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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Sep 16. 2023

#1 앙코르보존소 초대 소장 '장 코마이유'

앙코르 이야기 리뷰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앙코르를 유럽에 널리 알린 '앙리 무오(Henri Mouhot, 1826-1861)' 이후,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앙코르와 인연을 맺었다. 그중에는 특별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이미 책에서 이야기한 해군 장교 드라포르트(Louis-Marie Joseph Delaporte, 1842-1925)의 인생도 흥미롭지만, 오늘 이야기할 '장 코마이유(Jean Commaille, 1868-1916)'는 참으로 기구하다.  


앙코르 보존소 초대 소장 '장 코마이유' (EFEO 아카이브)


1900년 프랑스 정부는 인도차이나 지역의 역사, 문화, 유적을 연구하고 관리하기 위해 극동학원(EFEO; 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를 설립했다. 앙코르 지역은 1907년 프랑스 식민지에 편입되었는데, 그다음 해인 1908년 EFEO는 앙코르 유적을 관리하기 위한 '앙코르보존소(Angkor Conservation)'를 설치했는데, 이곳의 초대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그였다. 그는 아마추어 화가로 특히 수채화를 잘 그렸다. 그가 남긴 앙코르 유적 그림들을 통해서 유적에 대한 그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장 코마이유가 그린 바이욘 사원(EFEO 아카이브)


그는 부임 후 앙코르 왓, 바이욘, 로얄 테라스, 바푸온, 프라삿 수프라 등 주요 사원들의 발굴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의 일은 체계적인 발굴이라기보다는 유적의 목록작성과 덩굴 제거 작업과 길을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가 위치한 지역이 도심에서 이미 멀리 떨어진 곳인데, 수백 년간 자연에 침식되어 길을 만드는 일 자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앙코르왓 서쪽 정글에 방갈로를 짓고 살았는데, 그의 부인도 함께였다고 한다. 앙코르에 파견되기 얼마 전이었던 1904년, 36세의 늦은 나이로 14살 어린 프랑스인 여성 앙리에트(Henriette Loustalet)와 결혼을 하였는데, 방갈로에서 거의 신혼생활을 한 듯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깊은 밀림 속 방갈로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고 한다. 


앙코르 왓 서쪽의 방갈로와 코마이유의 아내 앙리에트(EFEO 아카이)


하지만, 그의 아내는 이 열악한 생활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방갈로의 바닥을 벌레들이 갉아먹어 그녀가 아끼던 피아노가 떨어졌고, 이 사건으로 계기로 그녀는 떠나버렸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프랑스 여성이, 먼 이국의 밀림 속의 열악한 생활을 버티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슬픈 이야기는 이어진다. 1916년 코마이유는 강도를 만나 살해당했다. 인부들의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바이욘 인근에 모셔졌고, 지금도 바이욘 남서쪽 한 편에서는 그의 묘를 볼 수 있다.


Commaille "in his working outfit", c. 1914 (photo F. Gas-Faucher)



<참고자료>

https://angkordatabase.asia/authors/jean-comma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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