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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24. 2019

그 아버지에 그 딸

런던 에세이-아침

"그 아버지에 그 아들/딸"이란 말이 있다. 자식들은 아버지(또 어머니)를 그대로 보고 닮는다는 말이다. 얼굴이나 신체뿐 아니라 행동거지나 사람됨됨이도 그렇다는 것이다. 자식 잘못하면 부모가 욕먹는다는 뜻도 거기 있다. 자식의 행동거지를 보면 부모는 안봐도 알 수 있다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과 비슷하고 뿌린만큼(가정교육시킨만큼) 거둔다는 말도 비슷비슷하다.

거기에 부정적인 의미가 가해진다면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로 되어 버린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라는 말은 이에 대한 변명이다. 그만큼 부모는 자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일본 영화중에서 (지금 반일이 한창이지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영어 제목: Like Father Like Son)" 이란 영화가 있다. '기른 정'도 '낳은 정'만큼, 아니 더 강하다는 메시지가 찡하게 가슴에 남는 영화였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만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신곡(Divine Comedy)"을 쓴 단테의 "지옥(Inferno)"편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존경하는 스승이자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인 시성 베르길리우스(영어론 Virgil)와 단테의 관계이다. 단테는 이 고대 시인을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작품 '신곡'에서 안내자 역을 맡겼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알다시피 단테의 시대로부터 1300년도 전인 로마시대 시인이었고 단테는 중세말기의 피렌체 출신 시인이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조우는 시간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1300년이란 시공을 초월해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즐겨 낭송하고 공부한 단테가 그를 스승으로 모신 것이다. 이 단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안내하는 이 '지옥(Inferno)'편은 지옥이라 예상대로 지상이 아닌 모두 땅속 깊은 암흑의 지하이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단테의 지옥 그림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단 브라운 소설, '지옥(Inferno)',에도 나오며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옥 지하 제 8층은 위선자들을 묘사한 원(Ring)이 있다. 그 중 제 6 구덩이(지옥 23곡)가 특히 재미있는데 악령에 시달린 단테가 공포스러워하자 곧 그 공포가 현실화되어 나타난다. 날개를 단 지옥편 22곡의 그 악령들이 이 두사람을 뒤쫒아 날아 온 것이었다. 그리고 악령이 단테를 공격하려하자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잽싸게 안고 도망쳐 다른 구덩이로 피신하며 악령으로부터 그를 구한다. 이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꼭 할리우드 영화보듯 긴장감이 더해 지는데 스승이 제자를 위해 비스듬한 바위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을 물레방아에서 물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고 단테는 과장하여 말한다. 그들이 산 시대가  전혀 다르고 또 둘 다 성인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베르길리우스는 스승이자 안내자로 단테보다 더 연장자로 여겨지는데, 이 연로한 스승이 단테를 아이처럼 안고 구한다는 설정 또한 은유적으로 재미있다. 단테는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불에서 엄마가 아기를 안고 도망쳐 보호하듯이 라고 적었다. 이 신곡에서 단테가 이교도이자 먼 고대의 시인이었던 스승을 부모만큼 존경한다는 말일게다. 스승으로써의 자질과 또 이를 보고 배우며 닮으려한다는 사실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한편, 가톨릭이 아니었던 이교도인 스승임에도 시인 단테는 그 안내역을 굳이 베르길리우스로 설정한 것이나, 이 지옥편의 한 예를 보더라도 자신의 삶을 지옥에서 구하는 스승, 불에서 엄마가 아기를 구하는 것으로 은유 묘사하는 만큼, 그 관계의 신뢰와 존경의 정도가 깊다 하겠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이다.
***
그렇다면 온갖 '음흉한 잔꾀(cunning)와 지위(position)와 연줄(networking)''을 이용해 자기 자식을 학벌이란 헐렁하고 어색한 허영의 옷을 입히려 한 부모는 도대체 어떤 부모일까?

자식은 이런 부모를 어떻게 봤을까? 이런 관계에서 부모를'존경(respect)'하는 마음이 이 자식에게 과연 있을까? "우리 아빠 엄마 존경해!"라는 마음이 자식의 마음속에 일어났을까?

자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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