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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26. 2019

여행자의 카메라

4명의 포토그래퍼, 그들이 여행을 떠날 때 꼭 챙기는 카메라. 

여행 사진으로 모종의 결과를 성취한 4명의 포토그래퍼를 만났다. 이곳과 저곳에서 남긴 사진을 훑으며, 여행을 떠날 때 어떤 카메라를 챙기는지 물었다.



남들이 보기엔 아주 작은 차이지만, 이 차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거죠.

사진가 이규철

Leica M Monochrome

라이카 M 모노크롬과 이규철 작가의 작업 일부. ⓒ박기훈


몽골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처음 간 건 2011년이에요. 스튜디오를 시작한 지 10년 됐을 때 여행차 갔죠. 1달 다녀오겠다고 해놓고 좀 더 눌러앉았고, 몇 년 뒤에 한번 더 갔어요. <설리구진>으로 발표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갔고요. 사실 올해 2월에도 다녀왔어요. 8월에는 몽골인 친구 중 하나가 결혼을 해서 또 가야 하고…. 요즘은 두 달에 한번씩 몽골에 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여럿이 가면 가이드와 렌트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페이스북에 몽골 여행 모집 글을 올려보기도 했죠.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봐요.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고 다들 물어보는데 참 할 말이 없어요. 그냥 “말 타는 게 좋아서 가요”라고 답하곤 하죠. 사실 사람 없는 곳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은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거든요. 모든 속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모든 작은 것이 소중해지죠. 서울 근교 바닷가에서도 떨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거든요.


사용한 카메라에도 변천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1년에는 캐논 DSLR을 들고 갔어요. 2013년쯤에는 라이카 M 시리즈 구입을 고민하게 됐죠. 워낙 고가다 보니 선뜻 구매하기 어려워 사용감이 얼추 비슷할 것 같은 후지필름 X-Pro1을 사서 1년 정도 써봤어요. 그게 나쁘지 않아서 라이카 MP를 샀고요. 1년 후에 M 모노크롬을 들였고, 또 1년 후에 보조 카메라 개념으로 라이카 Q를 구매했죠. 작년에는 DSLR인 라이카 S를 샀어요. 자꾸 이렇게 장비만 늘어서…. 아무튼 몽골에서의 경험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기준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측면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가장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건 어떤 카메라인가요?

개인 작업에서는 라이카 M 모노크롬이 메인입니다. 흑백 촬영만 지원하는 특이한 기종이죠. 제가 알기로는 세계 유일이고요.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변형한 것과는 결과물이 다른 게, 컬러 필터 어레이층이 없어서 좀 더 심도 깊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죠. 특히 화이트에서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는 계조, 블랙에서 섀도로 넘어가는 계조 표현이 뛰어나요. 물론 아주 작은 차이긴 한데, 이 차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거죠.


레인지 파인더인 야시카 일렉트로 35 모델로 사진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라이카 M 시리즈를 택한 이유에는 레인지 파인더를 향한 애정도 있을까요?

물론이죠. 일을 하며 DSLR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처음 사진을 찍을 때 느꼈던 그 감흥을 얻고 싶더라고요. 레인지 파인더에는 그것만의 장점이 있어요. DSLR은 이름 그대로 ‘일안반사식’이기 때문에 정작 촬영 순간은 셔터가 올라가서 촬영자의 눈에 보이지 않아요. 반면 레인지 파인더는 뷰파인더 창이 따로 달려서 렌즈 너머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속 인지한 채로 촬영할 수 있어요. 뷰파인더가 프레임 바깥의 여백까지 보여주는 것도 장점이에요. 요소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좀 더 빨리 포착할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흑백 이미지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 작업에서는 확실히 흑백을 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을 밝음과 어두움으로만 표현하잖아요. 단순화하는 대신 좀 더 사진에 담고자 하는 바를 응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가 훨씬 더 ‘분명해진다’고 할까요.


컬러가 중요한 요소인 피사체도 있잖아요. 아쉬운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보조 카메라로 라이카 Q를 샀잖아요. 하하. 여행에는 2~3대 정도의 카메라를 들고 가요. 화각을 다 다르게 해서요. 보통 라이카 M은 28mm, 라이카 Q는 50mm, 나머지 하나는 90mm예요. 디지털카메라는 먼지가 들어가면 너무 선명하게 잘 드러나기 때문에, 웬만하면 여행지에서 렌즈를 갈아 끼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라이카 M 시리즈는 설명이 필요없는 명기지만, 전문 사진가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니까요.

프로는 초점 맞추는 게 좀 더 빠르긴 해요. 물론 1초에 10여 장씩 찍는 DSLR에 비하면 느리죠.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물이잖아요. 그렇게 난사해서 얻은 사진이 한 순간을 기다려서 촬영한 것보다 나은가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초점을 직접 맞추면 촬영과 촬영 사이에 생각을 하게 돼요. 사람들이 순롓길을 굳이 걸어서 오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때에만, 천천히 곱씹을 때에만 보이는 게 있죠.



이규철은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상업 사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다. 몽골에서 촬영한 풍경 사진으로 작년 7월 개인전 <설리구진>을 열었고 지난 4월 말에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4・3사건 생존 수형인의 재심 청구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 <나, 죄 어수다>를 선보였다. @kyuchel.lee 














도시 고유의 분위기까지 포착하고 싶다면 중형 카메라가 딱 맞는 것 같아요.

사진가 윤정빈

Fujifilm GFX 50R

후지필름 GFX50R과 윤정빈 작가가 최근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 박기훈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꽤 많은 곳을 다녀왔어요. 도쿄, 홍콩, 하노이와 방콕까지. 어떤 의미였을까요?

단순히 여행이기도 했고, 좀 스케일이 큰 출사의 의미도 있었어요. 막 GFX 50R을 구매한 때였거든요. 중형 카메라를 샀으니 촬영 스타일도 좀 바꿔보자 싶었죠. 확실히 큰 카메라를 쥐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결과물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일단 예전보다 원경에서 찍은 사진이 많아졌죠.


주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중형 카메라가 유용한 점이 있나요?

흔치 않은 경우죠. 사실 GFX 50R이 좋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 당시 광모 디렉터가 제 작업을 보더니 추천하더라고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할 것 같다고요. 결과적으로 꽤 만족하고 있어요. 제가 최근에 몰두하는 게 도시 고유의 쓸쓸함을 포착하는 작업인데, 확실히 이런 분위기까지 포착하려면 중형 카메라가 딱 맞는 것 같아요. 배경을 넓게 잡아도 심심하지 않고, 디테일이 살아 있고요.


예전 촬영 스타일이 있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아쉬운 건 크기죠. GFX 50R을 구매하기 전에는 후지필름 X-Pro2와 리코 GR을 썼거든요. GFX 50R은 그렇게 길을 걷다가 보이는 걸 툭툭 찍기에 좋은 카메라는 아니잖아요. 특히 인물 사진의 경우 보통 의향을 물은 뒤 촬영하지만, 때로는 피사체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촬영한 후 결과를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사람의 딱 그 순간이 좋을 때요. GFX 50R은 존재감이 커서 그런 상황을 포착하기가 힘들죠. 전에 비하면 기동성도 좀 떨어지고요. 후지필름 X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뷰파인더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것도 아쉽긴 해요. 저는 뷰파인더를 잘 쓰지 않는 편이라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요.


크기가 장점이기도 하죠. GFX 50R은 중형 포맷치고 이례적으로 작은 모델이니까요.

맞아요. 생김새도 중형 카메라라기보다 레인지 파인더에 가깝고요. 과거 후지필름에서 출시한 중형 필름 카메라들과 닮은 듯도 하고, 언뜻 크롭 보디 기종인 후지필름 X-E3를 부풀려놓은 것 같기도 하죠.


카메라 브랜드 중에서는 후지필름을 가장 선호하나 봐요.

특유의 색감과 강한 대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품 디자인 측면에서도 마음에 들고요. 요즘은 웬만한 카메라 브랜드가 다 훌륭한 기술력을 갖고 있잖아요. 사용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에 따라 선택이 다른데, 저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봐요. 디자인이 만족스러워야 한 번이라도 더 들고 나가게 되죠.


주로 어떤 렌즈를 사용하나요?

35mm 단렌즈 하나만 써요. 제가 촬영하는 사진이 딱히 줌 기능이 많이 필요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휴대성이 더 중요하죠.


여행지마다 사진의 색감이나 톤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하나의 톤을 정해 두기보다, 촬영할 때 느낀 그 도시의 분위기에 맞춰 보정하는 거죠. 보통 라이트룸으로 후반 작업을 하고 VSCO 프리셋을 즐겨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후지필름 카메라 자체에 내장된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기도 해요.


주로 어떤 이미지에 만족하나요?

연속적으로 흐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통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한 순간만 딱 정지 화상으로 잘라냈을 때 흥미로운 풍경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공원에서 애크러배틱 체조를 연습하는 사람을 마주친다고 쳐요. 그냥 체조 행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진을 남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동작 중 특정 순간,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담는 거예요. 유명한 장소에서도 그 공간 자체보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 같은 요소에 더 끌리는 편이에요. 구도를 조금만 바꾸면 재미있는 이미지가 나오거든요.


여행 사진의 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네요. 또 다른 조언이 있을까요?

여행지에서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전에 숙소 주변이라도 가볍게 돌아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른 아침에는 특유의 빛 덕분에 예쁜 게 많거든요. 현지인이 어떻게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지도 볼 수 있고요.



윤정빈은 여행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사진가다. ‘제2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으며 2018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즈의 대한민국 내셔널 부문에서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yoonjeongvin.com 





글. 오성윤 사진. 박기훈




'여행자의 카메라'에 이어진 이야기

▶ 여행자의 카메라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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