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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08. 2016

현지인처럼, 멜버른 주말 여행

The Perfect Weekend Melbourne

진하게 내린 플랫 화이트로 아침을 시작하고, 트램을 타고 다운타운을 둘러보거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다국적 요리를 맛보자. 하루쯤 차를 빌려 도시 외곽을 달리면, 바다에 떠 있는 기암괴석을 만나고 숲속에 숨은 와이너리에서 느긋한 멜버른의 주말을 보낼 수 있다.

멜버른 도심과 교외 일러스트 지도. ⓒ 김은빈


The Lane


바쁘게 걷는 멜버니언(Melbournian)의 걸음에 거대한 장애물이 제동을 건다. 바로 도심을 관통하는 트램이다. 직사각형으로 도시를 구획한 멜버른은 ‘바둑판 도시’라고 불리는데, 반듯하게 정렬한 거리를 트램이 헤집고 지나다닌다. 따라서 동서남북 방향을 잘 구분 못하는 길치라도 이곳에서 길을 잃기란 쉽지 않다. 어느 트램을 잡아타도 다운타운 안에서 맴돌 뿐이니까. 만약 작정하고 뒷골목 탐험에 나설 예정이라면, 차라리 트램에서 내려 길을 잃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구글 지도를 뚫어지게 찾지 말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거나, 눈을 유혹하는 길로 방향을 잡는 게 멜버른의 뒷골목을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이니.

멜버른 다운타운의 뒷골목. ⓒ 유미정

멜버른 시의회는 2001년부터 다운타운의 뒷골목을 예술가에게 위탁하는 레인웨이스 커미션스(Laneways Commissions) 프로젝트를 시작해 골목 부흥에 나섰다. 암호처럼 그림을 그려 넣은 숍 간판, 재활용 박스를 펼쳐 ‘오늘의 메뉴’를 폼나게 적어놓은 비스트로, 색색의 스프레이로 장식한 담벼락, 조형물로 변신한 쓰레기통 등. 공공시설을 거리의 예술가와 나누기 시작한 정부 프로젝트 덕분에 어두침침하던 뒷골목은 문화를 창조하는 거리로 변신했다. 샛길 모퉁이에서 기발한 예술 공간을 만나고 상상 이상의 볼거리는 예고 없이 나타난다. “종종 시 외곽에 사는 학생들이 다운타운 레인 투어를 체험 학습으로 신청해요.” 교복 차림의 무리가 횡단보도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가르키며 가이드가 말한다. 현지인이나 여행객에게 레인 투어는 멜버른 문화를 이해하는 첫 관문이다. 이곳에서 무얼 먹고, 마시고, 보든 그것은 분명 지금 멜버니언이 누리는 일상의 한 축임은 분명할 테니까.


ⓘ 시티 순환 트램(City Circle Tram) 시내 중심가를 순회하는 무료 트램으로, 4개 도로를 1바퀴 도는 데 약 30분 소요.metlinkmelbourne.com.au


The Coffee


아침 7시. 디그레이브스 스트리트(Degraves Street)의 노천 레스토랑 테라스는 텅 비었고, 지난 밤 거리의 잔재를 치우는 청소부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내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녀가 골목에 나타나더니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카페로 사라진다. 다운타운으로 출근하는 멜버니언은 보통 이른 아침을 카페에서 시작한다. 나무 스툴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인 노신사는 조간신문을 한 손에 쥔 채 플랫 화이트 1잔을 받아 든다. 자리를 놓친 손님들은 카페 앞에 서서 머핀을 한입 베어 물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인다. 최근 이 골목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카페 중 1곳인 듀크 커피 로스터스(Duke Coffee Roasters)는 오늘의 영업을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문밖까지 줄이 늘어섰다. 멜버른에서 최고의 커피를 찾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 달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도시는 커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매일 평균 30톤의 원두를 들여오고, 남다른 커피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것이다.

플랫 화이트 1잔으로 시작하는 멜버른의 하루. ⓒ VISTI VICTORIA

1950년대 이탤리언계 이민자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에스프레소 카페는 멜버른 문화로 이식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했다. 도심에는 2,0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카페가 자리한다. 이 틈에서 스타벅스 같은 외국 브랜드가 백기를 들고 빠져나갈 만큼 멜버니언은 자국의 커피 문화를 지지한다. “우리에게 커피는 아침 잠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하죠.”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린 커피를 1모금 들이켠 멜버니언의 얼굴에 세상을 다 가진 미소가 번진다. 아침의 행복을 만끽한 이들이 하나둘 자신의 일터로 흩어지고, 가게가 한산해지자 3명의 바리스타가 둘러앉아 자신이 마실 오늘의 커피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시작한다.


ⓘ 듀크 커피 로스터스 플랫 화이트 4호주달러, 월~토요일 7am~4pm, 일요일 8am부터, dukecoffee.com.au


The Restaurant

센터 플레이스 골목의 레스토랑. ⓒ 유미정

멜버른의 맛집 거리로 유명한 센터 플레이스(Centre Place) 골목. 음식 냄새와 커피 향에 취해 노천에 깔린 아무 의자에든 주저앉고 싶은 충동이 샘솟는다. 식당 앞 테이블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두툼한 샌드위치와 투명 잔에 담긴 화려한 색감의 칵테일이 유혹하는, 약 200미터의 거리는 멜버니언과 뒤섞여 술잔을 기울이며 현지 음식을 논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별다른 구분 없이 일렬로 쭉 늘어선 야외 테이블에선 모두가 어깨를 부딪히며 식사를 하고 술을 권한다.

이주민의 역사가 뿌리깊은 멜버른에는 전 세계 미식이 산재한다. 지금 누군가는 페루 음식에 빠져 있고, 한국 요리를 연구하는 셰프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니 이 도시의 최신 미식을 경험하려면 이 순간, 멜버니언이 바쁘게 향하는 레스토랑을 뒤쫓아야 마땅하다. 파스투소(Pastuso)는 최근 호기심 가득한 젊은 미식가가 모이는 페루 음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멜버니언은 음식에 겁이 없어요. 일단 맛보죠. 하지만 미식을 말할 때는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피스코 사워(Pisco Sour) 칵테일 5잔을 심각한 표정으로 만들던 남미 출신의 바텐더가 잠깐 고개를 들어 말을 건넨다. 요리를 내며 마치 어제 먹은 음식을 읊어대는 듯 차분한 종업원과 달리, 붉게 양념한 알파카 고기를 앞에 둔 이들은 하나같이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아시아 음식에 꽂힌 멜버니언이 관심을 보이는 레스토랑 중 1곳인 슈퍼노말(Supernormal)의 저녁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식, 중식, 일식이 섞인 메뉴를 보며 곤욕스러운 듯한 현지인의 표정이 꽤 진지하다. 한쪽에선 채소 쌈을 앞에 두고 난감해 하던 노부부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젓가락을 들고 덤플링을 거침없이 집는 젊은 멜버니언은 의기양양하게 눈짓을 보낸다. 이렇듯 멜버니언의 저녁 식사는 미식을 향한 호기심의 장이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음식이 멜버리언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 파스투소 메인 요리 20호주달러부터, 12pm~1am, pastuso.com.au
ⓘ 슈퍼노말 미트 앤드 피시 요리 35호주달러부터, 일~목요일 11am~11pm, 금·토요일 12am까지, supernormal.net.au


The Night Out

택시 키친에서 바라본 멜버른의 야경. ⓒ 유미정

멜버른은 마치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듯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미술관과 거리 문화로 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시 유닛(EIU)이 선정한 ‘전 세계 살기 좋은 도시’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로 꼽힌 멜버른. 이곳을 여행하고 나면 누구라도 오래 머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수많은 이민자가 서쪽에서 발견된 금광을 쫓아 멜버른에 몰려들었지만, 지금 전 세계 젊은이는 자유로운 문화에 반해 거주지를 옮긴다. “놀라운 도시예요. 오가닉 푸드, 멋진 바, 무엇보다 최고의 와인이 있죠.” 다이닝 펍 택시 키친(Taxi Kitchen)에서 일하는 플로리아(Floria)가 텅 빈 와인잔을 채우며 말한다. 프랑스 출신의 그가 추천하는 와인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2년 전 이곳으로 건너와 멜버른 도심에서 가장 전망 좋은 레스토랑을 직장으로 삼은 것에 자랑을 늘어놓는다.

모던하게 꾸민 택시 키친의 실내. ⓒ 유미정

멜버른은 마치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듯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미술관과 거리 문화로 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시 유닛(EIU)이 선정한 ‘전 세계 살기 좋은 도시’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로 꼽힌 멜버른. 이곳을 여행하고 나면 누구라도 오래 머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수많은 이민자가 서쪽에서 발견된 금광을 쫓아 멜버른에 몰려들었지만, 지금 전 세계 젊은이는 자유로운 문화에 반해 거주지를 옮긴다. “놀라운 도시예요. 오가닉 푸드, 멋진 바, 무엇보다 최고의 와인이 있죠.” 다이닝 펍 택시 키친(Taxi Kitchen)에서 일하는 플로리아(Floria)가 텅 빈 와인잔을 채우며 말한다. 프랑스 출신의 그가 추천하는 와인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2년 전 이곳으로 건너와 멜버른 도심에서 가장 전망 좋은 레스토랑을 직장으로 삼은 것에 자랑을 늘어놓는다.


ⓘ 택시 키친 메인 요리 30호주달러부터, 12pm~늦게까지, taxikitchen.com.au



The Local's Tip

"버크 스트리트(Bourke Street) 위쪽에 자리한 더 페이퍼 북숍(The Paper Bookshop)은 1960년대 문을 연 독립 서점입니다. 호주 작가의 작품과 수입 서적을 모아둔 주인장의 셀렉션이 아주 좋아요. 서점 바로 옆에는 60년 넘은 이탤리언 커피숍 펠레그리니스 에스프레소 바(Pellegrini's Espresso Bar)가 있죠. 테이블 바에 일렬로 앉아 떠들썩하게 파스타를 먹고 카푸치노를 들이켜는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에요. 그리고 블록 아케이드(Block Arcade)와 로열 아케이드(Royal Arcade)처럼 이색적인 장소도 추천해요. 19세기 건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역사적 쇼핑몰로, 보드 게임 숍, 초콜릿 가게 등 전통 있는 숍이 여전히 자리하죠.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은 식료품 시장으로 유명하지만 종종 젊은이들이 모여 벼룩시장을 열고, 독특한 콘셉트의 작은 서점도 들어서 있습니다. 멜버른에서는 골목을 누비며 자신만의 술집, 레스토랑, 희귀한 물건을 찾으러 다녀야 진정한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 더 페이퍼 북숍 9am~10pm, 60 Bourke St.
ⓘ 펠레그리니스 에스프레소 바 8am~11:30pm, 66 Bourke St.
ⓘ 퀸 빅토리아 마켓 6am~요일마다 다름, 일요일 9am부터, 월요일 휴무, qvm.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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