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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May 26. 2024

불교에 귀의한 야차장군 '판치카'

간다라 이야기 #21

점지신 하리티의 옆에는 종종 다정스럽게 앉아있는 남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리티와 500명의 아이를 함께 낳은 남편으로, '판치카(Panchik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리티와 판치카 (영국박물관) ⓒ 위키피디아


판치카는 쿠베라를 모시는 28 야차 중 가장 높은 대장군이다. 그래서 덩치가 좋은 중년 남 한 손에는 창이나 몽둥이(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재보에 욕심이 많. 그래서 한 손에 보석이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복합적인 특징이 있어 때로는 '무신'으로, 때로는 '재보신'으로 말해진다.  판치카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조합해서 살펴보면, 아마도 그 기원은 이름을 날렸던 적단 두목에서 유래된 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간다라에 전해진 불교 이야기에 따르면 판치카도 아내 하리티와 함께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판치카에 대한 묘사는 더욱 복잡해진다. 잔인한 야차, 강인한 장군, 풍요로운 부자 그리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 모두 섞인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고 간다라의 판치카 상들을 살펴보면 특징들이 잘 묘사된 것 같아 보인다.


하리티와 판치카 조각들(페샤와르 박물관)


간다라에서 판치카의 모습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것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인 듯하다. 하리티와 함께 등장하는 판치카의 모습은 무서운 야차의 모습보다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아무래도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리티 혼자 표현하기보다 아버지인 판치카가 함께 묘사되는 것이 더 받아들여졌는 듯하다.


단독으로 묘사된 판치카의 모습(라호르 박물관)


판치카에 대해서 이해하자면 쿠베라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라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재보신이자 방위신으로 북쪽을 지킨다. 보통 배불뚝이 난쟁이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판치카와 성격은 비슷하지만 외향은 확실히 다르다. 그럼에도 간다라에서 판치카가 혼자 표현된 경우, 판치카 혹은 쿠베라라고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힌두신인 쿠베라가 불교에 유입되면서 종종 혼동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인도 남부의 쿠베라 ⓒ 위키피디아


쿠베라 신은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었다. 바로 사찰의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 중 하나인 다문천왕이 쿠베라이다. 다문천왕의 또 다른 이름인 비사문천의 비사문은 쿠베라의 또 다른 이름인 바이스라바나의 음역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도 북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점, 야차를 통솔하는 신인 점, 재보신인 점 등 비슷한 요소가 많다. 그렇지만 다른 점도 확인된다. 인도의 쿠베라와 달리 비사문천은 갑주를 두르고 있다거나, 보석주머니 대신에 보탑을 들고 있는 점 등이 있다.


부산 범어사의 다문천왕 ⓒ 위키피디아


이러한 차이점은 인도-간다라-서역-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긴 각색으로 인한 것이다. 런 각색과 변화는 지역색 혹은 시대적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구체적 변화시점이나 사유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점들이 많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쿠베라의 보석주머니가 보탑으로 바뀐 사유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데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는 않은 듯하다. 이 부분은 숙제로 안고, 훗날의 즐거움으로 두고 글을 마친다.


인도네시아 찬디 믄듯 사원의 판치카


참고자료

Alice Getty, "The Gods of Northern Buddhism: Their History and Iconography", Dover Publications, 1988, p.157

"Pakistan's heritage glorious gandhara, life story of buddha etched in stone", DoAM, 2016

김문경, '변화비사문천(毘沙門天) 신앙의 일본에서의 수용(受容)과 도시 전설', "불교학보 제67집",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4.4.

임영애, '북방 다문천의 보탑 도상 해석- 도상 형성 원인과 원·고려 이전의 양상 -', "미술사와 시각문화 9권",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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