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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희준 Apr 28. 2016

재미있는일이라면 뭐든지 가르쳐드립니다 합자회사  4화

노희준




#4  



대학원에 입학한지 육 년째 되는 해 나는 대학에 첫 번째 원서를 집어넣었다. 남쪽 끝에 있는 대학이었다. 일 순위로 올라갔지만 나는 임용되지 않았다. 나를 추천한 교수는 도대체 면접을 어떻게 본 거냐며 화를 냈다. 나는 마음에 불편한 게 있으면 어이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마음속에 나를 방해하는 귀신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가 실수한 게 뭔지를 이해했다. 요즘 신입생 모집이 쉽지 않은데, 만약 과에 미달 사태가 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 소설을 열심히 쓰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은 어디까지나,


- 소설을 열심히 써서 이름을 드날리면 어찌 신입생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뜻으로 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면접관은,


- 학교에 학생이 안 오면 때려치우고 소설가로 살아야죠.


라는 의미로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참 뒤에나 할 수 있었다. 배드민턴공이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게 배드민턴공인지 조차 알아채지 못할 때가 인생에는 더 많았다. 면접을 보기 직전에 나는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내가 붙으면 너는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여자친구는, 난 절대 거기 안 갈 거야 ㅎ, 라고 대답했다. 하필이면 그 즈음 직원이 나를 호명했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어볼 기회를 놓친 채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면접을 보는 내내 ㅎ 라는 짧은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면접관들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여자친구가 자꾸만 ㅎ 하고 웃었다. 아직 결혼을 안 하셨네요? 혹시 독신주의자이신가요? 라는 질문에도 ㅎ. 줄곧 서울에만 사셨네요, 지방생활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라는 질문에도 ㅎ.


나는 그 ㅎ의 의미가 뭘까를 생각하다 면접관의 질문을 되묻곤 했다.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집어넣었을 때, 그 과 교수님이 빙모상을 당하셨다. 과는 같지만 세부전공은 다르고, 부모님도 아닌 장모님이라는데 과연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혹시 몰라 들렀는데 웬걸, 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자신의 남편까지 동반하고 장례식장에 와 있었다. 대단한 집안의 딸이었고 남편 역시 꽤 덩치 큰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강남 논현동의 팔십 평대 맨션에 살고 자산은 백억이 넘을 거라는 얘기도 공공연했다. 어마어마한 부자치고는 옷차림도 소박하고 표정도 몸가짐도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해 보여서 어리둥절했는데 이런, 같은 전공 교수님이 식장에 나타나자마자 그의 눈빛이 한 마디로 돌변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서두르고, 안절부절하고, 이제나저제나 눈치를 보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일어서서 능숙하게 악수를 하고 매끄럽게 교수님을 자신의 앞자리에 앉혔다. 노련하고 빈틈없는 맹수의 눈빛은 그새 존경에 가득 찬 젊은 학생의 눈빛이 돼 있었다. 그 눈빛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알아버렸다. 나에게 절대로 그들을 이길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세 번 정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나에게 그런 눈빛을 소유할 기회와 경험은 결코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애들은 자꾸 커 가는데.]


최종면접을 열흘 앞두고 뜬금없이 새벽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경쟁자도 있었다. 나는 마음에 불편한 게 있으면 어이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마음속에 나를 방해하는 귀신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나는 열흘 동안 시강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시강에 대한 메일을 읽었는데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대목을 번번이 놓쳤다. 그게 내가 이해한 대로 “발표 자료”라는 일반적 의미이기는커녕 파워포인트라는 특정 프로그램을 지시하는 말임은 시강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서야 알았다. 경쟁자가 면접 대기실에 들어와 조교한테, “이 발표 자료 종이로도 좀 뽑을 수 있을까요?”라고 했을 때.


빔프로젝터를 위한 파워포인트 문서를 뜻하는 말로 널리 관용화된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말을, 굳이 엄격한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여 A4 용지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간 나의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던 것일까. 무의식은 도대체 왜 나로 하여금 그런 인식의 착각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일까.


나는 녀석의 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숙취는커녕 평화로운 기분으로 일찌감치 일어나 아빠 주변을 맴도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은 일이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어쩌면 저런 게 행복이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임용되면 녀석은 계약직 교수의 자리조차 내놓아야 할 거였다. 지금까지는 애들이 어리기나 했지, 이제 와서 시간강사 월급으로 되돌아가 네 식구를 먹여살리는 건 어불성설일 테고….


그래,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다. 나는 가족을 가진 녀석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것뿐이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사실은 단순하게 그들이 나보다 뛰어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오직 분명한 것은,

어차피 안될 바에는 희망이 없는 편이 낫다는 거였다.





2등이건 20등이건 결과는 같다. 설사 200등이라 해도 2등과 똑같이 시간강사다. 아니다. 말을 이렇게 두루뭉수리하게 해서는 안된다. 2등이나 20등은 그게 그거지만 200등이라면 확실히 2등보다 낫다고 봐야 한다. 200등이면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먼 풍경에 한눈을 팔 수도, 때로는 산책하듯 여유롭게 길을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2등과 20등은 오로지 트랙 위를 뛰기만 해야 한다. 그들에게 1등을 쳐다보는 일 외의 모든 것은 사치에 불과하니까.


그리하여, 꾸준히, 한결같이 2등의 자리를 지키며 나는 십 년간 시간강사였다. 시간강사는 인턴사원과 같았다. 아니다. 말을 이렇게 애매하게 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인턴사원은 일 년 내로 됐는지 안됐는지가 결판나지만, 시간강사는 십 년이 지나도 채용 여부를 점칠 수 없는 인턴사원이었다. 나는 인턴사원으로 정년을 채우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그것도 능력이 아주 뛰어나야 가능한 거였지만.


둘째 아들은 무슨 일을 하시냐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한동안의 침묵 끝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다. 글쎄 그게 그러니까, 그 녀석이 뭘 하더라…. 당신의 기억이, 과거로 돌아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가 결코 없었다. 12년 전에 대학원에 들어갔고 5년 전에는 박사학위를 땄다. 시간강사는 아르바이트일 뿐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막내아들은 소설가, 라고 대답하실 수는 없었던 걸까?


잠시의 침묵 후에 아버지는 내일 아침에 올 노 교수 얘기로 돌아갔다. 정지관이라는 사람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꼭 전해달라고,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버지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정지관은 세무사였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모두 그럴법한 일이라고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평생 공과금을 기한 내에 못 낼까 봐, 에어컨을 켰다가 전기 누진세가 적용될까 봐, 플러그를 뽑아놓지 않았다가 불이 나서 유일한 재산인 빌라를 날릴까 봐, 변기나 수챗구멍이 막혀 공사비가 들까 봐 걱정하며 사신 분이었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오면 가족 중의 누군가는 에어컨부터 켤 거라고 상상한 적이 있었다. 변기에 휴지도 마음껏 집어넣고, 거실 불도 막 켜놓고 다닐 거야, 라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 불경한 마음조차 무색하게도 아버지는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사인은 폐렴이었지만 심각한 저체중이 진짜 원인임은 누구나 알았다. 살만 찌지 않으면 장수한다는 믿음이 확고한 분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아버지의 체중은 45킬로그램이었다.


장례식 내내 아버지의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내가 못 알아들은 문장이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느라 슬플 새도 없었던 나는, 상조 직원들이 아버지를 염하는 새벽녘에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며 마음속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말을 했다. 반말로, 아빠 잘 가, 잠시만 갔다가 내 아들로 태어나 줘, 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아빠가 돼서 재미있고 신나는 생각만 하면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줄게.


꼭이야 꼭,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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