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성곽을 두르고 나직나직한 한옥이 즐비한 골목. 과거 누군가 원대한 꿈을 꾸던 자리에 현대의 독특한 감성을 덧입힌 화서문로가 다시금 여행자의 발걸음을 당긴다.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와 실학자의 원대한 꿈을 담은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화성. 아름다운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중심에 화성행궁이 자리한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찾을 때 머물던 임시 거처지만 그에겐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고.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의 행궁 정문 신풍루(新豊樓)부터 ‘장래 늙어서 한가롭게 쉴 정자’란 뜻의 후원 정자 미로한정(未老閒亭)까지. 행궁 곳곳에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려던 정조의 마음이 묻어난다.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김홍도가 그린 8폭 병풍 앞에서 독서하는 정조 등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흥미를 돋우며, 봄에는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열려 볼거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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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료 1,500원, 동절기 개방 시간 9am~5pm, swcf.or.kr
화성행궁 앞 너른 광장으로 나가면 가로로 길게 뻗은 현대식 건물이 시선을 끈다. 안팎으로 송판 무늬를 새긴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삼면에 통유리를 둘러 주변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이곳은 수원 최초의 시립 미술관. 현대와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은 바로 맞닿은 행궁과도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린다. 총 5개의 전시관은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등 장르를 넘나들어 대중적이거나 실험적인 작품을 두루 전시한다. 예술과 디자인 전문 서적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외에 정기 도슨트 투어, 작품 체험 등 알찬 프로그램도 갖춰 현대미술과 대중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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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료 4,000원, 동절기 관람 시간 10am~6pm, 월요일 휴무, sima.suwon.go.kr
눈에 띄는 하얀 벽돌집, 은은한 조명이 켜진 2층으로 향하면 여심을 사로잡는 골목책방 브로콜리 숲이 나온다. 디자이너 출신의 주인장은 책을 고르는 공간이 예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정집을 개조해 아기자기하게 꾸몄다고. 뾰족한 박공지붕 아래 목재가 어우러진 따뜻한 분위기는 마치 다락방에서 책을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독립 출판물을 비롯해 아트 북, 일반 도서 등을 다루며 인문학, 문학, 여행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고루 비치했다. 한편에는 패브릭, 종이 모빌, 책꽂이 등 독특한 디자인 제품도 판매한다. 북 토크, 독서 모임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주최하며, 2월 말에는 가수 소보의 콘서트를 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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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6,000원부터, 12:30pm~7:30pm, 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broccoli_soop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감성이 담긴 시나 에세이집을 읽어보세요. 박상범의 시집 <너이기도 했다가 너일때도 있었다>, 최유수의 에세이집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읽으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질 거예요.” by 골목책방 브로콜리 숲의 박정민 대표
손때 묻은 카메라가 놓인 낡은 수납장 위로 해맑게 웃는 아이부터 다정하게 눈 맞추는 부부까지 온통 행복이 묻어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훗날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평범한 지금을 찍습니다”라고 말하는 유병환 사진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흑백사진에 담는다. 흑백사진은 자연스러우면서 인물의 감정을 심도 있게 표현해준다고. 사진 프레임에 여백을 두어 분위기를 더하고, 사진 1장에 한해서 원하는 문구를 새겨 넣어 세련된 감성까지 입힌다. 이곳은 단독으로 편안하게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예약제로 운영하는데,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대기자가 많으니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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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장 5,000원(예약 필수), 11am~8pm, 화요일 휴무, tospring.modoo.at
깜찍한 피자 모양 네온사인을 단 존앤진 피자펍은 농구공, 뉴욕 닉스 티셔츠 등 뉴욕이 떠오르는 힙한 소품으로 가득하다. 주문과 동시에 만드는 피자 또한 뉴욕식 그대로. 큼지막한 도에 치즈와 토핑을 넘치도록 올린다. 피자는 치즈, 하와이안, 페퍼로니, 존앤진 총 4종류. 단출한 메뉴지만 피자 본연의 맛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두 번 숙성한 도부터 소스, 토핑까지 모두 직접 만들며, 베이컨과 햄을 담뿍 올린 시그너처 메뉴 ‘존앤진 피자’가 단연 인기다. 모든 피자를 맛보고 싶은 이는 4종의 피자를 한 번에 내는 스폐셜 피자가 좋겠다. 여기에 청량한 브루클린 라거까지 곁들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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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앤진 피자(M) 2만7,000원, 11:30am~10pm,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johnnjeanpizza
존앤진 피자펍의 전현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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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다니던 회사에 흥미를 잃고 다른 일을 찾던 차에 지인을 통해 한 미국인을 소개받았습니다. 10년간 미국에서 피자를 만들던 분인데, 그분을 사부로 모시고 뉴욕식 피자를 만드는 레시피를 전수받았죠. 항상 고향인 수원에 서울처럼 멋진 공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행궁동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옛 수원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이에요. 사방이 수원화성으로 둘러싸인 흥미로운 관광지이면서도, 고도 제한이 있어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도 덜었죠. 평소에 누군가 수원을 여행한다면 항상 이 동네를 추천합니다. 화성행궁,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행궁동 공방거리 등 볼거리가 풍부하고 최근 아기자기한 카페와 맛집이 많이 생겨났어요. 행궁동 화서문로로 놀러 오세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수원 맛집으로 유명한 운멜로가 화서문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솜씨 좋은 주인장이 손수 가정집의 2층을 개조해 세련된 분위기의 레스토랑으로 변모시킨 것. 골목 주변의 고즈넉한 정취를 감상하며 식사하는 테라스와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는 아늑한 다락방도 갖췄다. 요리 또한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대표 메뉴는 ‘풍기 크레마’ 리소토. 트뤼플 오일을 뿌린 꾸덕한 크림과 부드러운 버섯의 풍미가 조화롭다. 해산물을 듬뿍 넣은 얼큰한 뚝배기 파스타 ‘빼쉐’도 추천한다. 일명 우주 술이라 불리는 와인 칵테일 ‘오로라 샤워’를 비롯해 와인 리스트도 다채롭다. 2월 중순에 다양한 와인과 페어링한 요리를 맛보는 파티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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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기 크레마 1만5,000원, 12pm~10pm, 인스타그램 @restaurant_unmelo
한껏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면 우리의20세기로 향하자. 이곳은 철제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을 읽으며 커피, 와인,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카페다. 레코드판을 통해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아날로그 감성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고, 낡은 벽을 드러낸 빈티지한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사한다. 시그너처 메뉴는 오리지널, 바닐라 빈, 아몬드 등의 세 가지 맛으로 내는 아인슈페너다. 몽글몽글한 크림과 수제 시럽의 은은한 향미가 기분 전환에 제격. 여기에 두툼한 식빵 위에 얇게 썬 사과를 올려 구운 뒤,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우리의 사과빵’도 꼭 함께 맛보자. 가볍게 마시기 좋은 와인을 글라스로 내고, 해외 맥주도 두루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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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페너 5,500원, 12pm~10pm,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our_20thcentury
글. 문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