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김정 Nov 25. 2024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친구끼리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라. 빌려주면 돈과 친구를 한꺼번에 잃기 쉽고, 빌리면 절약의 습성이 무뎌진다.’     


이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말입니다. 4대 비극 햄릿입니다. 4대 고구마라고도 합니다.(죄송합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세계적 명작을 두고, 연극계 종사하시는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가 있습니다. 그애 아버지가 폴로니우스인데, 덴마크 재상입니다. 높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프랑스 유학중인 아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그 당부의 말이 상당히 긴데, 원래 부모는 아들에게 잔소리가 기니까요, 간단히 요약하면 엄한 짓 하지말고, 니 자신을 갈고 닦아라입니다.

그 엄한 짓중 하나가 친구 간의 돈 거래인 거죠.  그러면서 저 말을 합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조금 더 소개하면, 폴로니우스는 햄릿의 여친 아빠로 좀 어이없지만, 실수로 햄릿에게 죽습니다. 원래 햄릿이 죽이려던 사람은 왕이거든요. 클라우디우스 라고, 햄릿의 삼촌이자, 햄릿 엄마의 새남편입니다.

네, 막장입니다. 여튼 그렇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햄릿은 꼬입니다. 너 땜에 아빠 죽었잖아 하고, 여친 오필리아가 죽어버리죠.


헉! 오 마이 갓.

말로 해결하지.


그러자 프랑스 유학간 아들이 햄릿 죽이겠다고 옵니다. 걔도 햄릿에게 죽습니다. 그리고 햄릿 엄마가 또 실수로 죽습니다. 이것도 알고보면 돌고 돌아 햄릿 때문이죠.


나 이런.


전개가 그렇습니다. (나중엔 클라우디우스도 죽고, 햄릿도 죽습니다. 다 죽습니다. 잉잉, 그만 죽여.)     

고구마가 한가득이라서 오래전 햄릿보다가 숨이 막혀 제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전개 속에 폴로니우스가 상당히 위선적인 인물인데, 제가 봤을 땐 자식한테 만큼은 제 정신 박혀서 당부한 것 같습니다.

부모들은 다 그렇죠.    

 

자기는 그래도 되니까, 너는 그러지마, 식 잔소리.      


친구 간 돈 거래 얘기하다가 햄릿으로 빠져서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요? 대답해보겠습니다.

    

일단 친구는 가까운 친구로 하겠습니다.

가까운 친구란 한달에 1~2번은 안부차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가끔 만나기도 하고요.

예전엔 가까웠는데, 지금은 1년에 한번 연락할까 말까 한다면 어떤가요?

원랜 가까웠는데 지금은 멀어진 겁니다.

이런 분이 불쑥 연락이 와 “돈 빌려줘!” 하면, “으어헉!” 하고 무섭겠죠.

그래서 한달에 1~2번 연락하는 사이로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부대사항들이 있지만 복잡해지니 이걸로 딱 정합니다.

(sns 친구요? “으어헉!”)     


이런 가까운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 질문입니다.

속이 좁은 저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친구 간의 돈 거래는 돌려받지 않는 걸로 생각하고 빌려주는 거라고.     


맞는 말입니다. 저도 이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럼 됐네요. 돈 거래는 저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하고 여기서 끝내면, 글도 짧고, 재미도 없고, 생뚱맞은 햄릿 얘기만 하다가 쓱 빠지는 것 같아 좀더 진행해보겠습니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일단 정답 같은 얘기가 나왔으니 저걸 기준으로 해서 어느 정도 통용될지 한번 보겠습니다.    

 

우선 5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돈 얘기니까, 금액으로 가는 겁니다.     


돌려받지 않아도 되나요.

전 됩니다.

속이 좁은 저도 됩니다.     


5만원이란 돈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물론 5만원이 아무 가치도 없는 돈이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다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5만원은.

가령, 주머니에 5만원 지폐가 있다고 칩시다. 실수로 잃어버렸습니다.

길에서인지, 버스에서 잃어버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다른 급한 볼일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마 대충 찾아보다가 포기해버립니다. 대신 일진을 탓하겠죠.     


하나 예를 더 들어볼까요.

친구와 술 진탕 마시고, 같이 만취해서 택시를 탔는데, 제가 먼저 내리게 되면, 친구 손에 돈을 쥐어줍니다. 택시비 하라고. 이게 5만원입니다. 우린 친구니까요. 호쾌하죠.

기본 요금 거리라고요?

차 세워놓고 거실러달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5만원을 친구에게 빌려준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돌려받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아마 빌려준 사실조차 잊어버리기까지 할 걸요.     


잊고 있었는데, 서너달 지나 친구가 뜬금없이 돌려주면.

“그때 빌려줬잖아. 고마웠어.” 하고요.

횡재한 기분마저 듭니다.

“이거 뭐시라고 돌려주나. 에헤이.”

그래도 돈이니까 받기는 받습니다.

“야! 잘됐다. 이 돈으로 술 한잔 할까.”

이렇게 우정은 더 깊어집니다.     


이번엔 영짜 하나 더 붙입니다. 50만원입니다.      


빌려달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속이 좁은 제 경우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기대하십시오.     


먼저 액수의 무게감이 달라졌으니, 비교 차원에서 아까처럼 50만원을 잃어버렸다고 칩시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다시 찾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걸어왔던 거리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타고 왔던 버스 회사에도 연락합니다.

“차고지에 갈 거니까요. 그 버스 딱 가만 계시고. 스탑! 정지! 얼음! 내 돈 내놓으시라고요.”

“저기요. 아저씨. 흥분하지 마시고.”


다른 급한 일이요?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50만원이잖아요.     


이번에도 만취해서 택시를 같이 탑니다. 먼저 또 내립니다.

친구에게 택시비 하라고 50만원 지폐 다발을 건네줍니다,

라는 일은 수천년이 지나도 없을 겁니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50만원은 그런 돈입니다.


물론 ‘돌려받지 않아도 돼’ 라는 돈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쪼금 있을지도.
 “아, 아, 아.”

안되겠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야겠네요. 20만원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대신 그 돈이 없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돌려달라고 닦달하지 않을 겁니다.

차분히 기다려봅니다. 매너있게.

설마 안돌려주겠습니까. 가까운 친구 사이인데요.  

   

두달까지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립니다.

세달도 뭐 괜찮습니다. 계절이 바뀝니다.

중간에 1~2번 친구 모임에서 얼굴을 맞대었습니다만, 표정 관리합니다.

“저 애가 나한테 50만원 빌린 거 깜빡 잊었겠지. 암 그렇고말고.”     


헌데 네달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어라. 다섯달이 지납니다.

“하아.”


먼저 말하면 쪼존해지는 것 같고.     


그 뒤에 공교롭게도 이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합시다.     

축의금 내는 데스크 앞에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랑 친군데요. 얘가 저한테 50만원 줄 게 있는데, 20만원 퉁 칩시다. 거기 축의금 장부에 이김정 20만원 냈다고 써주세요. 아주 크게. 매직으로. 식권 1장도 주시고요. 나머지 30만원은 다음에 받을 거고요.”


앞에 축의금 받는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저를 봅니다.


“딴따따라, 딴따따라. 딴 따따따따 딴 따라라.”

결혼식하기 참 좋은 날입니다. 소심하게 일부는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500만원입니다. 또 10배 올렸습니다.

조금씩 스릴이 생깁니다. 제가 노리는 게 이겁니다.     


자, 돌려받지 않아도 되나요. 하하하.

미쳤군요. 당연히 안되겠죠.


그래도.

혹시 “가깝고 막역한 친구한테 빌려준 거니까, 난 500만원 돌려받지 않아도 돼. 그래서 걱정 안해.” 하고 와이프에게 태평하게 지껄이면 어떻게 될까요.

한밤중에 맨발로 쫓겨납니다.     


“이 양반아. 가서 친구하고 살아. 왜 나하고 살아.”

“중전마마. 제가 잠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이런 돈인데, 네달이 지나고, 다섯달이 지나도 안갚는다면.

지난번은 축의금으로 끝냈지만.


이제는 친구들 모인 술자리에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공론화하겠다는 겁니다.

분위기 잡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 그 5, 500만원 말인데.”

실전으로 가니 좀 떨리네요. 돈 빌려준 사람이 더 떤다니. 이상하죠.


“어? 뭐?”

안들린답니다. 정말 이상하죠.


“저번에 나, 나한테 빌려간.”

5분에 걸쳐 설명합니다. 이게 그런 일인가요.    

 

“아, 아. 그거. 내가 그 돈 안갚겠냐. 참 날 뭐로 보는 거야, 쪼지좀 말아.”


“너를 돈으로 보지, 아, 아니. 내가 언제 쪼았다고 그래.”


“쫀 거지. 참 친구나 돼가지고, 애가 왜 그러냐. 세상 참 망가졌네.”

꺼억! 망가졌다고.


“너도 함 망가져 보자! 이 자식아!”


우당탕 멱살잡이합니다.

경찰까지 부릅니다. 주인 아줌마가. 3천원짜리 안주 접시 깨졌다고.

우정에도 금이 쫘악 갑니다.     


그러다 여차여차 돌려받게는 됩니다. 상처투성이죠.

“그때 나도 사정이 있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나도 더 기다려야 했는데. 미안해. 돈 갖고 튀는 줄 알았거든.”     


우정에 금 간 거는 다이소에서 산 스카치테이프로 쪼각쪼각 대충 붙여놓습니다.

다음에 또 돈 빌리면 완전히 쪼개질 겁니다. 스카치테이프니까요.      


이번에는 5천만원입니다. 10배 올립시다.


정말 스펙타클해질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제가 어떻게 될지.   

  

친구가 빌려달랍니다.

그리고 안돌려주고, 차일피일 미룹니다. 다섯달도 되고, 여섯달도 됩니다.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친구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뭐로 보일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근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친구가 멀쩡히 결혼식을 한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펙타클하게 가봅시다.


저는 ‘5천만원 돌려도’ 문구를 새긴 머리끈 묶고, 식장에 들어가 큰 대자로 누워버립니다.

거품 뭅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보소! 내 돈 안갚으면, 이 결혼식 못한데이! 내 여기서 죽었삔다.”


사투리가 막 나옵니다. 현장감을 주려는 의도입니다. 원래는 장첸을 하려고 했는데 공포감을 줄까봐 오달수로 바꾼 겁니다.     


친구들 다 뛰쳐나와 저를 들어 식장 밖으로 내팽개칩니다.

장첸으로 할 걸 후회합니다.     


뭐 이젠, 돌려받는다고 해도 한 10년은 그 친구를 못볼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친구 사진을 브로마이드로 뽑아서 벽에 붙여놓고, 저주의 다트를 던질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10배 더 올려서 5억원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으하하하하!!     

이제 막 가자는 겁니다.


그럼 전 짧게 가겠습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전화 안받습니다.     


문자로 연락오면.

‘누구셔효. 중국 하얼빈 신종 보이스피싱이시쿠나. 수고가 많으셔. 안녕히 계셔효.’     


결론적으로 저의 경우는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5만원을 빼고는 친구와 돈 거래를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를 매우 속이 좁은 놈이었습니다.     


햄릿의 폴로니우스가 말씀하신 게 맞았습니다.

그분이 아들 같은 햄릿 칼에 맞아서 죽고, 나중에 딸도 죽고, 아들도 결국 햄릿에게 죽는 비극의 인물이지만, 자식에게 한 말은 맞습니다.     


친구끼리는 돈을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라. 돈도, 친구도 다 잃어!


이걸 덴마크어로 말하겠습니다.

음.

그건 덴마크어 배워서 다음에 해들릴께요. 10년후에.     


여기까지 전적으로 제 경우이니 참고만 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좀더 금액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을요?

안받아도 되는 금액.

통 크게 갑시다.

한 1억으로.

저한테 빌려주실 분. 손!!     


이 글의 의도가 이상해지는군요. 쬐송.


이렇게 마치긴 아까우니 폴로니우스가 아들에게 당부한 다른 말도 두 개 곁들여 봅니다.     


‘생각한 바를 쉽사리 입 밖에 내지말고 설익은 생각을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 마라.’

(간단 해석 :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야.)


‘모든 이에 귀를 기울이되 네 말은 삼가야 한다. 남의 의견은 존중하되 네 판단은 섣불리 입 밖에 내지마라.’

(간단 해석 : 넌 그 입이 문제야.)     


저 말씀에 따르면, 이 글을 브런치에 게시하라는 걸까요, 말라는 걸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햄릿. 잉잉.


참, 저는 이런 글을 통해 제 사유의 폭을 넓히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좁아지는 느낌은 뭘까요.


잉잉. 다 햄릿때문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