메르의 병사가 타고 코끼리를 몰고 있으며, 코끼리는 앞다리나 코를 이용하여 들소나 사자, 혹은 야생 코끼리를 위협하거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용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코끼리 테라스 ⓒ 박동희


왕궁의 정면을 코끼리 부대로 장식한 것은 과거 앙코르 왕조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활용되었던 부대가 코끼리 부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앙코르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주변국들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코끼리를 길들였던 기록은 기원전 2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중국에서도 기원전 년 전부터 코끼리를 전쟁에 활용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앙코르를 비롯한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를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 왕국이 코끼리를 동원한 전쟁에 대한 흔적은 많다. 비문 기록에서도 볼 수 있지만 바이욘 사원이나 반띠아이 츠마 사원의 부조벽화에 그려진 전쟁 장면에서 코끼리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조각을 살펴보면 주로 코끼리를 조종하는 사람이 코끼리 목 쪽에 타고, 등 위에는 안장과 같은 장치가 설치되고 그 위에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간혹 코끼리를 조종하는 사람만 단독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코끼리 조종사는 코끼리를 조종하는 데에 사용는 것으로 보이는 막대기를 들고 있다. 지휘관은 창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활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두 무기 모두 높은 위치에서 용하기 적합한 무기로 보인다. 코끼리는 전쟁에서 실질적인 공격력을 보유하기도 하였겠지만, 지휘관은 코끼리 등 위에서 전황을 살피기에도 유리하였을 것이다.

 

(좌) 앙코르 왕국의 군대 (앙코르왓), (우) 코끼리를 사용한 전쟁 장면 (바이욘) ⓒ 박동희


코끼리는 전장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앙코르 왓의 남측 서편 벽화를 보면, 60미터에 이르는 벽면에 왕실의 행렬이 부조로 조각되어있다. 여기서 왕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은 코끼리를 타고 있다. 그리고 코끼리 주변으로 기마병이나 보병들이 함께 행차를 하고 있다. 마치 군대에서 사단장 이상에게 헬리콥터가 배정되는 것과 같이, 코끼리는 특별한 계층에서만 향유할 수 있었던 권위의 상징이었다. 반탓(Ban That)의 비문에 따르면 '어린 나이의 수리야바르만 2세는 선왕이었던 다라닌드라바르만 1세의 코끼리 위로 뛰어올라 가루다가 발톱으로 뱀을 낚아채듯 왕을 죽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코끼리는 왕의 행차 시에 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코끼리를 타고 가는 지체 높은 사람(바푸온) ⓒ 박동희


코끼리의 강한 힘은 건축에서도 유용했다. 앙코르에 위치한 타케오 사원의 비문에 따르면 '수리야바르만 1세(1006-1050) 선왕 자야바르만 5세(968-1001)가 미완으로 남긴 헤마스링가기리(Hemaslingagiri)의 건설을 요기스와라판디타에게 명하였고, 요기스와라판디타는 사원 건축에 앞서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제사와 함께, 사원 건설에 필요한 코끼리와 석재를 마련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코끼리는 사원 건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석재 등 무거운 물건들을 운반하는 일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고대 앙코르 제국이 남긴 고대의 거대한 유적들의 흔적을 보면, 코끼리는 사원 건설뿐만 아니라 도로, 다리, 저수지 등 일반적인 공사에도 투입되었던, 국가가 동원할 수 었던 노동력과 생산력이었다.


코끼리를 동원한 토목공사 장면(바이욘) ⓒ 박동희


한편 코끼리는 고대 앙코르의 토기 디자인에도 애용되었다. 아래의 토기는 크메르 흑유 토기이다. 앙코르에서 검은색 유약을 바른 토기는 주로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흑유 토기 중에서도 토끼나 돼지, 올빼미 등의 새 모양 등 다양한 동물의 형태로 만들어진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이 코끼리 모양이다. 1981년에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코끼리 모양 토기 안에 석회가 담겨있었는데, 저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기호품으로 사용하는 베텔(Betel)을 씹기 위한 석회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견해가 맞다면, 코끼리는 일반 크메르인들도 일상적으로도 좋아하였던 동물이었던 듯하다.

 

코끼리 모양의 크메르 토기 ⓒ 박동희


크메르인들이 코끼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앙코르에 코끼리와 관련한 인도 신화 중 어떠한 신화가 유행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앙코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신화 속 코끼리는 '아이라바타(Airavata)'이다. 주로 사원의 출입구 상단에 설치된 장식린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좌) 프레럽 사원의 아이라바타, (우) 동메본의 아이라바타 ⓒ 박동희



힌두 신화에 따르면 아이라바타는 사무드라만탄, 우유 바다 휘젓기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신들은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생명력이 넘치는 우유 바다를 천년에 걸쳐 휘저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진귀한 것들이 탄생했다. 그중 하나가 흰색 코끼리인 아이라바타이다. 아이라바타는 하늘의 신, 천둥번개의 신이자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인드라의 탈 것이 되었고, 그 후 구름을 생성하는 등 인드라와 관련된 권능이 부여되었다. 원전에 따르면 다섯 개의 머리와 열 개의 상아가 특징이라 하지만, 앙코르에서는 머리가 셋인 경우가 많으며, 하나의 머리로 묘사된 경우도 있다. 아이라바타에 대한 이미지는 신비로우며 신성한 느낌이 있다.


아이라바타를 타고 있는 인드라(피마이 박물관) ⓒ 박동희


코끼리와 관련된 신화 중에는 가네샤(Ganesha) 이야기도 널리 유행했다. 가네샤는 시바신의 아들로 코끼리의 머리를 하고 있다. 배가 볼록하게 나와 있으며, 한 손에는 부러진 상아를 들고 있다. 쥐 (혹은 망구스)와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 가네샤가 코끼리 머리를 가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시바는 아내 파르바티를 집에 두고 먼 길을 나섰다. 시바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그 사이에 파르바티는 시바의 아들 가네샤를 낳았고, 가네샤는 늠름하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어느 날, 파르바티는 아들 가네샤에게 목욕을 하려 하니 집에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말하고 목욕을 했다. 가네샤가 집 앞을 지키는 동안 아버지인 시바가 오랜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바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 수 없었던 가네샤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 시바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막아섰다. 여기에 분노한 시바는 가네샤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파르바티는 사태를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시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시바는 자신의 보좌역인 난디에게 북쪽으로 가서 잠자고 있는 자의 머리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난디는 코끼리의 머리를 가져왔고, 시바는 가네샤에게 코끼리 머리를 붙여주었다.


이렇게 시바의 아들인 가네샤는 코끼리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 가네샤는 힌두교 신자들로 하여금 지혜와 부의 상징으로서 숭배되었다. 엄격하며 무서운 시바에 비해, 코끼리 머리에 어린아이의 몸을 한 가네샤는 친근한 인상에 다가가기 쉬워 신자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또한 부의 상징이었기에 상인들의 지지를 크게 받았다. 가네샤를 통해 볼 수 있는 코끼리의 이미지는 친근함과 부유함 등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좌)가네샤(태국 마하비라봉 박물관), (우)가네샤(프놈펜 박물관) ⓒ 박동희


한편 락슈미 여신을 묘사할 때에도 코끼리가 등장한다. 주로 연꽃 위에 앉아있는 락슈미 여신의 좌우에서 코끼리가 성수를 뿌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락슈미 여신은 비슈누 신의 아내이자, 지혜의 여신이다. 따라서 락슈미 여신을 보좌하는 코끼리 또한 지혜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두 마리 코끼리와 락슈미 여신(반띠아이 스레이) ⓒ 박동희


코끼리는 불교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로 그려진다. 부처의 어머니였던 마야부인은 흰색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가는 태몽을 꾸었다. 또한 보현보살이 타고 있는 것도 코끼리이며, 제석천(인드라)이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여전히 코끼리와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점에서 코끼리가 묘사된 불교 설화도 있다. 부처의 사촌인 데바닷타가 부처를 시기하여 코끼리 날라기리(Nalagiri)를 술에 취하게 하여 부처의 목숨을 노리는 계책을 썼다. 하지만 난동을 부리던 날라기리 앞에 부처가 나타나자 곧바로 난동을 멈추고 고분고분해졌다고 한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상좌부 불교가 유행한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는 매우 유행했던 설화이다.


부처님에게 복종하는 날라기리(프레아 파릴레이) ⓒ 박동희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코끼리는 고대 앙코르에서 국력을 상징하는 강력하고 무서운 동물이며, 유용한 동물이었다. 또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한 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앙코르 왕조의 몰락,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 코끼리의 위상도 많이 떨어졌다. 신을 모셨던 사원들이 관광지가 되어버린 만큼 앙코르의 코끼리도 관광상품으로 전락했다. 


한 때, 앙코르에서는 십여 달러를 지불하면 코끼리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특정 구간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던 2016년 4월 22일, 관광객을 태우고 프놈바켕 산을 오르내리던 코끼리 한 마리가 탈진하여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4월은 캄보디아가 가장 더운 시기로, 40도가 넘는 더위는 코끼리에게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사건 이후로 코끼리 관광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사건 전모가 SNS를 통해서 퍼지기 시작하며, 세계 각지 동물 애호가들로부터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고,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다. 결국 앙코르 유적을 관리하는 캄보디아 정부기구인 압사라청(National APSARA Authority)은 2020년부터 코끼리를 활용한 관광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코끼리를 돌보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계획을 발표했다. 앙코르의 역사에서 수천 년을 인간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온 코끼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함께하게 될 것인지, 그 귀추가 자못 궁금하다. 


코끼리를 활용한 관광 (2016년) ⓒ 박동희




참고자료


Groslier, Bernard Philippe. 'Introduction to the Ceramic Wares of Angkor', "Khmer ceramics, 9th-14th Century", Diana, 1981

유근자, 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시키는 부처님, 법보신문, 20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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