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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30. 2020

#22 씨엠립의 중앙 시장 '프사 르'

나는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에서 반드시 찾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농축되어있어 짧은 시간에 그 나라를 이해하기에 좋다. 그런데 박물관보다 더 좋아하는 곳이 있다. 시장이다. 사람들의 삶과 산물들이 뒤섞인 모습에서 그 나라의 살아있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는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씨엠립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필자가 살고 있는 씨엠립에서 가장 볼 만한 시장은 '프사 르(ផ្សារលើ)'이다. 프사 르 시장은 크메르루주가 축출된 1979년에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씨엠립의 중앙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옛날 시골 재래시장의 모습과 유사하며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프사 르 서쪽 골목 ⓒ 박동희


'프사 르'의미


'프사 르'라고 부르는 이 시장의 정식 이름은 '프사 르 톰 트마이 (ផ្សារលើធំថ្មី)'이다. 대부분 '프사 르'라고 부르기 때문에 정식 이름에 '톰 트마이'가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프사 르 입구에 써진 시장 이름 '프사 르 톰 트마이' ⓒ 박동희


'프사(ផ្សារ)'는 캄보디아어로 '시장'을 의미하는데, 이는 원래 페르시아어 '바자르(Bazaar)'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 단어가 전래되어 '바자회'라고 쓰이고 있으니 어원을 들으니 좀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르(លើ)'는 '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프사 르'는 '윗 시장' 혹은 '도매시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톰(ធំ)'과 '트마이(ថ្មី)'는 각각 '크다', '새롭다'라는 의미이다.



취급하는 물건


현장 일을 하다가 필요한 물건이 생겨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보통 "프사 르에 한번 가 보세요."라고 답한다. 그만큼 프사 르는 씨엠립 물류의 중심지이다. 실제로 프사 르에서 못 구하는 것이라면 씨엠립에서 못 구한다고 보면 된다.


시장에는 과일, 채소, 육류, 곡류, 향신료를 비롯해 의류, 잡화, 귀금속, 식기류, 소형 가전 및 철물 등의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시장 주변까지 확장하면 자전거나 오토바이, 농업사, 어구점, 공구점 등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일대에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있다.



무질서 속의 계획


시장은 상당히 크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품목별로 구분되어 있다. 시장의 정문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정문 부근에는 과일가게들이 많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옷가게, 그릇가게, 그리고 금은방 구역이 있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식료품 가게들이 많이 몰려있다. 가장 깊은 뒷골목과 인접한 부분에는 육류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다. 서북 측 골목에는 야채류 가게가, 동남쪽 모퉁이에는 물고기 가게들이 많이 몰려있다.


시장이 처음 만들어졌던 당시에 계획된 구획이 점차 흐려져서 이런 상태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다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서인지 그 내막이 궁금하다.


프사 르의 구역 별 사진 상좌부터 잡화, 그릇, 과일, 육류 구역 ⓒ 박동희


가격 흥정


대부분의 상품에 가격표가 없다. 즉 물건의 가격은 팔고자 하는 자와 사고자 하는 자의 협상에서 결정되는 구조이다. 따라서 물건을 구매할 때, 흥정은 필수이다.


이번 방문에서 필자는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와플 틀을 샀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3만 리엘(우리 돈 약 8천 원)을 불렀다. 공산품 대부분이 수입품이다 보니 비싼 감이 없지 않은 데다 외국인이라 비싸게 부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흥정은 필수다. 캄보디아어로 깎아달라고 하니 2천 리엘을 바로 깎아주었다. 옆에 있는 바비큐 그릴 3천 리엘짜리를 포함해서 3만 리엘에 달라고 하 거래는 성사되었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비싸게 산 것 같다.)


필자의 친구는 매번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면서 값이 정해지는 것이 인간미가 있어서 좋다고 하는데, 필자는 번거롭고 귀찮아 정가를 적어뒀으면 한다. 물론 이 논의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프사 르에서 물건을 살 때에는 매번 값을 물어야 한다.


철물점과 와플 틀 ⓒ 박동희


항상 새로이 보이는 물건들


프사 르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새로운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취급하는 품목이 조금씩 달라져서기도 하지만, 아마도 시장을 방문한 시점의 관심사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최근 거위알이 맛있고, 귀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 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거위알을 처음 발견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한국산 딸기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최근에 유튜브 등으로 외국 문물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수요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류 유통이 원활해진 것도 프사 르의 물건이 다양해진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좌) 거위 알과 오리알 (우) 과일가게에 등장한 딸기 ⓒ 박동희


진화하는 프사 르


십 년 전에 프사 르에 왔을 때에는 온갖 좌판에서 흘러나온 액체들이 섞인 검은 물시장 바닥에 흥건하였기에 걷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놀랄 만큼 깨끗해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대화된 재래시장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시장통 내를 돌아다니는 오토바이도 많이 줄어든 것도 환경이 나아진 큰 이유일 것이다.


최근에 생긴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전자지갑의 활용이다. 최근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직접 지불하는 방법이 상점(식당, 슈퍼 등)들 사이에서 널리 상용화되고 있는데, 그 영향이 재래시장에까지 확산되 있는 것을 목격했다. 지갑을 따로 들고 가지 않아도 되고, 잔돈이 생기지 않아 편리했는데, 재래시장에서도 통용되어 반가웠다.


ABA 페이가 가능하다는 패널이 놓인 상점들 ⓒ 박동희


캄보디아 재래시장의 전망


근래에 씨엠립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코스트코의 태국 버전인 마크로라는 창고형 마켓이 입점했다. 그리고 현대식 슈퍼마켓인 앙코르 마켓도 크게 분점을 내어 성공하고 있다. 런 모습을 모며 캄보디아도 재래시장 이용률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모처럼 프사 르를 방문해 보니 예전과 다름없이 물건 사고팔려는 사람들 붐볐고, 시장이 뿜어내는 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해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프사 르' 의 매력을 오랫동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바나나 잎에 싸서 구운 음식을 파는 시장 아주머니 ⓒ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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