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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보헤미안 Aug 11. 2021

하필 인간을 사랑하는 바람에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 <인어공주> 재창작

 “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서준의 요구에 윤박사는 아찔해졌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정신을 컴퓨터로 만든 가상 세계에 업로드 해서 영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더 헤븐 인터랙티브(The Heaven Interactive)’ 서비스의 개발단계에서부터 AI들을 학습시키고 성장시키며 온갖 예상밖의 일들이 발생하는 걸 보아왔던 윤박사였지만 이번처럼 아예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AI는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사람이 되고 싶다니, 도대체 왜 그러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저 유라님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유라...... 유라라면 지금 서준이 모시고 있는 최원식 회장의 손녀였다. 최원식 회장은 얼마전 헤븐에 업로드 된 새 입주민이다. 접속기록을 보니 유라는 최회장의 유족들 중에서는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긴 시간동안 최회장과 교류하고 있었다. 더 헤븐 인터랙티브는 일반적인 가상현실 게임과 비교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몰입감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니, 유라는 재미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현실세계의 사람을 사랑하게 된 AI라니. 유례가 없는 만큼 흥미로운 연구대상이긴 했다. 헤븐의 환경을 처음 설계할 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NPC(Non Player Character) 역할을 맡아줄 AI의 기초설계와 학습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특히 진짜 사람처럼 오욕칠정의 욕망과 감정을 매우 정교하게 시뮬레이트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AI의 감정은 같은 AI를 대상으로 하거나 헤븐의 거주민들에게 표출되는 감정이었지 지금처럼 현실세계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이론적으로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사람이 되려면 당장 온전한 인간의 육체가 필요한데 법적·윤리적 문제없이 그걸 도대체 어디에서 구할 것이며, 설령 운 좋게 하나 구한다 하더라도 네가 사람이 되기 위해 포기해야할게 너무 많아.” 

 “인간의 육체라면......사실 생각해 놓은 게 있어요. 지난번에 부모님과 함께 업로딩 상담 받으러 왔다가 비용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 기억나세요? 그 청년이라면 분명히 몸을 내어 줄 거예요. 그는 무료로 헤븐으로 이주하게 되는 거고, 청년의 가족들은 헤븐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청년을 언제든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저는 인간의 몸을 얻게 되는 거고, 박사님은 소중한 임상 사례를 얻을 수 있는 거죠. 모두가 윈윈이라구요.”

 서준이 저렇게까지 현실적으로, 그것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원둔 걸 보니 이 문제에 얼마나 진지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이 하는 말들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결정적인 사실 한 가지만 빼면. 

 “서준아, 그때 그 대학생이 애초에 왜 상담 받으러 왔던 건지 알면서 그러는 거야? 그 아이 지금 나노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한 불치병을 앓고 있어. 시한부 인생이라고. 그런 몸을 얻어 봐야 너도 얼마 못가서 죽게 될 거야. 네가 지금 잊고 있나본데, 한번 헤븐 밖으로 다운로드가 되면 다시는 헤븐으로 돌아오지 못해. 건강한 몸으로 간다고 해도 말릴 판에 몇 년 살지도 못할 몸으로 가겠다고?”

 더 헤븐 인터랙티브의 초창기시절 예외적으로 다운로드 후 재 업로드를 시행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그때 일로 헤븐의 시스템이 크게 망가지는 바람에 사업 전체가 좌초될 뻔한 위기가 있은 후로 재업로드는 철저히 금지된 상태였다. 당시 시스템 전체를 초기화 하고 데이터를 롤백하는데 쏟아부은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윤박사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예. 박사님. 다운로드를 위해 뇌를 해킹하면 시냅스가 오염되어서 브레인 스캔을 시행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도, 개체 동일성(Individual Identity)을 유지하기 위해 헤븐에 존재하던 제 기억은 삭제되고 자아는 초기화 된다는 사실도, 그 청년이 불치병 때문에 잘해봐야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것도, 그 병 때문에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계속해서 통증이 올 것이라는 것까지 모두 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걸 알면서도 굳이 하겠다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냐?”

 사실 그걸 묻는 윤박사도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사랑만큼 누군가를 무모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좋아요. 헤븐에서 만났던 그녀의 아바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고 싶어요. 그녀가 사는 세계에서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싶어요. 그래서 마침내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된다면, 0과 1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몸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내 몸으로 그녀를 품속 깊이 안아주고 싶어요. 그걸 위해서 잠깐 동안 타오르고 사그라들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할게요. 제게는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일이니까요.”

 윤박사는 끝이 안 좋을 게 뻔히 보이는 선택을 하려는 서준이 안쓰러웠다. 자식 같은 존재들 중 하나가 기름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겠다는데,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서준아, 네가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작은 가능성만 믿고 너의 모든 것을 거는 건 너무 큰 도박 아닐까? 애초에 말이야, 지금 네가 느끼는 이 감정도 어쩌면 사랑이라고 믿도록 네 프로그램이 교묘하게 시뮬레이트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제 사랑을 두고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간의 사랑 또한 본질적으로 마찬가지예요. 일시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이 뇌에서 오가는 전기화학적 신호를 교묘하게 시뮬레이트 해서 만들어낸 허상일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제게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저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걸 위해 무엇이든 할 거라는 것만이 진실이죠. 거기에 가능성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고 이게 아니라면 그 작은 가능성마저 사라지니까요. 

 “에휴..... 알았다. 내 알아보마.”

 윤박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헤븐 관리자 계정에서 로그아웃했다. 더는 서준을 말릴 수 없었다.      




 “그럼 업로드가 다 끝나면, 남아있는 제 몸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원칙적으로는 업로드 후에는 안락사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저희가 연구목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마인드 다운로딩을 연구하게 되고요. 비유하자면 몸에 다른 이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결국 윤박사는 서준이 말한 그 청년을 만났다. 

 “어쩐지 무섭네요. 업로드를 마쳐도 제 몸에는 여전히 제 의식이 남아 있을텐데. 그 상태에서 실험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업로드를 시작할 때부터 수면마취를 하고 진행하거든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바로 헤븐에 도착해 있는 기분이 들 거예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마취가 깨기 전에 다운로드 실험까지 한 번에 다 마칠겁니다. 실험 당하는 기분은 느낄 틈도 없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하긴, 이 와중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앞에 놓은 서류를 넘겨가며 사인했다.      




 “으하하. 녀석 어쩐지 요즘 좀 나사가 빠진 것 같더라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 죄송합니다. 바로 후임자를 배정하겠습니다.”

윤박사는 헤븐에 접속해 최원식 회장에게 이 일을 알렸다. 관리자로써 AI의 돌발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의외로 서준을 이해했다.

 “아니야. 이게 자네가 죄송할 일인가. 사랑한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말려. 흐흐흐. 서준아, 이왕 이렇게 힘들게 나가는 거 가서 잘 해라.”

 “여러모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준이 진심을 담아 깊이 머리 숙여 인사했다. 마인드 다운로드를 위해 곁을 떠나려는 서준에게 최회장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서준아, 만약에 유라가 널 못 알아보거들랑,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고 한마디 해 보거라. 어쩌면 널 알아봐줄지도 모른다.”

 서준은 그 말에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헤븐을 떠났다. 한참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최 회장은 헤븐 밖의 유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준이 찾아가면 머물 수 있도록 돌봐주거라.’     




 마치 잠에서 깬 것처럼 서준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정말 미치도록 아팠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고 보니 서준은 비로소 자신이 인간으로써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났다. 윤박사가 알려준 바로는 골종양, 즉 뼈에 생기는 암이라고 했다. 마약성 진통제가 고통을 조금 줄여주긴 했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고, 하필 종양이 발병한 곳이 허벅지 부근이라 걸을 때면 고통이 더 심해졌다. 

 윤박사는 몇 주간 연구소에 머물면서 적응기간을 가지라고 했지만, 서준은 억지를 부려 이틀 만에 연구소에서 나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연구소 문을 나서자마자 유라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연구소 앞으로 차량이 한 대 도착했다. 유라가 보낸 차량이었다.      


 유라가 사는 곳은 거대한 성채 같았다. 초거대 기업의 후계자가 사는 곳 다웠다. 안내를 받아 유라의 집무실 앞에 서자 새삼 서준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발까지 떨려왔다. 

 “누구시죠? 서준씨가 온다고 들었는데.......”

 유라의 반문에 서준은 당황했다. 때문에 유라가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제가 서준입니다. 유라님.”

 “네?? 그럴리가요, 서준씨는 AI니까 로봇에 탑승해서 왔겠죠. 사람이 올 리가 없어요.”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아.. 그렇지..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걸 말하면 알아봐 주실거라고 최회장님이 말슴하셨습니다.”

 서준의 말을 듣자 유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음, 다른 건 몰라도 할아버지 곁에서 신뢰를 받던 분이라는 건 알겠네요. 지낼 곳을 마련해 두었어요. 옆에 서 계신 저분이 안내해 주실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그것도 저분께 말씀하시면 돼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가 부탁하신 특별한 손님이니까요. 제가 지금은 좀 바쁘지만 나중에 식사 한번 하도록 해요. 조만간 다시 연락할게요.”

 일을 하던 중이라 바빠서였을까. 유라의 사무적이고 딱딱한 말투에 서준은 말문이 막혔다. 당신을 이렇게 보고 싶어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참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다. 현실의 유라는 헤븐에서 보았던 유라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유라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 무렵 헤븐 시스템 한쪽의 음영지역에서 외부와 통화하는 인물이 있었다. 

 “변수가 생겼다지?”

 “네. 최근 떠들썩했던 다운로더가 타겟과 접촉했습니다. 타겟때문에 다운로더가 되었다는 얘기마저 있습니다. 당분간 이목이 집중될 것 같으니 불가피하게 계획을 좀 수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일단 실행은 보류하고 지켜보도록 하지. 그자가 방해꾼이 될지 조력자가 될지 지켜봐야할게 아닌가.”

 그 자는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즈막히 욕지기를 내뱉었다. 통화 내내 담담했던 모습과 달리 초초한 모양새였다. 공들여 짠 계획이 망가질 것 같은 불안함에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주위를 살피고는 다시 음영지역 밖으로 나와 인파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모든 일을 저 때문에 벌이셨다는 거예요? 단지 사람이 되어 저를 만나기 위해?”

 서준이 유라와 식사를 함께할 수 있게된 건 처음 집무실에서 만난 날로부터 거의 보름이나 지난 뒤였다. 서준이 유라에게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자 유라는 요리를 먹던 손을 멈추고 토끼눈이 되어 서준을 빤히 처다보았다. 

 “네.”

 서준은 짧게 대답하며 유라의 표정을 살폈다.

 “솔직히,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유라의 대답에 서준은 불안했다.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을 때는 안 좋은 결과는 일부러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 자리까지 올 용기를 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서준은 처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별채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서준에게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진통제를 미리 좀 먹어두었어야 했는데 맑은 정신에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 먹고 버텼다가 이런 낭패를 겪게 되었다. 진통제를 먹으려면 별채까지 걸어가야 했다. 몇 걸음 걷다가 서준은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통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정신마저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유라가 놀라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씨...! 서준씨...! 정신차려봐요. 서준아!!!”     


 한참 만에 서준이 정신을 차리자 유라가 곁에 있었다. 서준의 곁에서 걱정스럽게 서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도 보였다.

 “이렇게까지 몸이 안 좋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달리 수가 없었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몸을 내어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인간의 몸을 얻은 대신 저도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인거죠.”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진통제의 약기운 때문에 몽롱해진 서준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이후로 유라는 자주 서준을 찾아왔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은 꼭 서준을 만나러 와 주었다. 예전의 그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는 사라지고 다정하고 친근한 말투로 서준을 대해주었다. 여전히 몸은 아팠지만 서준은 행복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유라의 마음에 손끝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이 커져갔지만 그만큼 희망도 커져갔다.      




 그날따라 유라는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에 서준을 찾아왔다. 유라의 얼굴은 웃음기가 전혀 없이 심각했다. 곧바로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맞은편에 앉는 유라를 보자 중요한 이야기가 곧 있을 것임을 서준은 직감했다. 

 “정말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오늘에야 저도 결심이 섰어요. 말하지 않고 지금처럼 지낼까도 생각했지만, 서준씨를 위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요.”

 유라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제게도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좋은 사람이에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숨겨왔었는데, 이제 그 사람과 결혼하려고 해요.”

 유라의 말에 서준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라는 말을 이어갔다. 

 “서준씨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서준씨와 처음 식사했던 그날 이후로 늘 서준씨만 보면 안쓰럽고 애틋해요. 한때는 그 감정이 혹시 사랑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었어요. 희망과 기쁨이 아닌 슬픔과 안타까움이죠. 그래서 지금도 서준씨에게 이 말을 하는 게 많이 힘들어요. 서준씨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잘 아니까요.”

 서준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라도 서준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제가 서준씨를 대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예요. 서준씨에 대한 마음도 그대로일 거예요. 하지만 제 사랑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미안해요.”

 유라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서준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이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 느껴본 통증에 서준은 가슴을 부여잡고 밤새 흐느꼈다.       


 “그건 서준이 네가 진짜 사랑을 해서 그래.”

 전화기 너머의 윤박사가 말했다. 

 “사랑이란 건 원래 그런 거란다. 결국 세상 모든 사랑은 그 끝이 아프게 마련이거든. 하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결국은 다시 할 수 밖에 없는 게 또한 사랑이야.”

 “이렇게 아픈 것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넘보지 말걸 그랬어요.”

 서준이 훌쩍이며 말했다. 윤박사는 그런 서준이 안쓰러웠다. 

 “네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시간이 네 상처를 달래주고, 다시 사랑할 힘을 주었 을텐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 안타까운 일이구나.”     




 유라의 결혼식을 한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서준에게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상당히 음침했다. 

 “누구시죠?”

 “서준이 자네를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 두지. 자네가 꽤 흥미를 가질만한 제안을 하려고 말이야. 헤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려고.”

 상대방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서준은 전화를 끊으려던 손을 멈췄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헤븐 밖으로 한번 다운로드 된 인격을 다시 업로드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후후. 윤박사가 그랬을 테지, 시냅스오염 때문에 스캔하기 어려워지는 상태가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는 말은 안 해줬을거야. 안 그런가? 브레인 해킹 때문에 생긴 시냅스 오염은 스캐너의 인식불가 영역을 만들기는 하지만 사실 그 양은 10% 내외야. 자네의 기억과 인격의 10%쯤 잃었다고 한들 나머지 90%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걸 두고 자네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부족한 10%는 자동화보정을 통해 얼마든지 채워 넣으면 그만인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윤박사는 단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서준에게 해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윤박사는 사실 이것 때문에 재업로드를 절대 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꿨 을텐데 말이야, 사실 예전의 리업로더들 중 하나에게 헤븐 시스템의 물리법칙을 뒤틀 수 있는 능력이 생겨버렸지. 아마도 그 10%의 인식불가 영역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추정을 하고 있네만, 어쨌거나 그 능력이라면 헤븐 안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이야.”

 전화기 너머의 인물이 하는 이야기는 권력욕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솔깃할만한 이야기였다. 그 힘을 잘 이용하면 흑막 뒤에서 한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물론 그런자 들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결국 시스템을 파멸로 몰고갈 것이기 때문에 엄격히 제한해야만 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시스템 관리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둠속에 숨어 조용히 힘을 행사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봐야 어차피 업다운로드가 가능한 유일한 포트는 시스템 관리팀이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아무 소용도 없는 이야기로군요.”

 “훗, 그 방대한 시스템에 백도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미 안팎으로 그걸 가능하게 해줄 브로커가 있다네.”

 그런 상황이라면 분명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일단 그게 다 가능한 상황이라고 치고, 대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뭐죠? 아무런 대가없이 이 모든 일을 그냥 해 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말이죠.”

 “똑똑한 친구로군. 며칠 뒤에 내가 연락하면 자네가 머물고 있는 저택 전체의 보안시스템을 딱 25분간 해제상태로 세팅해 주면 되네. 그럼 내 사람들이 그 저택에서 타깃과 자네에 대한 전송작업을 바로 진행할걸세.”

 “잠깐만... 타깃이라고? 설마...”

 “그래 맞아. 사실 최유라에게 볼일이 좀 있지. 그래도 안심하라고. 그 누구도 다치거나 상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대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헤븐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이가 자네뿐인 건 아니야. 하지만 나가더라도 자네처럼 병든 몸으로 나가게 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런 면에서 최유라는 아주 이상적인 타깃이야. 젊고 건강한 몸에,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과 지위까지. 기왕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기로 한 이상, 그 정도 인물은 되어야 밖에서 지내기 좋지 않겠어?”

 서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는 상대에게 전율했다. 

 “설마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자네이기 때문에 받아 들일거라 생각했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영원불멸의 삶을 포기하고 거기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자네에게 아픔만 남겨준 그녀를 제물로 바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아보라는 거야. 나도 자네도 새로운 삶을 다시 한 번 얻는 거야.”

 서준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서준이 경비시스템을 해제하자 네 명의 사내가 저택 가운데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왔다. 그 중 둘은 묵직한 사각형의 장비가방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사내들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쉽게 유라를 제압해 결박했다. 그리고는 장비를 꺼내 거실에 늘어놓고 이리저리 연결했다. 장비의 세팅이 끝나자 그들은 마지막으로 유라에게 다가와 머리 여기저기에 전극을 붙였다. 

 “현장 준비 마쳤습니다.”

 사내들 중 하나가 전화기로 보고를 하자 헤븐에서 기다리던 사내도 넓직한 기계장치 위에 누웠다. 

 “여기도 준비됐으니 시작하지.”

 전화를 들고 있던 사내가 장비의 실행버튼을 클릭하자 화면상의 진행률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행률이 10%까지는 순조롭게 오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오류메시지가 뜨며 작업이 중단되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사내가 다시 장비의 세팅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을 때, 2층의 방문과 현관문이 열리며 경찰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시각 헤븐의 그 사내 앞에는 윤박사의 아바타가 홀연히 나타났다. 

 “역시 네놈이었구나. 추격을 피해 요리조리 잘 숨더니 결국 이런 일을 벌였군.”

 사내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벌떡 일어나 윤박사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땅에서부터 갑자기 철창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그 사내를 가두어버렸다. 

 “제길, 멍청한 놈이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마는구나.”

 서준이 사내에게 응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배신할거라 생각했나보죠?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유라님도 그렇지만 윤박사님은 내게 어머니 같은 분이에요. 그때 내가 거절하면 다른 수를 찾아서 결국은 같은 일을 벌일테니 그냥 넘어가는 척 한 것뿐이에요. 그래야 제대로 솎아낼 수 있을테니.”

 유라의 집에 침입했던 사내들은 전부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철창에 갇힌 사내는 그 상태로 바로 삭제되었다.      



 그 사건이 있고 몇주 뒤 유라는 무사히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바로 전날 밤, 유라가 서준을 찾아왔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요.”

 “한동안 해외에서 지내실 거란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담한 서준보다 오히려 유라의 표정이 좀 슬퍼보였다. 

 “이 집도 그대로 둘 거고, 관리인도, 의료지원도 예전처럼 그대로 있을 테니 지내시는데 불편은 없을 거예요.”

 “여러모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죠. 서준씨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니까요.”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돌아가려던 유라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휠체어에 앉아있는 서준에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서준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서준은 유라의 체온을 아주 잠시동안 느꼈다. 인간이 되어 그녀를 꼭 안고 싶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 포옹에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서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포옹을 풀자 유라도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고 있었다. 감정이 더 격해지기 전에 서준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회장님이 일러주셨던 그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건 대체 무슨 이야기예요?”

 “아...그거요? 후훗. 사실 별건 아니에요. 거의 100년 전 유행했던 노래인데 평소에 할아버지가 자주 흥얼거리시던 노래였죠. 너무 노땅 느낌난다고 그 노래 좋아하시는 건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셨는데 저한테만은 예외였죠. 할아버지 말로는 그 노랫말을 쓰신 분은 틀림없이 사랑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면서 감탄하곤 했어요. 그래서 그 노래 몇 번 들어봤는데 전 잘 모르겠더라고요.”

 서준은 언젠가 그 노래를 한번쯤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준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그날,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윤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 저 그동안 ‘더 헤븐 인터렉티브’ 서비스에 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어요. 어쩌면 ‘헤븐’은 그동안 종교가 제시해왔던 사후세계, 그리고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존재에 관한 관념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으면 자신의 존재가 소멸한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말이죠. 종교가 제시한 그 관념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인간이 찾아낸 좀 더 확실한 해법이 바로 ‘헤븐’이 된 거죠.”

 윤박사가 그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체계화된 종교가 나타나기 이전의 원시신앙 단계에서도 여전히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점, 그것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는 점을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요, 어쩌면 사후세계라는 관념은 종교가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실존하고 있던 무엇이고, 다들 어렴풋이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지 그곳으로 가는 길이 일방통행이라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여전히 불확실의 영역에 남아있는 것이고 말이죠.”

 “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윤박사는 사후세계와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존재에 관해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이제 곧 마지막 길을 가려는 서준을 위해 지금은 동의하기로 했다.

 “그런데요 박사님, 만약예요, 정말로 만약에, 마치 헤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뇌를 스캔해서 업로드 하는 과정인 것처럼, 죽음이후에 불멸의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는 유일한 길이 인간의 육신에 머물다 죽음을 맞는 거라면요, 만에 하나 그런거라면, 원래 인간으로 태어났던 사람들이 죽으면 그러하듯 어쩌면 저 역시 그들의 사후세계로 갈 수 있는 입장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에 하나 그렇다면, 저는 오늘 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셈이 되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서준의 의식이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윤박사는 서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박사님, 그러고 보니 저 아직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네요. 혹시 틀어주실 수 있으세요?”

 윤박사는 인터넷에 접속해 노래를 틀었다. 100년 전 노래의 비장한 멜로디가 침실을 떠돌았다. 마지막 의식을 잡고 있던 서준은 노랫말을 음미하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들어보니 알겠네요. 왜 좋아하셨는지.”

 서준은 공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내리쬐는 한줄기 흰 빛을 발견한 것이다. 담담하게 읊조리던 옛가수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진다. 빛은 점점 더 커지며 서준을 감쌌다. 황홀한 빛에 둘러싸여 서준은 감탄하고 말았다.   

 “아아...이것은...와우...!”     



<끝>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응모작 (인어공주 재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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