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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pr 05. 2019

집으로 돌아온 사진가

매그넘 포토스 소속 포토그래퍼, 마크 파워와의 인터뷰. 



포토그래퍼 마크 파워가 한국을 찾았다. 매그넘 포토스 소속 포토그래퍼 16인이 ‘집’을 주제로 작업한 프로젝트 <HOME>을 소개하기 위해. 
여행과 사진, 가족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매그넘 포토스 소속 포토그래퍼 마크 파워(Mark Power). ⓒfujifilm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20대 때 <론리플래닛>의 애독자였습니다. 제가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게 1981년이었는데, 사실 그땐 누구나 토니 휠러(Tony Wheeler)가 쓴 동남아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다녔죠. 마치 노란색 성경 같았어요. 많이 꼬질꼬질해졌지만 아직도 그 책이 저희 집에 있습니다.


어떤 여행자셨나요? 가이드북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었나요?

그 책은 당시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기 위해 영국인이 참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었어요. 그것만 보고 다니다간 식당에서나 숙소에서나 같은 여행자를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뜻이죠. 결국 어느 정도는 책에 쓰여 있지 않은 곳을 발굴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학 졸업 후 2년간 세계 여행을 하셨죠.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여행이었을까요?

글쎄요. 젊은 시절의 저는 워낙 계획이랄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편도 티켓을 사서 영국을 떠났죠. 어머니가 무척 화를 냈지만요. 저는 회화를 전공했고 당시만 해도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스케치북과 50파운드짜리 단렌즈 후지필름 카메라를 챙겨 갔어요.


어떤 곳을 여행했나요?

처음 당도한 곳은 홍콩이었습니다. 물고기 양식장에서 일하면서 2달을 살았어요. 방콕으로 건너간 후엔 쿵푸 영화의 간판을 그리며 3달을 살았고요. 딱히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제가 머무르는 나라에서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TV 프로그램의 단역이나 영어 강사를 하기도 했죠. 시드니에서는 신문 구인난을 통해 제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얻었는데, 알고 보니 사기성 사업에 연루된 거였어요. 2주 만에 그만뒀죠. 그다음으로 일하게 된 곳이 카메라 가게입니다. 현상과 인화까지 도맡아 하는 곳이었고, 거기서 카메라와 필름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어요. 



© MARK POWER/MAGNUM PHOTOS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은 마음에 들었나요?

다 쓴 필름은 틈틈이 우편으로 영국의 집에 보냈어요. 돌아와보니 총 214롤의 흑백필름이 쌓여 있었죠. 순차적으로 현상했는데, 보고 있자니 2년 동안 너무 더디게 성장했더군요. 한 롤 한 롤의 실수를 통해 배우질 못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필름을 현상한다(develop)는 말과 성장한다(develop)는 말이 같은데…. 아무튼 그때의 감흥이 제게 큰 교훈을 준 것 같아요. 뭔가를 할 때에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열심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늘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도요.


그래도 214롤이면 몇 장은 건지셨겠죠.

사실 엄선한 사진들로 전시회도 몇 번 열었어요. 규모는 작았지만 운 좋게도 사진가로 기반을 다질 기회가 있었던 셈이죠. 제가 존경하는 이들에게서 제 사진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내가 하는 작업이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 그게 성장에 중요하니까요. 물론 지금은 저도 그때 찍은 사진에 흥미가 없어요. 예술적으로 찍으려는 시도가 어설프게 깃든, 이국적인 광경을 담은 그저 그런 사진이죠. 



© MARK POWER/MAGNUM PHOTOS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사진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결국 젊은 시절 2년간의 여행 덕분이었어요. 그때쯤 제 방랑벽이 시작되었는데, 사진이 좋았던 이유도 여행을 위한적당한 핑계가 되어주기 때문이었죠. 물론 그건 젊을 때 생각이 에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지금 생각하기엔 사진과 여행이 꼭 상응하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요?

교수로 일할 때 신입생 면접에서 늘 이렇게 묻곤 했죠. “만약 무엇이든 찍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이국적인 도시나 오지에 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학생들에겐 관심이 안 갔어요. 사진을 찍는 것과 이색적인 광경을 쫓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일 확률이 크거든요. 하지만 만약 누군가 ‘옆집의 정원을 마음껏 찍고 싶다’ 이런 유의 대답을 하면 흥미가 생겼죠.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 안에서 작업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누군가 이국적인 곳에 가야만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제가 생각하는 사진과는 조금 달라요.


많은 나라에서 작업하셨지만 확실히 이국적 풍경은 잘 담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제 스스로가 원해서 했던 작업은 모두 영국 내에서 이뤄졌어요. 나머지는 의뢰받은 작업이었죠. 그러던 중 매그넘 회원이 되고 폴란드에서 작업할 기회가 생겼어요. 저는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뭘 찍어야 할지도 몰랐고,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확신도 없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깨달았죠. 어느 지역에 오래 머문다고 해서 그 지역을 샅샅이 알 수는 없지만, 대신 스스로가 외부인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작업을 남길 수도 있다는 걸요. 다루고자 하는 곳에 스스로가 속해 있으면 주제가 아주 세밀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전체적인 인상을 다루기는 어렵죠. 특정 시기의 그 장소가 어떤 모습인지는 외부인이 더 잘 다룰 수도 있는 거예요.


포트폴리오를 보면 인물 사진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일단은 대형 카메라의 영향이 크겠죠. 셔터 스피드가 느리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대부분의 인물 사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 사진에서 인물이 나온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여주고 싶거나, 스케일을 드러내고 싶거나. 



© MARK POWER/MAGNUM PHOTOS



<HOME>은 딸인 칠리 파워가 런던의 예술대학으로 진학하며 독립하는 과정을 담은 작업입니다. 당신에게 아주 도전적인 프로젝트였을 듯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주제의, 인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의뢰 때문에라도 가족에 대한 진지한 작업을 한다면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뭘 찍어야 할지는 감이 오질 않았어요. 내가 찍은 내 가족의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도 흥미 있는 작품이 될지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사진에 설명을 다는 건 싫었어요. 그냥 상황만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싶었죠. 사진집 초입에 시인 시나 퓨(Sheenagh Pugh)의 시 ‘What if This Road’를 넣었는데, 제가 조금 더 용감했다면 작업 배경 설명도 없이 그 시만 덩그러니 넣었을 거예요. 집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묘사한 시거든요.


이전부터 시인과 함께 작업하거나 시를 즐겨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와 사진에 비슷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설명(tell)하기보다 암시(suggest)하잖아요. 제가 지향하는 사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고도화된 시대를 살지만 동시에 점점 더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사진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달하죠. 소망하기를, 저는 제 사진집이 여러 번 보게 되는 것이라면 좋겠어요. 좋은 글은 여러 번 읽어도 매번 다르게 읽히듯, 사진도 그러니까요. 



© MARK POWER/MAGNUM PHOTOS



<HOME>은 2017년에 촬영한 사진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전시하며 여러 번 감상했을 텐데, 이젠 당신 자신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나요? 

그럼요. 당시에는 딸의 독립이 정말 큰 걱정거리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좀 과했던 것 같거든요. 좀 괴상할(ridiculous) 정도로 감정적이었죠. 하하. 그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포착된 순간 외의 다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그게 사진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관계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칠리는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서 작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억지로 끌고 간 런던 전시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확인했죠. 딸은…. 충격을 받더군요. 금세 회복해서 사진 앞에서 셀피도 찍긴 했지만요. 사실 이번 한국 전시 때문에 매그넘의 인스타그램이 <HOME> 작업 중 칠리가 나온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좋아요 수가 꽤 많았어요. 딸은 그 게시물을 캡처해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더군요. 좋아요 수에 동그라미를 치고, 사진 아래에 ‘ME’라고 써서 말이죠.


공개된 <HOME> 사진들 외에 작가가 아끼는 사진이 따로 있진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개인사를 주제로 작업하다 보면 작가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사진도 생기니까요.

아뇨. 없습니다. 저는 이 작업에서 개별 사진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들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했죠. 사진과 사진이 연결되어 서로에게 주는 영향을 고민했고, 전체적인 효과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 MARK POWER/MAGNUM PHOTOS



후지필름의 GFX-50S로 촬영했습니다. 사용하던 카메라가 아니라서 불편하진 않았나요?

실제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진가 중 몇몇은 촬영 결과물을 보곤 무척 낯설어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그전에도 종종 카메라에 중형 포맷 센서를 달아 사용하곤 했으니까요. 후지필름의 카메라는 옛 필름 카메라와 배치가 유사해서 저처럼 나이 많은 사진가가 쓰기에도 편하죠. 사실 힘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프로젝트가 끝난 후 GFX-50S를 구매했을 정도로요. 기존에 사용하던 대형 포맷 카메라의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 같았는데, 최근 도쿄에서 두 카메라를 병행 사용해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키우는 개의 이름은 코닥이라고 들었는데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이름이죠. ‘후지’도 좋았겠지만, 공원에서 크게 외쳐야 한다고 상상하니 코닥이 낫겠더군요. 좀 다른 얘기인데, 사실 그것 때문에 생긴 오해도 있었습니다. 후지필름의 영상 촬영 팀이 저희 집에 오기로 했는데, “나는 코닥과 함께 있을 거야(I’m going to be with Kodak)”라고 답했더니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코닥 팀은 언제 돌아갈 예정이냐”고요.


혹시나 한국에서 촬영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셨나요?

한국에서 산다는 게 어떨지 호기심이 있습니다. 북한과 접해 있는 분단국가인데다 중국과 대기오염 문제로 갈등을 빚고, 이래저래 정치적 이슈가 많죠. 저처럼 나이가 들면 ‘시간’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저는 피사체와 일종의 관계가 구축되어야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데, 새로운 나라를 알아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일단 당장은 6년째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작업 <Good Morning America>에 몰두하려 합니다. 적어도 10년짜리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Portfolio

<HOME>은 마크 파워 작가의 사진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프로젝트. 

번외로, 이전 작업에서 그가 꼽은 대표작 3장을 소개한다.

FROM ‘THE SHIPPING FORECAST’ SERIES 1993-96. © MARK POWER/MAGNUM PHOTOS
Death of Pope John Paul II.  Warsaw, Poland, 2005. © MARK POWER/MAGNUM PHOTOS
Fire in a former Elementary school, 14th January, 2018. © MARK POWER/MAGNUM PHOTOS


마크 파워는 영국의 사진가다. 25년 동안 브라이튼 대학교에서 사진 이론을 가르쳤으며, 2007년 매그넘포토스에 합류했다. 매그넘 포토스와 후지필름의 협업 프로젝트 <HOME>에서는 장녀인 칠리 파워가 런던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며 독립하는 과정을 담았다. ⓘ markpower.co.uk

*<HOME>은 5월 8일까지 서울 후지필름 X 갤러리에서 사진집 형태로,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home_fujifilm, home-magnum.com


글. 오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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