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
[절필(絶筆) - 붓을 놓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 것, 옥스퍼드 사전]
살면서 여러 번 절필했다.
가장 큰 절필은 대학 시절에 찾아왔다. 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십 대 청년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그 무게에 압도되어 절필을 선언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글쓰기 경험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경험 말이다. 경험 없이는 통찰도 없는 법. 오랜 삶에 대한 경험은 통찰로 이어지고, 그윽하고 짙은 향이 나는 글로 이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나태에 대한 핑계였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절필하고 긴 시간이 지났다.
학창 시절 선배 하나는 음악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이 시대의 불운한 청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도 음악 전공이 아니었다.
공무원 준비, 알바, 취직,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결국 그는 음악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홍대 앞이었다.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뚱땅거리며 버스킹 하는 그는 참 행복해 보였다.
나 또한 절필한 후 치열한 삶의 현장에 돌아왔지만, 결국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나 탐낼 훌륭한 직장을 가지고, 모니터 앞에서 팬대를 휭그르르 돌리며 폼나게 일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작품 구상만 가득했다.
결국 글을 쓰는 게 행복했던 모양이다. 잘 쓰던 못쓰던, 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던,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찾지 않아도 그것이 나를 찾는 모양이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니까.
그렇게 나는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도 참 웃긴 게,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한 문장이라도 글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카뮈의 '페스트'에 나왔던 첫 문장밖에 못쓰는 작가도 작가인 것이다.
그러니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읽히고 팔리는 유명한 작가', '돈을 잘 버는 작가', '글만 쓰는 전업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이다. 혹은 비뚤어진 시선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돈을 잘 벌고 싶은데 그걸 글을 써서 하고 싶다고. (번지수를 잘못짚었다. 대다수 작가는 돈을 못 번다.)
한 때는 요즘 한창 뜨는 스낵 컬처에 발을 담그려고도 했었다. 순수한 재미만을 추구하는 길. 결국은 포기했다. 작품성에 집착하는 예술가의 기질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고(그것도 영어로), 갓난아기를 돌봐야 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느려 터진 나의 글쓰기로 하루 1만 자, 5천 자 두 편이라는 스낵 컬처 독자들의 요구사항을 맞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재미있는 글을 쓰는 법도 몰랐지만.
결국 기존에 구상했던 작품들을 마무리하는 선에서 나 자신과 합의했다. '버튼'이라는 작품은 무려 5년간 구상하고 1년간 집필한 작품이다. 원고지에 연필로 썼으면 원고지 수천 장은 그냥 날렸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써먹고도 겨우 그 정도 작품에 그쳤으니 사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https://brunch.co.kr/@londondaddy/41
'식물인간' 또한 대학생 때부터 구상하던 작품... 원래는 스릴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달달한 사랑 얘기가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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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의 아내'는 가장 짧은 시간에 쓴 글이다. 놀랍게도 랜덤으로 세 개의 단어를 뽑아 소재를 얻었다. 집에서 두더지가 나왔다는 친한 뉴요커 형님의 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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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내가 고등학교 때 에드가 앨런 포를 감명 깊게 읽고 쓴 초고를 나중에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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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을 것이라고는 단편 몇 작품 되지 않지만 글을 쓰는 동안 너무 행복했고, 재미있게 읽어준 분들이 있어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도 나는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돈을 버는 작가, 많이 읽히는 작가, 전업작가가 되려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글 쓰는 행복을 찾아 절필과 집필을 반복하는, 행복을 위해 글을 쓰는 나는 작가도 아니고 비작가도 아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 정의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