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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Dec 05. 2024

시댁에서 김장하자고 불러요, 가기 싫은데 어떻게 하죠


(이 글을 저희 어머니, 그리고 이 세상의 시어머니들이 보시면 절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글 게시하고 잠시 피신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초겨울이 되면 김장 김치를 담급니다. 오래된 전통 같은 거죠.

오래된 전통을 계승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는, 김장 김치란 온식구가 모여서, 다같이 김장을 담궈야 제 맛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게다가 너희도 갖다먹으니 며느리도 와서 함께 돕는 것이 의당 맞다, 이겁니다.     


그러고 한 100포기 담그신다고 합니다.

죽어나가는 거죠.

속도 모르는 시아버지께서는 “김치 고놈 맛있겠다. 굴을 곁들어먹으면 그만이겠는데. 이거.” 합니다.    

 

그 자리가 며느리에게 편할까요.

친정집 여대생 시절 자기 방처럼 편할까요.

시댁이 편하다는 며느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있다면 멸종한지 오랩니다.


만약 편하지 않은 그 자리에 갔다오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요.

백퍼 부부싸움합니다.


일단 남편부터 잡습니다.

시어머니께 화낼 걸 대신하는 겁니다. 남편 면상만 봐도 시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화가 안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잘못한 건 없어요. 근데 화가 나는 겁니다.

여자가 화내는 건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낸다고 누군가 유명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분 신뢰도 백퍼니까 맞을 겁니다.


근데 이걸 못받아주고, 남편은 논리적으로 따집니다.

“김장 김치 얻어먹으려고 김장 도와드리는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하고요.

누가 잘못이래요. 화가 난다는 거지요.     

이래서 남편은 안되는 겁니다.

이럴 땐 같이 시어머니 뒷담화 까면 됩니다. 그냥 마늘 까듯이 까주라는 겁니다. 근데 그걸 못해요.

엄마랑 결혼했나요. 아내랑 결혼했죠.


게다가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게요.

남편이 회사에 쏠랑 출근가면 아이한테 짜증이 납니다.

“넌 공부는 안하고 유튜브만 보니.” 하고요.     


집안이 아수라판됩니다. 심할 땐 이혼 얘기까지 나오죠.

뭐가 중요할까요.     




제목의 물음에 답 나갑니다.   

  

가기 싫으면 가지마세요. 대신 지혜롭게.


그러면 이렇게 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동안도 갔는데, 세월도 흘렀고,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라고요.     


이걸 그러려니 하고, 가다간 저 사태가 나는 겁니다.

그러려니는 절대 당신의 화를 사라지게 하지 않습니다.

꾹꾹 눌러서 어딘가 감정의 서랍에 임시로 넣어놓았을 뿐입니다.

그러다 남편 뒷통수만 봐도 열받을 때, 그 서랍이 자동으로 열립니다.     


황혼 이혼을 하는 이유중 하나가 이겁니다.

“그때 나한테 왜그랬어” 하고.      


이렇게 된 데에는 아내분의 대처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러려니’입니다.     


그럼 시댁에서 저렇게 부르는데 제가 어떻게 할까요? 가고싶지 않다고 안갔다간 정작 문제가 생길텐데요? 하고 묻습니다.     


그냥 안가면 당연히 진상며느리가 되시는 거죠.     


이래서 지혜롭게 안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제가 팁을 드려보겠습니다.     


시댁에서 김장하자고 부르면, 앓아 누우세요.


안아픈데 어떻게 앓아눕냐고요.

안아파도, 아픈 걸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아픈 거냐고요?


나이 드신 분들이 제일 무서운 거로 갑시다.

코로나.


코로나 걸렸다고 하세요.     

“콜록, 콜록. 어머님. 저 코로라 걸렸어요. 사이토카인 폭풍 증상으로 전이되어 고열이 심해질 수 있답니다.”     

사이토어쩌구 하고 어려운 용어 썼으니 못알아들으실 겁니다.

그냥 많이 아픈 걸로 알겠죠.     


그리고 시어머니가 오지말라고 하실 겁니다.

본인도 코로나 사이토어쩌구가 걸리면 위험하니까요.

     

그런데 이것도 매년 써먹으시면 어떻게 될까요.

“넌 어째 김장할 때만 코로나 걸리누.” 할 겁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눈치 챈 겁니다.

     

그러니 돌려막기로 갑시다.

일명 나이롱 돌려막기입니다.

     

잘 들으세요.

이번 건 할 게 많습니다.

    

정형외과 병원으로 일단 가세요.

신경외과가 아니라 정형외과입니다.


특히 손님 별로 없는 데로 가세요. 그래야 환영받습니다.

가셔서 이렇게 말하세요.

“어깨 통증이 괜찮았다, 아팠다 하네요. 제가 어릴 때부터 어깨가 잘 빠지다가 붙고 하던 체질이거든요.”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자 할 겁니다.

좋쿠나 하고 찍으세요.

정상으로 나오겠죠.

당연하죠. 안다친거니까요.


그렇지만, 어깨가 잠시 빠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거로 우리는 할 겁니다.

그래서 정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제 얘기 이해하셨죠.     


의사선생님이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물으실 겁니다. 뭐 나온 게 없으니까요.

“뭐하시다가 그러셨나요?”

의사분이 원인될만한 걸 묻는 게 진료의 원칙입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하세요.

“어머니 김장 도와드리려고, 체력 키운다고 아령으로 운동좀 했는데, 삐끗하더라고요.”


“음. 아령 때문이군요. 당분간 안정이 필요합니다. 빠진 어깨가 붙어야 하거든요. 안그럼 어깨가 계속 빠져버릴 겁니다.”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청소년 애들도 어깨가 빠졌다가 다시 붙는 경우가 꽤 있어서 뻥 쳤다고 걱정마세요. 다 믿어줄 겁니다.

    

오히려 상세한 걸 봐야겠다고, MRI까지 찍자는 병원이 있는데, 비급여라서 비쌉니다. 그건 극구 사양하세요. 이젠 아픔이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고 하시면 알아들을 거예요.      


그럼 병원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거라도.” 하면서 제안합니다.

그건 바로 깁스 팔걸이 보호대입니다.

이게 포인트예요. 이걸 할려고 병원 간 겁니다.    

 

바로 착용을 해주십니다. 부축받으면서. “아이고야.” 하고 엄살도 떨어주고요.

부축하시는 분 민망하지 않도록이요.    

 


깁스 팔걸이 보호대를 하셨으면, 셀카 사진 잘 찍어서 카톡 프사에 올리세요.

멋질 겁니다.     

“나 어깨하고, 팔이며, 다친 응급 환자지롱.”


말이 되죠.


이걸 김장하기 1주일전에 올리세요.

그리고 프사에 이렇게 쓰세요.

‘회복하는데 2주일 걸린데요. 그동안 절대 안정!’     


근데 이러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요, 하고 물으실 분도 있습니다.

보세요.

진료비 5천원, 엑스레이 1만5천원, 팔걸이보호대 6천원. 도합 2만6천원 나옵니다.    

 

시댁에 갔다왔다 교통비와 퉁치시는 거로 생각하면 과연 비쌀까요.

남편과 이혼하시는 것보다도 훨씬 싸게 치는데요.      

이것도 비싸다 하는 분들은 병원 가지 마시고, 인터넷쇼핑몰에서 깁스 팔걸이 보호대만 한 만원 주고 사시면, 좀더 절약됩니다.     


제가 대충 무슨 얘기하는지 알겠죠.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댁 가기 싫을 때 안가기용 ‘나이롱 돌려막기’ 사례 더 알려드릴테니 써먹으세요.   

  

먼저 경증입니다. 1~2일 원포인트로 써먹을 수 있는 겁니다.

코로나, 장염, 독감, 편두통, 방광염, 수족구, 소화불량, 어깨빠짐 등이 있습니다.

이걸 본인만 매번 걸리면 의심할테니, 아이들도 가끔 걸리는 걸로 해서 돌려막기하세요.

 

그 다음, 장기간 가고 싶지 않으면, 쫌 센 걸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허리 디스크입니다.

이건 실은 근육통으로 병원가는 겁니다.

허리 디스크와 증상이 유사하고, 꿈쩍도 할 수 없어서 디스크라고 가족들에게 주장하시는데에 무리없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고, 병원 가면 심한 운동 하지 말라고, 그러려니 하고 의사선생님께서 진단해주실 겁니다. 근육통으로.

물론.

시댁에는 끝까지 허리 디스크로 한 1~2년 퉁 치십시오.

평상시는 정상인데, 시댁에서 부르기만 하면 인터넷에서 산 복대 차시고, 허리디스크가 도지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말이 됩니다.

평상시는 괜찮다가도 시댁의 시짜만 나오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게 발병하는 겁니다.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서 그런 겁니다.

말이 되죠.

정말 스트레스때문에 허리디스크가 도지는 겁니다.


몇 년 써먹을 수 있는 것도 하나 있습니다.

위암이 의심되는 위통증 검사입니다.

실은 병원 가서 위통증이 있다고 수면 내시경만 받으시면 됩니다. 간 김에 위 검사도 하시고요.

갔다와서 앞으로 정기적으로 헬리오박터균 검사를 통해 추적 관찰해야 한다고 뻥치세요.

시댁에서 부르면 그때만 “위가 아파서” 하고 뒹구세요.

추적 검사 기간 3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진짜 추적 검사 하러 가냐고요?

그냥 도서관 가서 좋은 책 읽고 오세요.


이런 걸 두고 나이롱 환자라고요?

사기라고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남편과 싸울 일도 없고, 아이한테 짜증낼 일도 없는데요.     

시어머니 폼에 따라 경증으로 할지, 중증으로 할지 고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릴까요.     


시댁에 정말 가기 싫은데, 오란다고 가고, 가란다고 가면, 그걸 또 그러려니 하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게 고스란히 우리 가족, 고로 남편과 아이에게 화를 내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부모와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과 사는 겁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사랑하시는 남편(시아버지)과 알콩달콩 사시면 됩니다.


며느리 오라가라 하지 마시고요.     

김장 김치 하시면 부모님 두분이서 하세요.

그럼 100포기가 아니라 몇포기 못할 겁니다.

    

“100포기 절임배추 사놨는데, 어쩌냐, 니가 못오면” 하고 말씀하셔도, 어깨 깁스 보호대 사진 보내시고,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하세요.

그래도 “나머지 외팔이로라도 안되겠니.” 하고 빈틈을 공격해오시면, 다른 팔도 보호대 차세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인터넷쇼핑몰에서 다 팝니다.

양 어깨가 다 빠진 걸로 하면 되니까요.

제대로 가봅시다.     


그래도 시어머니께서 김장 김치 주고 싶으시면, 한두 포기만 주시면 됩니다.

김장김치 많이 못받았다고 며느리되시는 분도 서운해하지 마시고요. 이 세상에 다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게 좋으면, 다른 건 손에서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우리 가족, 남편과 아이를 사랑해주기도 빠듯합니다.

부모님은 그런 며느리를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저 며느리도 미래에 본인의 아들을 놔주어야 할 때가 옵니다.

우리는 원래가 서로를 놔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건 욕심입니다.     

욕심은 곧 화를 부른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이러면 효도가 아니라고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습니다.


효도란 부모님의 욕심이나 이걸 하고 싶네 하는 걸 채워드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효도란 부모님의 부족함을 보살피는 ‘보살핌’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제 생각만은 아닙니다.     


효는 어디가 원조죠. 중국의 유교입니다. 그럼 한자를 함 볼까요.

효 라는 한자 아시죠. 효는 孝입니다.

한자는 기본이 상형이죠.

저 한자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건가요.

늙을 노를 아들자가 업고있습니다.

고로 나이 드신 노인을 자식이 업고있는 모양이란 겁니다.


보살핌입니다.

원조가 그렇답니다.

물론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효는 여기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경敬입니다. 애틋한 마음입니다.

애틋함과 보살핌입니다.


그게 효입니다.

전 이걸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교감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요컨대 초등학생도 아는 겁니다.


시어머니의 김장 김치 100포기가 과연 애틋하게 보살펴드려야 하는 부족함일까요?   


우리는 모두 어두컴컴한 우주의 이 조그맣고 외로운 혹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겁니다.

함께 살 때 서로를 서로의 입장에서 사랑해줄 수 있는 방법을 지혜롭게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도, 꼬옥 안아주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시간입니다.     


처음 사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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