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자동차로 여행하기 (5)
라벨로를 끝으로 아말피 해안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향한다. 로마에서는 덥기도 하고 주차도 하기 힘들어서 그냥 택시를 타고 다녔다. 덕분에 돈은 조금 들었지만 편하게 다녔다.
우선 가장 먼저 콜로세움으로 향한다. 매주 첫째 주 일요일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 그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다. 미리 예약해 놓은 티켓으로 콜로세움에 들어간다.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티켓이었다.
티켓 구매는 아래 링크에서...
https://www.getyourguide.com/colosseum-l2619/colosseum-roman-forum-palatine-hill-with-hosted-entry-t225249/
이른 시간에 갔더니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했다. 예전에 방문했을때는 로마 병사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물론 유료) 호객행위를 했었는데,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클린(?)한 여행이 되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역시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로마다보니, 폼페이에서 봤던 콜로세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웅장했다. 두 번째 방문인데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에 왔다는 걸 증명하듯 열심히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콜로세움은 한번에 최대 8만 명까지 수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의 주 경기장인 캄 노우가 약 10만 명이라고 하니, 2천 년 전의 경기장도 요즘의 경기장 못지않은 것 같다. 아마 당시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간식거리들을 팔지 않았을까?
위 사진을 보면, 바닥이 없고 방들처럼 되어있는걸로 볼 수 있는데, 저 위에 나무판 등을 깔아 실제 경기는 그 위에서 했다고 한다. 그 밑에는 검투사 휴식장소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콜로세움을 나와본다. 콜로세움 내부에는 사실 별 볼거리가 없다. 예전 검투사 경기를 재연한다거나 하면 정말 흥미진진했을 텐데, 그냥 건물만 떡하니 있다. 안보다 바깥에서 보는 게 더 흥미롭다고나 할까ㅎㅎ
도대체 어떻게 찾아낸건지, 사진 찍는 스폿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본다. 로마 여행도 계획 없이 다니는 우리라 그냥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는 언덕을 찾아간다.
바로 콜로세움 근처의 오피오 언덕 (Oppio Hill)인데, 구글 맵에서 Oppio Caffe를 검색해서 찾아가면 쉽다. 유명한 인스타그램 포토스폿으로,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른 포토스팟으로는 포로로마노 안의 언덕이 있다. 개인적으로 오피오 언덕의 뷰가 훨씬 나았다.
콜로세움 앞에는 개선문도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업적을 기념하는 개선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구입한 콜로세움 티켓에는 포로로마노가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고민했지만, 갈까 말까 고민할 때는 가라(?)는 명언을 따라 들어가 본다. 그리고 곧 후회한다. 귀중한 고고학의 산실이라고 하나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는 그저 벽돌들의 무덤으로 보였다. 역시나 폼페이처럼 이탈리아의 뜨거운 해를 피할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로마에 와서 콜로세움을 보지 않는 것은 마치 대전에 가서 성심당을 들리지 않는 것, 남산에 가서 남산타워를 들리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 정도로 콜로세움은 로마 여행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념사진을 남기기에는 훌륭한 장소이지만 콘텐츠 면에서는 무척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배우들로 검투사 경기를 재연하던가, AR같은 기술을 활용해 현장감 넘치는 관광코스를 개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콜로세움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굳이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개발이라는 마인드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다음번에 다시 콜로세움을 방문한다면, 굳이 티켓을 구매하지 않고 밖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의 배꼽이라 불리는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콜로세움에서 가깝기 때문에, 콜로세움을 구경하고 잠깐 들리기에 괜찮았다. 광장은 사실 볼품이 없다. 베네치아 광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통일 이탈리아의 첫 황제인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었다. 안에도 무료입장이 가능한데, 별다른 볼거리는 없었다.
이번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 유명해진 진실의 입으로 향한다. 거짓말을 한 이가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 곳인데, 실제로 중세시대에는 심문자가 진실의 입 뒤쪽에서 도끼로 손을 자르기도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로마에서는 편안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학창시절 배낭여행을 할 때는 모든 관광지를 걸어서 다녔었는데, 로마가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주요 관광지를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아이의 컨디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진실의 입은 코스메딘 산타마리아델라 성당 옆에 놓여있는데,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사진 찍는 것도, 성당 입장도 무료. 성당도 아담하니 제법 괜찮았다. 역시 진실의 입에는 손을 넣고 찍는 것이 국룰!
진실의 입은 이게 전부라 조금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행금지가 막 풀린 시점이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기다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만약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면 조금 시간이 아까울 듯. 로마 여행의 필수 코스 까지는 아니었다.
다음 코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라고 할 수 있는 트레비 분수였다. 트레비 분수에는 돌아 앉아 동전을 어깨 너머로 한 번 던지면 다시 트레비 분수에 돌아오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그 사랑이 깨진다는 속설이 있다. 예전 배낭여행을 했을 때 동전을 던졌는데 정말 돌아왔는데, 어찌 보면 속설이 이루어진 셈.
맑은 날씨 덕분에 트레비 분수가 정말 하얗게 빛이 났다. 시원하기까지 해서, 오히려 콜로세움보다 더욱 만족스러웠던 트레비 분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것?
트레비 분수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로마 시대에 지어진 신전인 판테온이 나온다. 이번 로마 여행에서 유일하게 삼십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린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트레비 분수와 가깝다 보니 트레비 분수를 보고 들리는 관광객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다신교인 로마답게 모든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라는 의미의 판테온은 로마 시대에 지어진 건물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2천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쾌적하고 상태가 좋았다. 다만 로마의 관광지들이 그러하듯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지로서의 콘텐츠는 부족했다.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판테온을 둘러보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유럽 전역은 물론 뉴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인기 초콜릿 체인인 뱅키(Venchi)에 들렀다. 뱅키 로마점은 카운터 뒤에 흐르는 초콜릿 폭포가 인상적이다. 젤라토와 초콜릿, 음료 등을 판매하는데, 역시 믿고 먹는 뱅키, 제법 비싸지만 후회하지 않는 맛이었다. 이탈리아에 간다면 꼭 한 번쯤은 가볼 만할 듯.
로마 여행의 이틀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교황이 통치하는 바티칸 시국으로 향했다.
바티칸 여행지는 크게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으로 나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미술품들을 관람하다보면 그 유명한 천지창조 천장화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어지게 되어있으니, 사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먼저 성 베드로 대성당을 들어가기에 앞서 넓디넓은 성 베드로 광장이 나온다. 이곳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대성당과 연결된 미켈란젤로 돔에 올라가는 것이다. 돔에 오르면 그 유명한 열쇠 모양의 광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무척 길고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계단을 따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포기했다.
참고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들어가는데 복장 제한이 있었다. 민소매와 슬리퍼 등은 안되고, 반바지 또한 안된다. 미리 준비해 가서 되돌아오는 불쌍사를 막도록 하자.
바티칸 박물관 입구는 대성당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잘하고 갈 것을 추천한다. 예전 배낭여행할 당시에는 연결이 되어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갔을 때는 다시 베드로 광장을 돌아 바티칸 시국의 성벽을 따라 한참 걸어가야 했다.
바티칸 자체가 볼거리가 무척 많기 때문에, 설명보다는 사진으로 감상해 보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예술품은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조각인 피에타가 아닌가 싶다. 2012년 피에타의 레플리카가 예술의 전당에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모조품을 보고도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옷 주름 하나까지, 진정한 예술가의 혼이 느껴지는 위대한 작품이었다. 바티칸에 간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대성당을 떠나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한다. 바티칸 박물관은 영국박물관 (구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유명한데, 유명세에 걸맞게 소장품의 양이 많을뿐더러, 그 가치또한 어마어마하다. 예술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객이라면 하루로는 부족할 것이다. 게다가 바티칸 박물관의 마지막에 볼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비록 신을 위해 바친 작품이지만 미켈란젤로 한 인간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수많은 작품 중에 굳이 몇 개를 꼽자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헬레니즘 시대의 위대한 걸작인 라오콘 군상이 아닐까 싶다. 아테네 학당은 수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묘사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가장 중요 인물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운데에 두고,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란 철학자들은 죄다 모아놨다.
그림의 중심에는 플라톤이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상을 중시하는 플라톤과 현실을 중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앞 계단에는 웬 거지 하나가 반쯤 누워있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비키라고 했다는 패왕색 패기의 원조(?) 견유학파의 디오네게스라고 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라오콘 군상. 개인적으로 역동적인 조각을 참 좋아하는데, 파리의 로뎅 박물관에서 정작 로뎅의 작품보다 역동적인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에 더욱 매료되기도 했었다. 라오콘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등장인물로,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두 아들이 바다뱀에 물려 죽게 된다. 석상은 그 장면을 묘사했는데, 바다뱀에 칭칭 얽혀있는 두 아들과 고통스러워하는 라오콘의 표정이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일설에 따르면,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바티칸 박물관이 지어졌다고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을 쭉 관람하다 보면, 마지막으로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미켈란젤로의 최대의 걸작인 천지창조 천장화일 것이다. 들어가는 순간 우선 수많은 관람객들, 그리고 사진을 찍지 말라고 외쳐대는 경비원들에 압도된다. 그러나 역시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천장을 빼곡하게 채운 천장화일 것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사이트로 대신한다.
https://www.vatican.va/various/cappelle/sistina_vr/index.html
이외에도 블로그에 담지 못한 수많은 유물과 예술품들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반드시 최소 하루 일정을 잡아 바티칸 시국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턱이 많고 좁은 계단이 많아 유모차로 다니기 제법 힘들었다. 아이와 여행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이 상징하듯, 로마는 서구 역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도시였다. 그러다 보니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많은 도시였다. 특히 블로그에 전부 담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식도락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훌륭한 예술품 못지않게 도시 자체의 풍경도 예술적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로마만큼 다양한 볼거리는 없을 정도로 로마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거의 20년 전인 2004년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보았던 로마와, 아이와 함께 여행한 로마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한편 로마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콜로세움은 콜로세움이고, 바티칸은 바티칸이었다.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다는 뜻도 되고, 나쁘게 말하면 발전이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마 20년 후에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20년도 아닌, 10년 단위로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로마는 역시 로마였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너무 유명한 관광지가 그렇듯 로마에서 진정한 "여행"이나 "자신의 발견"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로마로 몰려드는 이유는 그만큼 로마가 가진 역사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리라. 콜로세움을 뒤로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는 약간의 가벼움으로 로마를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