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대한 생각
외삼촌은 백수 생활을 오래 했다.
그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해줬던 어이없는 얘기가 있다. 하루는 당구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잘 수 있을까?'
할 일도 없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렇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간중간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밥도 안 먹고 계속 잠만 잤다고 한다. 그렇게 32시간을 말이다.
재미있는 건 그가 더 이상 잘 수 없었던 이유다. 절대 죄책감 때문도, 배고픔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허리가 아파서"였다. 아마 좋은 침대가 있었다면 기네스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방에 갔다가 5AM 클럽이라는 책 표지를 보고, 영감을 받아 5시에 일어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원래 6시에 일어났으니 1시간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 셈이다.
한편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이란 책에 따르면 하루 8시간은 자야 알츠하이머를 방지하고 기억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한다. 8시간 자고 5시에 일어나려면? 9시에 자야 한다.
그래서 9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 운동과 명상을 하겠노라 아내에게 통보했다. 아내는 피식 웃었다.
1월 2일에 제일 북적이는 헬스장을 가는 심정으로 9시에 잠을 잔 첫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조깅을 하고, 명상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썼다. 시간이 남아서 책도 읽었다.
그런데 바로 둘째 날부터 이런저런 핑곗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악명 높은 영국 날씨는 겨울에 절정에 이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려 5개월간 거의 매일 아침 비가 왔다.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딱 우울할 정도로만 추적추적 내린다.
그러다 보니 5AM 클럽의 첫 임무인 조깅부터 무너졌다. 아침부터 젖는 게 싫었다.
잠을 자는 것도 문제였다. 시험 기간에 제일 재미있는 100분 토론처럼, 평소에 보지도 않던 사극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9시에 자야 하는데 10시, 11시에 자다 보니 5시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며칠 만에 억지로 9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것을 그만뒀다. 그러나 아직도 내 핸드폰의 알람은, 종잇장처럼 얇은 내 의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늘 5시에 맞춰져 있다.
최고로 행복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보자.
우선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온도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추워도 안되고 너무 더워도 안된다. 여름철 홑이불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약간 서늘한 편이 좋다.
이불은 포근함을 위해 반드시 덮어야 한다. 두꺼운 이불보다는, 적당히 얇으면서 부드러운 감촉의 이불이 좋다. 베개는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하고, 딱딱한 목침이나 이상한 알갱이들이 들어있는 배게보단, 역시 부드러운 감촉의 커버가 있는 솜배게가 좋겠다.
침대는 몸을 감싸 안듯이 푹신해야 한다. 눕자마자 "아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이 상태로 평생 못 일어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침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인생의 행복을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일이다.
침대는 또한 넓을수록 좋다. 더블보다는 킹, 킹보다는 캘리포니아 킹이다. 캘리포니아 킹 사이즈 침대에서 한 번 자고 나면, 다른 침대는 그냥 가구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굴러다니는 괴팍한 잠버릇의 소유자라도 행복하게 잘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킹 사이즈 침대다.
조명은 반드시 어두워야 한다. 저녁은 든든히 먹고 소화까지 다 되어서, 속이 더부룩해서 깨거나 자다가 배고프거나 목이 말라 한 밤중에 냉장고의 고등어를 찾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부터는 개인별로 취향이 좀 갈린다. 내 취향은 이것이다. 먼저 테레비(티비나 텔레비전이라고 하면 느낌이 안 산다)을 켠다. 채널을 돌리다가 제법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오면 멈추고, 잠든 후에 테레비가 꺼질 수 있도록 취침 타이머를 맞춘다. 그렇게 테레비를 보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드는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하게 자는 방법이고, 잠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굳이 어렵게 돈을 버는 방법을 궁리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면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적당히 먹고 따끈한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면, 일론 머스크도 부럽지 않은 마음 부자가 될 수 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잠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잠이 마치 인류의 공동의 적이라도 되는 것 같다.
어떤 아이가 6시간만 자고 공부를 하면 그 아이를 이기기 위해 어떤 아이는 5시간만 잔다. 또 다른 아이는 5시간 자는 아이를 이기기 위해 4시간만 잔다. 정상적으로 8시간 자는 아이는 모두가 4-6시간만 자고 공부를 하기 때문에 뒤쳐지게 된다.
이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게임이다.
반대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게임도 있다. 잠을 많이 잘수록 성적을 잘 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외삼촌이나 나같이 무한정 잘 수 있는 게으름뱅이들에게 너무 유리할 테니, 최대 10시간까지만 성적에 반영을 하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잠을 자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행복해지기 위한 경쟁을 하나씩 만들어간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아이와 놀아주는 경쟁, 친구들과 더 즐겁게 노는 경쟁,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경쟁, 이런 경쟁 말이다.
물론 될 턱이 없으니,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잠자기"부터 시작해 보는 걸 추천한다. 오늘부터 더 자고, 덜 열심히 살아보는 거다. 오늘을 팔아 내일을 벌려하지 말고, 오늘부터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