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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Mar 28. 2024

우리가 즐겨 먹는 생물의 복지에 관하여

단편문학 챌린지 - 1화

친애하는 위원장님 및 위원분들께.


오늘 이렇게 펜을 잡은 이유는, 우리가 즐겨 먹는 이 생물의 복지에 관하여 다시 한번 위원회 분들의 결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생물의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분별한 방목으로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어난 결과, 각 개체의 행복도가 떨어지고 상품의 평균적인 품질저하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저희의 수출 전략에도 차질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이 특별한 식재료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슬픈 결과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저 같은 미식가라면 말입니다. 요즘 최상품은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는 위원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 생물의 복지를 개선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이 식재료를 아직 접해보지 못하신 위원분들을 위해 이 식품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먼저 이 생물은 사육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들어갑니다. 가장 맛이 좋은 시기까지 사육하려면 거의 이십 년이나 걸리니까요. 맛이 좋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 못지않습니다.


또한 가둬서 사육하기도 어렵습니다. 최상의 조건에서 가둬놓고 사육하려는 역사상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시도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형편없는 품질 때문에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방목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을 가공하는 것은 이제 자동화되어 많이 편해졌습니다. 먼저 앞다리와 뒷다리를 컨베이어벨트에 고정시킵니다. 곧 컨베이어 벨트가 가공 기계를 지나가면, 머리 부분이 잘라지면서 싱싱한 뇌가 몸통과 분리됩니다. 다른 부위는 보통 사료로 쓰이거나 버리고, 뇌만 먹습니다.


그렇게 수확한 뇌를 무화과와 함께 약간의 향신료에 절여 살짝 구워내 먹습니다. 이때 모양을 살리기 위해 자르지 않고 겉면만 마리네이드하여 오븐에 굽습니다. 최상품은 그것 자체로 먹어도 좋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은 빵이나 쌀을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 식품의 복지에 관해...


남자는 여기까지 쓰고 편지와 펜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각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문이 열리자 급사가 음식이 담긴 뚜껑 달린 그릇을 카트에 싣고 들어왔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한 먹음직한 뇌가 보였다.


“20년 된 캘리포니아산 최상품입니다. 같은 곳에서 난 레드 와인과 함께 즐겨주십시오 “


급사는 주방장의 말을 대신 전하고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


남자는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약간 잘라, 무화과와 함께 입에 넣었다. 향긋하고 고소한 맛과 짙은 풍미가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다시 편지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이 식품의 복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저희가 보기에는 우습고 저급하지만 일견 말이 되는 이 생물들의 이론에서 따왔습니다.


이론에 따르면, 식량 생산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나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식량 생산이 개체 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원인이 아닌 이론이 제시한 해결책입니다. 해결책은 다름아닌 개체 수의 극단적인 감소였습니다. 산아제한 같은 적극적인 방법부터 전쟁과 같은 간접적인 방법까지, 어떠한 방법이라도 좋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개체수를 줄이는 것만이 방목장에서 바글거리며 살아가는 이 생명들의 복지를 증진하고, 나아가서는 식료품으로의 품질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태껏 전쟁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이 생물들의 복지를 크게 개선해 왔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복지정책을 펼치기 전에, 위원회 분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편지 말미에 그럴듯한 사인을 하고 보좌관을 통해 편지를 부쳤다. 곧 보좌관의 안내에 따라 그는 다음 일정을 소화한다.


커튼이 열리고 그가 등장하자 박수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사회자가 그의 등장을 알린다.


“미합중국 대통령님께서 나오십니다.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식품들 앞에서 연설하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누가 돼지나 소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겠는가?


남자는 이것도 다 이 생물들의 복지를 위해서, 나아가서는 더 깊은 풍미를 위해서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다가도 아까 먹던 감칠맛 넘치는 뇌요리가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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