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Jul 03. 2019

히말라야 높은 곳으로

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모험. 

심라의 웅장한 히말라야 산군. © Himanshu Khag/Getty Images


나는 진심으로 그 버스 운전사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버스 앞 유리에 비친 공포에 질린 나의 얼굴을 따뜻하고 매력적인 미소로 반겨주었으니 말이다. 몇 초 전, 내 자전거의 핸들이 낮게 늘어진 송전선에 걸리면서 버스 지붕의 선반에서 그만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버스가 계곡 아래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지붕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도로 위 허공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버스에 매달려 나는 앞 유리창을 두드렸다. “멈춰! 내 자전거!” 운전사는 당황하지 않고 좁디좁은 산악 도로에서 차를 돌려 대롱거리는 자전거 아래까지 이동했다.

나는 3일 전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자전거를 타고 마니카란(Manikaran)으로 향했는데, 도로 위에 나부끼는 기도 깃발, 멧새, 전깃줄, 현수막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산사태와 바퀴를 빨아들이는 진흙, 물웅덩이로 가장한 함정을 헤쳐 나가느라 정신이없었다. 자전거는 이제 전깃줄에 걸려 덜렁거리 며 감전사의 위험을 알리듯 쉬익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나한테 보호 장갑이 있어!” 운전사가 머리 위로 라텍스 주방 장갑 1켤레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는 버스 지붕에 올라가더니 전깃줄에 걸린 자전거를 끌어내어 구경하러 모여든 승객들의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나는 이게 그의 첫 번째 구조 사례는 아니리라 짐작했다.

나는 4주 전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Indira Gandhi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내 자전거가 다른 짐들과 뒤섞여 비행기에서 던져진 뒤, 뒷바퀴가 휘어진 채로 수화물 벨트에 실려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마 후에 델리의 자전거 시장에서 엄청난 실력의 장인을 만났는데, 그는 샌들을 벗어던지더니 맨발로 바퀴를 누르며 구부러진 바퀴를 완벽하게 복원했다. 


뉴델리를 벗어나 북쪽 방면으로 3일간 자전거를 달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눈 덮인 산을 보면서 시원한 히말라야 공기를느꼈다. 그것은 매연 가득한 거리의 타는 듯한 더위  아래로 트럭이 정신 없이 질주하고, 성스러운 암소들이 서행 차선에서 되새김질에 여념이 없는 풍경을 지나쳐온 이에게 반가운 안도감을 주었다.

어떤 날은 나를 환영해주는 열기도 날씨만큼 뜨거웠다. 기어가 없는 구형 자전거를 탄 현지의 사이클리스트들과 나란히페달을 밟으며 미소를 짓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 를 벌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결혼식 피로연을 피해 돌아가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 현장에서 신랑과 춤을 춰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후 내내 특별 손님으로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기나긴 오르막을 달린 뒤 한가로이 쉬다가 꽃다발을 한아름 싣고 가는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차이를 한잔 마시면서 크리켓 이야기를 나누자고 나를 초대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과거 대영제국의 정부 관계자와 그들의 가족이 더위를 피해 머물던 여름 휴양지 심라(Shimla)였다. 자전거를 타고 모퉁이를 돌자 주변 환경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영국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는 대영제국 시대에서 떨어져 나와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주의 녹음이 우거진 산지 한가운데로 옮겨온 듯했다. 이어서 심라로 연결되는 협궤 철도를 따라 달리다가 흡사 영국의 시골 시장 같은 장소를 마주쳤다.

심라부터 마니카란까지는 약 2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곳에서 나는 전깃줄에 자전거가 걸린 탓에 버스에서 내리고야 말았다. 그후 자전거를 끌고 마날리(Manali)까지 꾸역꾸역 90여 킬로미터를 더 갔다. 나는 계속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다가올 거대한 도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날리부터 레(Leh)를 잇는 로탕 패스(Rohtang Pass)는 해발 3,977미터까지 올라가는 고갯길이다. 여름철에만 열리며, 쿨루(Kullu)와 라하울(Lahaul) 계곡에 걸쳐 있다. 고갯길의 이름을 번역하자면 ‘시체 더미’인데, 악천후에 이 길을 지나려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도착한 날, 도로는 관광버스의 행렬로 꽉 차 있었다. 남쪽에서 여행자들을 데려와 눈으로 뒤덮인 산악지대를 구경시켜주는 버스였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길가의 노점에 들러서 이국적인 모피 코트, 등산 스틱이나 모자 따위를 빌렸다. 눈밭에 맞서기 위한 필수 물품이었다. 나니아 왕국에서 탈출한 듯한 수백 명의 당일치기 여행자는 의무적으로 눈덩이를 던졌고, 얼음과 눈으로 이글루와 눈사람을 만들려 했다.

몇 시간을 올라간 후에 나는 길을 가로막은 설벽을 맞닥뜨렸다. 내가 얼마나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로탕 패스의 정상부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설벽 덕분에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가던 길을 멈췄다. 나는 되돌아 내리막길을 내려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계 장비를 분주히 반납하고 있던 관광버스와 여행자 무리를 추월해버렸다.

하루 동안 신나게 노는 여행은 달라이 라마의 고향인 고원 도시 다람살라(Dharamsala)에 스며든 영적 오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중심가에는 크고 화려한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가 줄지어 있고, 승려들은 명상과 깨달음, 혹은 저렴한 가격의 바나나 팬케이크를 찾아 온 여행객 사이를 누비며 사찰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주에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앞에 인내심을 가지고 줄을 서 있는 수천 명의 순례자에게 축복을 내릴 예정이었다. 영적인 유명인을 만난다는 호기심에 동해 그 행렬에 동참했는데, 달라이 라마의 따뜻한 눈빛은 진정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후 나는 가장 가까운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단순히 패션 스타일의 하나였을지 모르지만, 다음날 히말라야에서 불어와 빠른 속도로 내 머리를 스치는 바람의 감촉은 참으로 영적인 느낌을 선사했고, 델리로 돌아가는 길을 일종의 순례 의식처럼 변화시켰다.


글. 맷 스웨인(Matt Swaine)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

▶ 론리플래닛 코리아 웹사이트

▶ 론리플래닛 코리아 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마카오 랜드마크 탐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