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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don After eight Mar 12. 2019

하얀 공간, 화이트 큐브 버먼지

런던 동쪽 버먼지 지역에 위치한 화이트 큐브를 다녀오다

런던 동쪽에 위치한 버먼지 지역은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는 동네다. 2016년 여름, 처음 런던을 방문했을 때 테이트 모던과 화이트 큐브를 가보고 '집 앞에 이런 갤러리들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다음에 런던에 살게 되면 꼭 이 근처에 살아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음 해, 정말로 버먼지 (Bermondsey)에 머무르게 되었다. 일 년 뒤 사정이 생겨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열두 달 동안 화이트 큐브가 있는 버먼지 거리를 수없이 지나는 행운을 만끽했다. '집 앞'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걸어서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화이트 큐브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몰트비 마켓 (Maltby Market)에서 화이트 큐브 (White Cube)까지 가는 8단계


화이트 큐브 근처 카페 'Fuckoffee'.  커피 맛은 물론, 이름도 마음에 들고 분위기도 좋아서 자주 찾게 된다!


오랜만에 당시 살던 곳 근처의 다양하고 맛 좋은 먹거리와 수제 맥주로 가득한 몰트비 마켓에서 화이트 큐브까지 걸어가며 짧은 한 해 동안 자주 가던 카페와 마켓 등을 만나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ART in THE WHITE CUBE

1970년대에는 창고 건물이었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화이트 큐브 버먼지의 외관


화이트 큐브는 세계적인 아트 딜러 제이 조플링 (Jay Jopling)이 운영하는 현대미술 갤러리다. 현재 런던에는 두 개 지점(혹스턴 광장, 버먼지), 홍콩 간낙도 (Connaught Road)에 한 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아트 딜러 제이 조플링이 1993년 5월, 런던의 듀크 거리 Duke Street에 한 아티스트 당 단 한 번의 전시만 할 수 있다는 규칙을 가지고 연 아주 작은 규모의 갤러리였으나, 탁월한 안목으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트레이지 에민(Tracey Emin) 등 YBAs (Young British Artists) 멤버들의 첫 번째 전시 장소가 되면서 명성을 쌓아가다가 2000년 4월, 런던 혹스턴 광장 (Hoxton Square)의 출판사가 있던 1920년대 건물로 이전해 2012년 말까지 자리하게 된다. 2006년 9월에는 메이슨스 야드 (Mason's Yard)에, 2012년 3월에는 홍콩 간낙도에 두 번째, 네 번째 화이트 큐브를 열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다섯 번째 화이트 큐브는 2012년 상파울루에 열려 3년 간 사용된 후 문을 닫았다.


하얀 큐브를 모아 놓은 창고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주는 전시장 입구 복도


지금의 화이트 큐브 버먼지는 2011년 10월에 1970년대의 창고 건물을 개조해 버먼지 거리 (Bermondsey Street)에 열렸으며 약 1,630평 (58,000 sq ft)의 규모로 유럽에서 가장 큰 상업 갤러리이다. 또 갤러리 이름처럼 화이트 큐브 형식 (흰 벽에 띄엄띄엄 전시하는 형태)의 전시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런 아몬드 (Darren Almond) – Time Will Tell 전


대런 아몬드는 문화적으로 출발점과 도착점 상에서 오지의 개념과 오지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에 관심이 있는 작가이다. 보름달빛 아래에서 15분 이상의 노출로 촬영한 사진 작업 <풀문 Fullmoons >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북극권 한계선, 시베리아, 중국 성산(聖山), 나일강 수원지 등의 오지에서 촬영했다.


다른 작업들에서는 작가 본인의 가족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스크린 영상작업 <트랙션 Traction >에서는 아버지의 내면과 외면에 걸친 상처를 드러내는 초상을 그리는 동시에, 작가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스크린 영상 설치작업 <이프 아이 해드 유 If I Had Y ou > 젊은 날의 추억담과 노년의 존엄성에 대한 할머니의 초상을 그린다. <터미너스 Terminus >에서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지역의 실제 버스 정류소를 역사적 상실에 대한 설치작업을 위해 옮겨놓기도 했다. <민타임 Meantime >에서 작가는 선적 컨테이너를 통째로 작동되는 디지털시계로 바꾸어 대서양에 띄워 보내고 이를 기록했다. '시간'에 대한 작업은 <타이드 Tide >에서도 이어지는데, 벽 전체에 600개의 디지털시계가 일제히 맞춰져 움직이면서 시간의 가차 없는 흐름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와 같이 개인적 혹은 역사적 기억뿐만 아니라 연속성과 단명, 시간과 지속성에 대한 사색을 표현하기 위해 영상, 설치,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다.


그는 1971년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 중이며, 테이트 브리튼, 화이트채플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5년에는 터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T I M E

화이트 큐브 형식으로 흰 벽에 전시되어 있는 타임 윌 텔 (Time Will Tell) 전시 작품들


타임 윌 텔 (Time Will Tell) 전시에서 새로 발표한 대런 아몬드 (Darren Almond)의 작품들은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전 작업들과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특징은 시계라는 프레임에서 숫자를 꺼내 작가가 새롭게 구성한 프레임에 불규칙하게 배열했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숫자들이 나타나지만 동시에 정돈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완전하지 않은 형태를 지닌 것들을 포함해 무작위로 나열된 수많은 숫자들이 정돈된 느낌이 든 것은, 같은 크기의 프레임에 모눈종이 같은 수직선들이 열과 행을 정렬해주고 같은 크기의 숫자를 배치했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또한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녹음된 그리니치 천문대의 해상시계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재생되는 걸 들을 수 있다. 이는 대런 아몬드의 기존 작업을 모르는 관객이 작품을 마주할 때에도 앞에 놓인 수많은 숫자들을 시간과 연결시키고, '시간'의 개념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추상적 개념인 시간은 우리 인간 문화에서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난다. '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속성은 약속에 따라 기준을 정하고 보이지 않는 개념을 가시화하는 모든 개념으로 뻗어나간다. 교통 표지판, 지도 기호, 문자, 유일한 보편 언어인 숫자까지. 대런 아몬드의 작업은 현대에서 문명의 시작점까지 아우르는 듯했다.   


#The Bridge of After 8 – 화이트 큐브에서 음미할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

화이트 큐브  (White Cube) 내 사우스 갤러리 (South gallery)에서 진행되는 크리스틴 아이 츄 (Christine Ay Tjoe)의 전시

  

인도네시아 작가 크리스틴 아이 츄(Christine Ay Tjoe)의 Black, kcalB, Black, kcalB 전 역시 같은 날짜에 화이트 큐브 버먼지 내 사우스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며, 2월 6일부터 4월 7일까지 Young British Artists (YBAs)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의 A Fortnight of Tears 전도 열릴 예정이다.



[White Cube 운영 시간 및 주소]

운영 시간: 월 - 휴관 / 화부터 토까지 -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일 - 오후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소: 144 – 152 Bermondsey Street London SE1 3TQ

연락처: +44 20 7930 5373


[참고 사이트]

화이트 큐브 (White Cube): www.whitec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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