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이 초록빛을 빼꼼 내비치고 새가 지저귀는 초봄의 어느 날.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인 의성과 군위의 들녘을 느긋하게 여행했다.
계절이 바뀌는 문턱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에 다녀왔다. 3월, 모노톤에 가깝던 숲이 순식간에 화려하게 채색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시계가 아닌 초목의 색으로 알 수 있는 시기. 영화에서 보던 공간은 현실과 비슷하고도 다르다.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그 자리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때 온몸을 채우는 신선함이리라.
<리틀 포레스트>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김태리가 주인공 혜원으로 출연한 한국 영화다. 원작자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五十嵐大介)는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며 보낸 시간을 바탕으로 만화 <리틀 포레스트> 2권을 펴냈다. 이를 바탕으로 모리 준이치(森淳一) 감독 연출, 하시모토 아이(橋本愛)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2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최근 <윤식당>과 <효리네 민박>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며 직접 음식을 해 먹는 이야기에 관심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혜원(김태리 분)은 임용고시에 불합격해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꽁꽁 언 땅에서 배추를 캐내어 얼큰한 배춧국을 끓여 먹는 첫 장면으로 시작해 그녀는 농촌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평생 그 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은숙(진기주 분)과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 재하(류준열 분)와 재회해 혜원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작물을 키운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추억, 어머니가 해준 요리를 떠올린다.
<리틀 포레스트>의 풍경 속으로 떠나며 목적지로 삼은 곳은 경북 의성과 군위 일대다. 극중 혜원의 집은 군위에 있고, 의성에서도 촬영을 진행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요리라는 ‘집 안 스펙터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집 안에서의 즐거움에 시간을 입히는 작업이 바로 집 밖 사계의 흐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의성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의성으로 가고 있군.’ <리틀 포레스트>는 겨울에 시작해 사계를 아우른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피기 직전의 의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쯤 지나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전날 밤에는 예고에 없던 비가 한 차례 서울과 의성을 적신다. 봄은 봄이라 춥다기보다 선선한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슈퍼스타가 된 컬링 국가대표팀이 ‘마늘의 고장’ 의성 출신이라, 기행 전날에 은메달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선명하다. 혹시 버스터미널에도 컬링 은메달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뜻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후 차를 타고 다니며 ‘장하다! 의성의 딸 – 의성읍 체육회’ 같은 플래카드 몇 개를 보기는 했지만, 미디어에서 뉴스를 쏟아내는 데 비하면 조용하다. 오히려 이제 막 푸른 싹이 움튼 마늘밭 쪽이 더 존재감이 있다고나 할까.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움직이기로 한다. 숙소는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있는 산운마을. 산운마을이라는 동네 이름은 신라 시대부터 쓰였다는데, 마을 뒤편의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에 구름이 감돈다는 뜻으로 ‘산운(山雲)’이라 이름 붙였다고. 숙소까지 가는 차 안에서 본 동네의 단층 건물에 한자로 된 간판이 2개 붙어 있다. 그 박력 있는 한자를 한 글자씩 읽어본다. 산운노인회관. 사실 길을 헤매는 중이었기 때문에 건물 앞 어르신에게 길을 물었다. 혹시 숙소 주인이 마중이라도 나왔나 하고. 현실은 그냥 동네 어르신이었다. “저기, 저기 저쪽으로 조금만 더 가!” 택시 기사는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투덜거리며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구름이 비가 되어 지나간 동네는 청량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데, 동네 구경은 뒤로하고 일단은 가깝다는 시내 구경에 나선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탑리마을. 문자 그대로 탑이 있는 동네다. 택시 기사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 동네 그대로예요. 영화인가 드라마 촬영을 한 적도 있다는데, 그때 간판을 옛날식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만큼 낙후됐다는 얘기죠.”
이것은 한국에서 관광을 다니면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유럽의 몇백 년 된 뒷골목 분위기가 왜 한국에서는 다르게 느껴질까? 고작 몇십 년 된 곳조차도. 국가 차원에서 문화와 생활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로 ‘관리’하는 경우와 그저 개발이 늦어져서 옛날 모습 그대로 사위어가는 경우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옛 모습 그대로의 풍경이 멋있다는 말에 돌아오는 현지인의 답이 이렇다. “쳇, 멋있다고요?”
지역 주민의 현실적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와 1990년대 어딘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탑리 중심가를 두어 시간 걸으며 멋있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탑리마을은 영화에 나오는 곳은 아니지만 영화 세트처럼 느껴진다. 이상한 말이다. ‘영화 세트 같은’이라는 말은. 예를 들어 서울세탁소 간판이 그렇다. 상호에 ‘서울’이 들어가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서울에서는 정말로 ‘예스러운’ 효과를 내기 위해 간판을 저렇게 쓰지 않던가. 심지어 세탁소 앞에 있는 빨간 자전거도 마치 일부러 가져다 둔 듯 보인다. 해가 지기까지는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지만, 신기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영화 세트 같다는 생각을 더했는지도 모른다. 인적 드문 읍내가 아예 텅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주택 앞을 지날 때 마당에서 개가 짖어서다. 서울세탁소를 오른쪽에 끼고 3분쯤 걸으면 탑리라는 마을 이름의 주인공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운 오층석탑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목조건물처럼 우뚝 서 있다. ‘목조건물처럼’이라는 말이 석탑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탑은 실제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 양식과 목조건축 양식을 모두 품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이라면 교체한 부재를 탑 근처에 입면도와 함께 전시한다는 것이다. 밑동만 남은 유적지 혹은 폐허처럼. 날은 흐리고, 탑 옆에 선 나무들은 오랜 바람 때문인지 크게 휜 채 나이를 먹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경북 의성과 군위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자주 만나게 되는 돌덩이들을 볼 수 있다. 탑은 낮은 흙무덤 위에 서 있는데 그 흙무덤의 사면으로 돌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탑을 따라 크게 1바퀴 돌아본다. 뒤쪽으로는 탑리여자중학교가, 옆쪽의 주택 너머로는 교회의 뾰족한 양철 탑 위 십자가가 보인다. 탑과 탑의 공존이다.
탑 구경을 마치고 조금 더 읍내를 살펴본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 동네로 나오면 이런 풍경을 마주했으리라 상상한다. 영화에서 나온 장면은 아니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러닝타임은 103분이다. 거기서 모든 걸 보여줄 수는 없지. 탑리를 구경하기 위해 슬슬 걷는다. 오래전에는 익숙했지만 이제 낯설게 느껴지는 문구의 간판이 보인다. ‘시뮬레이션게임센타’(오락실이라는 뜻일까, PC방이라는 뜻일까?) ‘멋의 전당 대성라사’(옷가게에 많이 쓰던 ‘라사’라는 말을 기억하시는지?) ‘서울양행’(서양식 상점이라는 뜻인데, 옷을 비롯한 잡화를 취급한다) 같은 단어들 그리고 텅 빈 탑리버스정류장이 보인다. 1번 홈에서는 대구 가는 버스를, 2번 홈에서는 의성과 안동 방향 버스를 타는 정류장 안에 들어서자 2018년 1월 15일부터 이용 승객 감소로 마지막 버스가 운행 중단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매표소 위에는 버스 요금표 칠판이 있는데 ‘1994. 3. 26. 시행’이라고 적힌 게 눈에 띈다. 텅 빈 정류장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언젠가 여기도 허물어지겠지. 처음 생겼을 때에는 북적였겠지. 요금표에 적힌 지명은 한국인인 나에게도 완전히 낯설다. 고와, 지소, 사미, 귀미, 업동, 느릉이, 망하, 솟고개, 지골, 내룡, 송생이, 고평, 하이, 내룡, 신계…. 탑리처럼, 전부 그 동네의 무엇인가에서 유래한 지명일 것이다. 탑리역도 놓치기 아까운 곳이다. 돌탑 모양의 역사가 있는 탑리역에는 무궁화호가 선다. 청량리, 정동진, 부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가 있는데 기차역에 대해서라면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화본역 쪽에 지면을 양보하는 편이 좋겠다.
슬슬 해가 진다. 이제야 저녁 끼니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아니, 정확히는 허기진 배속이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다. 논산손칼국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놀랍게도, 길거리에는 사람이 그렇게나 없더니 논산손칼국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한 놀랍게도, 오후 6시가 안 된 시각인데 면이 떨어져 칼국수를 먹을 수 없다. 여행자여, 칼국수를 먹고자 한다면 서두르라. 차선책은 비빔밥인데, 차선책치고는 너무 깔끔하고 맛있다. 일단 신선한 나물을 아끼지 않고 쓴 점, 비빔장 간이 너무 세지 않아 나물의 향과 맛을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발군이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 동안 동네 주민들이 가게에 들어왔다가 국수가 없다는 말에 연이어 발길을 돌린다. 아니, 여기 비빔밥도 맛있습니다. 정말로요…. 하지만 나는 서울 촌사람이다. 맛있는 나물이 있는 비빔밥은 의성 사람에게 유혹적이지 않은 외식 메뉴임에 틀림없다.
숙소인 소우당으로 돌아오자 사방이 캄캄하다. 사위가 어둡고 조용하다. 소우당을 구경하려는 생각은 이튿날로 미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별을 볼까 기대했는데, 비는 그쳤지만 산운마을이라 그런지 구름은 여전해 별 볼 일은 없었다. 텔레비전 한 번 틀지 않고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 소우당과 산운마을 구경에 나선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청명한 공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가운데 소우당에 사는 개 3마리가 지치지도 않고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금성산이 뒤에, 비봉산이 옆에 있으니 산운마을 경관은 안에서 봐도 밖에서 봐도 산수화 같은 수려함을 뽐낸다. 영천 이씨 집성촌인 이곳의 소우당, 운곡당, 점우당은 잘 알려진 문화재. 그중 소우당에서는 한옥 스테이를 할 수 있다. 동네 구경한 이야기만 해도 얘기가 길지만 소우당에 집중하자. 19세기 초에 지은 소우당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37호인 문화 유적.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도 우아함을 자랑하지만 소우당 최고의 자랑은 가옥 서쪽으로 담장을 따로 둘러 조성한 원림(園林)과 그 중앙부에 있는 안사랑채(별당), 그 남향에 만들어놓은 연못과 각종 수목을 심은 정원이다. 안채와 사랑채에서 정원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각각 별도의 문을 냈다. 여기에서도 돌덩이를 볼 수 있다. 원림 곳곳에는 땅에 박힌 입석이 있는데, 금성산의 음기를 누르기 위해 일부러 세운 남근석이라고 한다.
경주 안압지처럼 어느 지점에서 바라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구조로 연못을 조성했다. 더욱 흥미로운 모습은 명나라 황제 묘역에서 어린 측백나무 2그루를 가져와 심은 게 이제 200년도 넘어 크게 자라 있는 것. 고택에서 이런 조경을 보는 일은 드물다. 봄이나 가을의 정원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이 쌀쌀한 초봄에도 잘 알겠다. 별당 전체를 빌리는 일도 가능하다니, 지금 정원 안에 있으면서도 더 아름다울 계절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다혜는 <씨네21>의 기자이자 작가로 여행 에세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를 펴냈다. ‘제1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에서 최종 우승한 사진가 박소현이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첫 여정으로 의성에 동행했고, 후지필름의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 GFX 50S로 촬영했다.
글. 이다혜 사진.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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