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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 먹기행 Nov 15. 2023

크기를 소멸시켜버리는 부드러움, '청화집'의 병천순대

고독한 먹기행 (71)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의 '청화집'

대전과 그리 멀지 않은 탓에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고 지냈던 천안의 명물, 병천순대. 어린 시절 장이 선 천안의 어느 곳에서 순대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이따금 떠오르곤 한다. (기억에 장터 곳곳에서 순대를 판매 중이었는데, 바로 아우내였을지도.) 때문인지 필자에겐 분식의 당면 순대와 병천 순대는 엄격한 선이 확실히 구분 지어져 있는데. 대전 일대의 순댓국집들도 그렇고, 당연히 병천식 순대가 첨가된 순댓국을 접해왔어서 당면 순대가 들어간 순댓국은 영 점수를 쳐주기 쉽지 않더라.


뭐랄까. 우연히 시킨 순댓국에 당면 순대가 들어가 있다면, 시작부터 초를 친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간 여전히 순대하면 병천순대와 피순대. 계곡 피서를 위해 들린 고향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길. 먹기행을 집필 중인 기운과 함께 병천(아우내) 순대를 직접 만나러 가봤다.

수많은 병천순대 집들이 즐비한, 심지어 도로명 주소까지 아우내순대길인 '천안병천순대거리' 인근의 '청화집'이 이번 먹기행의 주인공이다.



※ '청화집' 요약 정보 ※

- 영업시간 평일 09:00 ~ 18:00, 주말 08:00 ~ 18: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네이버 지도상의 정보와 다른데, 가게 앞에 붙은 정보를 기반으로 기술했다.

- 주차는 가게 앞으로 딱 4대. 사진과 같이 늘어선 줄의 인파, 더불어 사거리의 초입에 위치해 있어 가게 앞은 굉장히 번거롭겠다.

  * 필자의 경우 인근 한적한 공터 옆 갓길로 주차.

- 웨이팅이 존재한다. (주말 점심 기준, 30분의 웨이팅 후 입장한 필자다. 번호표 없이 줄 대로 순차적으로 입장.)

-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테이블식 구조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반 분리형으로 남녀 공용)

- 역사적으로는 제일 쳐주는 집인 것 같다. 가장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100년쯤 되어가는 듯하더라.

- 모듬순대 반 접시가 가능하다는 점이 이 집의 메리트가 아닐까? (양도 굉장히 많은 편.)

- 굉장히 두툼한 병천 순대. 속이 꽉꽉 들어가 반 접시만 먹어도 포만감이 상당했다.

- 더불어 순댓국 속의 순대도 상당히 많이 들어간 편.

- 순대의 구성물은 비계가 없다시피한 부드러운 머릿고기 수육, 순대 위주. (내장은 적은 편이다.)

- 다만, 순댓국 국물의 임팩트는 굉장히 약했다. 많이 맑은 느낌으로 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던 필자다.

- 즐기는 대전의 '천복순대국밥'과 대결을 붙이자면 순댓국은 아쉽게도 패배.



먹기행을 벗삼으니 이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소위 맛집, 유명집으로 불리우는 곳들은 주말 웨이팅이 필수라는 점 말이다. 웨이팅도 익숙해지는구나. SNS와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겠으나, 이럴 때면 참 일을 쉬던 때가 그립단 생각이다. 한적한 시간에 여유롭게 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찾은 이곳도 '백년가게'. 가업을 이어간 지 100년이 되어가니 진정한 백년가게로구나.



약 30분 뒤에 입장한 필자다. 점심 공세가 꽤나 무서운 집이더라. 전반적으로 '천안병천순대거리'가 그러했는데, 마찬가지로 유명한 '박순자아우내순대', 맞은편의 '충남집순대'까지. 병천순대를 먹기 위해 집집마다 늘어선 줄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뭐, 그런 집들 중 굳이 이 집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라면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단순히 상호가 마음에 들어서.



내부는 다른 '백년가게'와 같이 상호 관련 역사와 특징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것도 있나 싶었던 건 전통문화가정 인증서. 장인 정신을 증빙하는 서류인가 보다. 흥미로운 정보다.



이어서 메뉴판. '청화집'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로, 바로 저 순대 반 접시의 존재 때문. 좋더라. 먹기행을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인데, 반 정도 짜리의 메뉴의 존재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 참 좋아라 한다. '필동면옥'의 제육 반 접시처럼, (물론 그곳의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한 가지를 더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동아줄, 반.


바로 국밥 2인과 모듬순대 반 접시를 주문한 필자다.



먼저 등장한 건 '청화집'의 모듬순대 반 접시. 이거 순대 한 알 한 알이 범상치가 않다. 크기도 일반 이상, 속도 아주 꽉 찼구나. 실하다는 표현이 여기에 딱 어울리겠다. 모습은 역시나 병천순대답게 피의 비중이 큰 진한 순대. 바로 한 입을 물어본 필자인데, 음. 단번에 느낀 것은 식감. 굉장히 부드럽다. 입에서 녹듯 퍼지니 큼직한 게 들어갔는데, 마치 그 크기를 바로 소멸시켜버리는 듯한 부드러움.


    

선지로 진한 순대 소의 맛 또한 역시 서울에서 파는 병천순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역시 진하구나. 거기에 머릿고기 등의 내장이 함께 했는데, 이거 참 부속도 큼직하게 썰린 것이 인심이 그대로 느껴지더라. 이 가게에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넉넉함, 시장의 넉넉함인 것 같은데 순대만으로 충분히 전해졌다.



역시나 순대하면 병천이구나하는 감명과 함께 접한 순대국은 필자 개인의 취향에는 꽤나 아쉽더라.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또 모르겠으나 굉장히 깔끔하고 심플한 국물의 스타일. 간이 안되어 있어서이긴 하나 그래도 적지 않게 심심한 인상을 받은 필자다. 파다대기가 들어간 대전의 '천복순대국밥', 녀석을 1순위에서 무르기가 참 힘들구나.


모듬순대와 마찬가지로 구성물은 순대와 고기 부위 위주인지라 내장 가득한 순댓국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에겐 좋을 것 같은데, 뭐 역시나 모듬순대 반 접시만큼 후하단 느낌. 아주 실하게 들어가 있다. 다만 모듬순대로 그대로의 맛을 진하게 느낀 터라, 끓여진 국밥 속 순대의 맛은 역시나 임팩트가 약하더라.



그래도 병천에서의 순대국밥. 다대기와 들깨 등으로 간을 해 얼큰 스타일로 마무리한 필자다.



이 작은 동네에 과거 큰 장이 들어섰었고, 유관순 할머니가 만세 운동을 하셨었다지. 1930년 아우내장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오고 있는 집이니. 이거 참, 제대로 된 역사의 산증인 아닌가? 

구수함으로는 손에 꼽는 우리나라의 향토 음식이지만은, 뭔가 기다란 순대처럼 이어져온 역사는 참 국밥 국물처럼 뜨겁게 가슴을 적셔주더라.


순대에서 이런 감성을 느낄 줄이야.

본 고장에서 만난 병천순대, 100년의 역사 '청화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독한 먹기행 티스토리 블로그

http://lonelyeati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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