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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06. 2020

네바다 신기루 - Part 1

미국 네바다주 겨울 여행기

미국 네바다주 하면 보통 사막을 떠올리지만,
스페인어로 ‘눈으로 덮인, 눈이 쌓인’이라는 뜻의 네바다(nevada)가 어원이다.
네바다의 겨울은 여러 계절이 공존한다.
때론 서로 다른 시대를 넘나들고,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차원의 네바다를 경험하고 나면,
이곳이 묘하고 아득한 신기루처럼 느껴질 것이다.






Mount Charleston

사막의 낙원

눈이 내려앉은 늦겨울의 리 캐니언. ⓒ LEE CANYON



“작년 겨울, 10년 만에 라스베이거스에 눈이 내렸다니까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있는 고든 램지 스테이크(Gordon Ramsay Steak)에서 식사를 하던 중 어디선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바다주를 대표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만 해도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탓에 겨울에 눈을 볼 일이 드물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서 95번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레드 록 캐니언 국립보존지구(Red Rock Canyon National Conservation Area)의 붉은 암석 협곡 너머로 눈 덮인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스프링 산맥(Spring Mountains)에서 가장 높은 찰스턴산이다. 이미 오래전, 네바다 원주민이 ‘눈이 내려앉았다’고 표현한 곳답게 겨우내 폭설이 쏟아진다. 덕분에 찰스턴산 북쪽에 위치한 리 캐니언 스키 앤드 스노보드 리조트(Lee Canyon Ski and Snowboard Resort)가 12월부터 4월까지 개장한다.

156번 도로에 접어들어 사막에서 서식하는 조슈아나무 너머로 하얀 산이 점점 가까워지면 곧 리 캐니언에 도착한다. “2월에 눈이 가장 많이 내려요. 어제도 눈이 왔죠.” 리조트 스태프 짐 실리(Jim Seely)가 이야기한다. 나는 어제 이곳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는데, 당연히 눈 구경은 전혀 하지 못했다.



눈 쌓인 라스베이거스 사인 너머로 리프트가 운행 중이다. ⓒ LEE CANYON

초보자 슬로프인 래빗 피크(Rabbit Peak)는 굉장히 완만하지만, 스키를 타면서 볼 수 있는 산세는 262미터 높이의 정상에서 내려올 때 펼쳐지는 풍경 못지않다. 힐사이드 로지(Hillside Lodge) 2층 테라스에선 사람들이 저마다 목을 축이고 눈발을 휘날리며 점프하는 스키어의 곡예를 바라본다.


리 캐니언 근처에 있는 약 10킬로미터 길이의 브리슬콘 트레일(Bristlecone Trail)을 하이킹하기로 한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반바지 차림의 한 남성이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300미터 정도만 더 가면 허벅지까지 눈이 쌓여 있어요.” 발목 정도 폭 잠기는 지점에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약간의 과장이 아닐까 싶었다. “조심해요!” 빽빽하게 높이 솟은 소나무의 좁은 틈 사이로 스노보더가 빠르게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스키 및 보드용 트레일과 하이킹 트레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인 눈 때문에 생긴 일이다.


스노슈잉을 하는 이들은 부츠를 신은 나를 보곤 멋쩍은 듯 말한다. “오늘은 굳이 스노슈즈까지 필요하진 않았네요.” 사막에서 귀한 눈을 만끽하기 위해 장비를 제대로 갖추는 것 역시 하나의 묘미라는 말을 미처 전하지 못했다. 찰스턴산은 여름에도 겨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 네바다의 혹독한 사막 탈출을 꿈꾸는 이에겐 이곳이 낙원일 수도 있겠다.




More to

ⓒ 김민주

데저트 뷰 오버룩

(Desert View Overlook)


찰스턴산에서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의 

광대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모하비 사막의 여러 지형과 위치뿐 아니라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 등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을 갖췄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며, 근처의 디어 크리크 피크닉 에어리어(Deer Creek Picnic Area) 주차장에 

화장실이 있다.








Beatty

과거는 현재의 영광

지하는 우체국, 1층은 은행, 2층과 3층은 사무실로 사용하던 라이얼라이트의 건물은 유령이 나올 법한 폐허가 되어 버렸다. ⓒ PAUL LEMKE



라이얼라이트 유령 마을(Rhyolite Ghost Town)을 가리키는 이정표 속 “낮에만 방문하라”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도로 양옆으로 무너진 건물과 그 잔해만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폐허가 된 마을의 사연이 문득 궁금해진다.


1904년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듬해 라이얼라이트가 생겼고, 이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7~1908년 라이얼라이트는 네바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모든 것을 갖춘 선망의 대상이었다. 증권거래소에 뉴욕의 투자자들이 들락날락하고,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토요일 밤마다 공연이 열렸으며, 알래스카 빙하로 만드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존재했다.



라이얼라이트 유령 마을의 유일한 거주자인 칼 올슨이 옛 기차역의 문을 열고 있다. ⓒ 김민주



그러나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과 1907년 공황의 여파로 투자가 위축되고, 금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붕을 찾아볼 수 없는 학교를 1916년 완공했을 땐, 이미 입학할 학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번성부터 몰락까지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은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간직한 이 유령 마을은 이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 처럼 여러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마을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 1906년 광부 톰 켈리(Tom Kelly)가 5만 개의 맥주병과 와인병으로(그가 혼자 다 마신 건 아니라고 한다) 지은 보틀 하우스(Bottle House). 그리고 경고판에 나와 있듯이 종종 출현하는 방울뱀과 이곳의 유일한 거주자인 가이드 칼 올슨(Karl Olsen)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올슨에게는 라이얼라이트가 현재 진행 중인 삶의 터전이자 지금을 살아가게 해주는 과거의 흔적이라고. 그가 이 유령 마을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해피 부로 칠리 앤드 비어의 내부. 밖에 붙어 있는 수배 전단지 속 인물을 실제로 만나도 깜짝 놀라지 말 것. ⓒ SYDNEY MARTINEZ/TRAVELNEVADA 



비티를 주름잡는 카우보이, 위스키 잭 케인. ⓒ 김민주

라이얼라이트 유령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비티로 향한다. 저녁이 되자 해피 부로 칠리 앤드 비어(Happy Burro Chili & Beer) 같은 호프집에 카우보이가 모여든다. 마치 서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저마다 캐릭터가 다른데, 위스키 잭 케인(Whiskey Jack Cain)은 서부 개척 시대에 이름을 떨친 카우보이 위스키 잭의 이름을 따왔다며 그의 전설적 비화를 늘어놓는다. 갱스터 카우보이를 표방한다며 껄껄 웃던 윌 데이비스(Will Davis)가 갑자기 한 여성을 위협하며 납치극이 벌인다.


한 편의 연극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막상 총소리가 들리자 다들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통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인질극이 다 끝난 건가 안도하는 순간, 마지막 총성이 울리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비티는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라 펍의 개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카우보이를 만날 확률도 높다(극은 특별한 날에만 열린다).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의 관문에서 서부 개척 시대와 골드러시를 연이어 마주하며 라이얼라이트 유령 마을에서 스치듯 본 문장이 떠오른다. “현재를 탐험하며 과거를 기억한다.”




More to

ⓒ CHRIS MORAN/TRAVELNEVADA

골드웰 야외 박물관

(Goldwell Open Air Museum)


아마르고사 밸리(Amargosa Valley)를 배경으로 한 이 박물관은 1984년, 벨기에 예술가 알베르트 슈칼스키(Albert Szukalski)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유령 형상으로 재해석한 조각상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예술가가 잇따라 남긴 작품이 함께 전시 중이다. 방문자 센터와 기념품 가게는 일요일을 제외한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문을 열며, 여름에는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 ⓘ goldwellmuseum.org




글/사진. 김민주


김민주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에디터다. 곧 라이얼라이트 유령마을에서 촬영한 영화를 감상할 계획이다. ⓘ 취재 협조 네바다관광청(travelnevada.com)




'네바다 신기루 - Part 1' 이어진 이야기

▶ 네바다 신기루 - Part 2

 네바다 신기루 -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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