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에 대해 쓴 최근의 제 글을 읽으시고, 수천통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는데요. 그중 하나를 뽑아봤습니다.
실은 수천통은커녕 아무도 질문한 분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독자분들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제가 그렇다면 그런 건줄 알겠죠.
히히히.
웃음이 좀 간사한가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아주 가끔은 막간의 느낌으로 이렇게 라이트한 글도 써볼까 합니다.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답은 예상 외로 간단합니다.
괜찮고 말고요.
아드님이 악필이신 건 다른 분야에 빼어난 재능이 있으려고 그런 것 아닐까요,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유명한 소설 아시죠.
요거 잠깐 인용 들어갑니다.
소설에 매력이 철철 넘치는 미도리 라는 여자분이 목석 같은(다른 말로 여자 마음을 아는데 시간이 매우 걸리는)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미도리는 대략 이런 마음으로 얘기를 꺼냅니다 : 으휴 답답한 이 와타나베야! 내 얘기좀 들어봐!)
“비스킷통에는 여러 종류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는 거야. 알겠지.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지.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 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통이라고.”
(이 말을 한 이유는 미도리가 마음이 아프니 꼬옥 안아달라는 말이에요. 쪼옴!)
어쨌든. 미도리와 와타나베는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소설을 보시고요... 알아서들 잘 됐겠죠. 와타나베 일이니 제 알 바는 아닙니다.
인용한 대목과 비유가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전 요런 식으로도 컨버션 시켜봅니다.
저라는 인간도 비스킷통이라는 거죠.(어째 바보같이 들리지만)
요컨대 신이 제 몸 속에 비스킷 모양의 재능을 넣어서 로켓배송으로 이 지구에 보냈다고 해봅시다.
트럭 짐칸에서 이리저리 뒹굴다보니, 당연히 안에는 깨진 비스켓도 있고, 안깨지고 이쁜 모양의 비스킷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방금 만난 제 능력이 혹여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능력이라면, 그건 깨진 비스킷이겠구나 하고 생각해주시고요.
그럼 앞으로 분명 이쁜 비스킷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거라는 겁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래?
어떤 이쁜 비스켓이었냐고요?
입을 잘 터는 능력이겠죠.
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실래나요.
그런데요. 여기서 놓치면 안되는 게 하나 있죠.
뭐냐고요?
그 깨진 비스킷조차 쓸모가 있는 것 아십니까.
요컨대 악필처럼 부족한 능력조차 알고보면 다 쓸모가 있다는 겁니다.
오늘 할 얘기가 실은 이것입니다.
무용지용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용지물은 들어봤어도, 무용지용은 처음이라고요.
그럼 잘 들으세요.
무용지용.
쓸모없는 건줄 알았는데, 쓸모가 없는 것 때문에 쓸모가 제법 있었구나 하는 얘깁니다.
말이 선문답 같죠.
요상하기도 하고. 도인어른 콧수염같기도 하고.
요러니 누가 말씀한 건지 감이 오실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장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분이 쓰신 책이 딱 한권 있는데.
제목이 장자입니다.
이김정이 이김정이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했다 보면 됩니다.
모두 52편을 연재하셨는데, 하고싶은 얘긴 앞에 7편까지 대략 정리가 됩니다.
유명한 소요유가 1편이죠.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지요.
그 뒤엣 것은 마치 성경의 복음서처럼 제자들이 장자의 행적을 추적하며, 이런 말씀도 했지롱 하고 적어놓은 겁니다.
그중 26편 외물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외물이란 내 안의 일이 아닌 바깥의 일, 내가 연관되지 않은 일들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간단해석 : 오지랍)
여기서 장자와 혜자가 나누는 대화가 나오는데 저 얘기가 나옵니다.
혜자라는 분은 제자백가중 네임밸류가 다소 떨어지는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스파르타 교육, 일타교육으로 쓸모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지상주의 인물이라 보시면 됩니다.
대치맘이 좋아하실 분입니다.
학원 차리셨으면 성공하셨을텐데.
어쨌든.
한번은 혜자가 아무리 교육시키고 두드려맞춰도 안되는 게 있자 쫌 짜증이 나는 겁니다.
안되는 애도 있잖아요.
"제가 뭐, 어쨌다고요. 네에, 선.생.님."
"에이 쓸모없는 것."
그러자 장자가 저 무용지용의 얘기를 합니다.
쓸모없기 때문에 오히려 쓸모있다는 것을.
"정말?"
뒷얘기가 있는데, 길어질 것 같고, 요새 트렌드에 맞지않는 거라생략합니다.
대신 섭섭할것 같아 제 일화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려고 했지요. 히히히. 아, 역시 웃음이 간사하네요. 웃음을 고쳐야겠어요.)
고백하자면.
저희 아이도 실은 악필입니다.
저도 악필인 건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고요.
부전자전이죠.
마누라님께서 이걸 두고 푸념하십니다.
“닮을 게 없어서 이런 걸 닮았니. 에고야.”
에고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느날입니다.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일일 겁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울먹울먹합니다.
마누라님이 좌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전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요.
방학에 해야 할 숙제를 하나도 안했다는 겁니다.
한달내내 신나게 펑펑 논 거죠.
아주 잘했어 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불똥이 저로 튈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화를 꾹꾹 누르고 묻습니다.
“오늘 내로 빨리 하자. 숙제가 뭔데?”
아이가 유인물을 가져다줍니다.
“재활용품으로 만들기 숙제.”
어라. 간단하네.
주변에서 재료를 구하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요로콤 만들면, 2시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울 것까지야 없지 않았을...
“이것도 있어.”
아이가 또 숙제를 내밉니다.
그림 숙제입니다.
방학기간 인상깊었던 일에 대해 그리는 거군요.
저것도 뭐, 대략 1시간.
노 프라블럼이네요.
정말 울 것 까지야...
“실은 음악 숙제도 있거든.”
하아.
한번에 말하지.
이게 무슨 연말 대상 발표도 아니고.
포토제닉상, 무대매너상, 베스트드레스상, 유튜버 콜라보상, 매니저들 인기 투표상, 조연출이 뽑은 밥 잘 사줄 것 같은 상. 하다하다...내참.
아니 대상은 언제 하냐고. 보신각 종 다 쳤삤다. 옘병할.
아무튼.
유튜브로 음악을 찾아서 듣고.
다섯줄 짜리 감상문을 쓰면 끝.
이것도 1시간.
도합 반나절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요새 초딩들 학교다닐만 하네요.
저때는 말입니다.
따로 과제 학습지를 주었는데, 그 두께만도 러시아 장편소설만 했죠.
이건 다른 얘긴데.
러시아 소설책이 왜 두꺼운지 아세요?
소설책 한 장씩 뜯어 불을 피워서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는 작가들의 뜻이랍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무튼.
저 때에 비한다면야, 이게 뭐시라고.
정말 울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진짜는 이거야.”
헉.
그렇게 아이가 우리에게 내민 것은.
일기였습니다.
일기?
영어로 다이어리.
방학동안 있었던 일상의 일들을 쓰는 거였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30일치를.
이야, 우리 아들, 참 터프하네. 그걸 방학 마지막 날에 꺼내네.
마누라님 얼굴이 금세 어두워집니다.
아이도 안절부절 못합니다.
전 옆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문학적으로 말하면.
창 밖의 마지막 잎새처럼 방학이 달랑 하루만 붙어있어 불어오는 바람에 아스라히 떨어질 것 같습니다.
문학은 서정적인데, 현실은 손톱이네요.
거기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선생님입니다.
그분 폼이 여대 기숙사 사감같답니다. 당연히 여자분이시고요.
“나, 면담때 뵈었잖아. 숨도 못쉬겠더라고.”
마누라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니 어지간한 모양입니다.
“엄마아~”
아이가 엄마 품에 쏘옥 들어옵니다.
먼 하늘에서 마녀의 불길한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 아.
제가 팔을 걷어부칩니다.
“일기 줘봐.”
“당신이? 어쩌려고?”
“날 믿어줘.”
마녀를 죽일 베오울프의 마검 흐룬팅을 뽑아들고, 출격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30일치를.
어떻게 썼냐고요.
뭐, 쉽습니다.
“샤사사삭~” 하고 썼는데요.
이거 제 전공이거든요.
왠지 불안하죠.
저도 그렇습니다.
쓰고보니, 너무 쉽게 썼나 싶었죠.
그동안 아이는 과제물을 합니다.
그러고 저녁무렵이 돼서 다시 거실에 모입니다.
분위기가 은근 재밌네요. 이런 거.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에 나오는 까라마조프어쩌구 집안의 가족 회의 같군요.
벽난로도 있으면 좋으련만.
민원 들어가겠죠. 아파트에서 장작불 피웠다고.
낭만들이 없으셔.
불나는 것 밖에 더하겠어.
여튼 아이와 엄마가 만든 과제물 3개는 그런대로 완성.
그럼 제꺼는.
마누라님과 아이가 꼼꼼히 일기장을 살펴봅니다.
심사위원처럼 한 장, 두 장, 침 발라서. 찰지게.
전 뒤에서 곁눈질 하고요.
마누라가 갑자기 놀랍니다.
“아니!”
뭐라도 잘못됐나...심상치않은데요.
이거 다시 되돌리려면, 노트도 새로 사야하고, 밤을 꼴딱 새야되는데.
어쩌지요.
일단 묻습니다.
“왜?”
는 아니고.
저런 반응을 하는 마누라님에게 이렇게 생각없이 물으면, 남편이라는 존재는 도도새처럼 지구상에서 멸종됩니다.
그러니.
“왜 그르시옵니까요. 중전마마. 네~잉.”
내시처럼 묻는 거죠.
“이거 완전 똑같네.”
내시랑?
아니지. 뭐가.
“똑같다니요?”
“글씨가.”
글씨가?
“아빠랑 내 글씨랑 정말 똑같아.”
아이도 옆에서 말을 보탭니다.
아무리 악필이라도 내 글씨가 초딩 글씨야 하겠어.
하고.
저도 눈을 씻고 비교를 해봅니다.
아이의 공책 필기와 내가 쓴 일기장 글씨를.
농담이 지나치시네, 중전마...
헉.
빼박입니다. 신도리코 복사기입니다.
캐논 삼단 옆단 최신형 복합깁니다.
“게다가 말이야.”
마누라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일기장에 파고듭니다.
저러다 들어가겠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뭘 또 발견한 모양인데.
뭘까요?
좋은 거면 좋겠는데. 비트코인이라든지.
“이걸 봐봐.”
제 코밑으로 일기장을 쓱 내밉니다.
저도 일기장을 봅니다.
글씨체가 깜쪽같이 같을 뿐, 별 다른 건 없어보이는데요.
마누라님이 묻습니다.
“모르겠어?”
이럴 땐 말 잘해야 합니다.
알겠다고 하면.
“뭔데?” 했을 때 대답이 궁색해져 혼나고.
모르겠다고 하면.
“아니 눈은 뒀다 뭐하고.” 역시 혼납니다.
그래서 “......?!” 한 다음.
진지 모드인 척. 시간끌기. 마누라님 제풀에 떨어지기.
"딱!"
알밤을 때리시네요. 생각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죠.
"아야!"
“농담할 때 아니야. 일기 내용이.”
일기 내용?
아, 내용이었구나. 아차차.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이게 부지불식 간의 문제라 어쩔 수 없는 건데요.
제가 실은 저 일기를 쓰기 직전에 흥미 삼아 현대 철학사를 완독하고.
그것도 조금 부족한 기분이라,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 라는 책을 머리도 식힐 겸 라이트하게 읽었거든요.
‘주체가 권력, 지식 메카니즘에 의해 구축되는 방식을 진실 말하기 형태에 과오의 고백과 파레시아가 어떻게 중심으로 들어오는지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의 자기 해석학을 적용하여 고백 테크놀로지를 만든다는 싱거운 내용인데...’
(저도 뭔 말인지 모릅니다. 묻지 마세요)
이게 일기를 쓸때 단어사용에 영향을 주었나 싶어 걱정되었습니다.
마누라님이 눈썹을 치켜세웁니다.
“미셸 푸코? 그게 아니라. 이건 내용이.”
“내용이?”
“정말 초딩 수준이야, 초등학교 2학년 딱 그 수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초딩 수준.”
으어헉! 그럴 리가.
“엄마! 나도 봐봐. 나도. 나도.”
아이가 일기장을 와락 빼앗아 봅니다.
“이야! 아빠는 나하고 생각하는 게 정말 똑같네. 먹고, 놀고, 재밌는 거 없나 찾고, 그리고 놀고, 배고파지면 먹고. 어떻게 내 맘처럼 써.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