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온 것이 분명한 향기. 그런데 커피는 그 향보다 더 멀리서 왔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걸 마시면 나는 더 멀리 가겠지."
-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에서
맞다. 더 멀리 가고 싶어서 커피를 마셨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천천히 붓는 동안 향기가 조심스레 피어오르면 짙은 숨결이 겹겹이 쌓였다. 그 향기로운 숨결을 들이켜는 순간, 나는 이곳을 벗어나 기나긴 물줄기를 거슬러 숲을 지나, 수평선 푸른 바다 물결 위로 단숨에 날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높고 먼 곳이 아니라도 좋았다. 가보지 못한 곳을 꿈꿀 에너지, 그 꿈을 향해 피터팬처럼 사뿐히 떠오를 힘을 얻었으니까. 오직 향기의 힘으로.
너무 오랫동안 향기가 주는 힘에 의지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토록 먼 곳까지 도약할 힘을 감당하기엔 내 영혼이 너무 무거워진 것인지도 몰랐다. 2, 3년 전부터 디카페인 커피를 더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만, 귀한 보물을 꺼내는 마음으로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를 마셨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날아오르는 기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아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같은 향기를 맡고 있었으니까. 늦은 오후에 친구를 만나면, 디카페인 커피조차 마실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커피의 그윽한 향기를 타고서 그와 더 멀고 깊은 데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내 멋대로 서운해지곤 했다.
포항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가끔 서운해질 일마저도 사라졌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는 만날 이가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일주일에 서너 잔, 홀로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
은행잎처럼 노란 가을 햇살이 거실을 물들이던 날이었다. 머그잔 바닥에 말라붙은 커피 얼룩을 닦다가 문득 마음먹었다. 당분간 디카페인 커피도 마시지 않겠다고. 그날 아침에도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보약이라도 되는 듯 아껴 아껴 마셨던 터였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수면의 질이 문제였다. 내 몸은 점점 예민해져서, 이제 미량의 카페인에도 크게 반응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늦게 커피를 좋아하고, 뒤늦게 커피에 미친 사람처럼 빠져버린 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도, 한번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새벽녘에 간신히 잠들었다가 겨우 일어나면 피로가 하루를 꽁꽁 묶어버렸다. 예전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도 그럭저럭 하루가 견딜 만했지만, 이제는 부족한 수면을 감당할 체력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 동안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지내보기로 했다.
커피 없이는 못 사는 내 몸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2주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커피 한 방울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자다가 깨서 두어 시간 잠이 안 와 말똥말똥한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엔 그럭저럭 잠이 왔다. 좋아하는 커피도 참고 있는데, 잠의 모양이 뒤죽박죽인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3주 차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우선 잠드는 시간이 짧아졌다. 중간에 깨더라도 다시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한 번도 깨지 않고 통잠을 자는, 믿을 수 없는 날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날 아침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 안색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토록 개운한 얼굴빛을 가질 수도 있다니.
부작용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그날부터 혹독하게 몰아쳤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졸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사정없이 꺾이는 고개를 간신히 들고서 정신을 차려보면, 책은 여전히 처음 펼쳤던 그 페이지였다. 날마다 야자를 하던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이렇게 꾸벅꾸벅 졸기는 처음이었다. 책 한 권 읽기가 이토록 힘든 일일 줄이야. 내가 그동안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 카페인 덕분이었단 말인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건 아무래도 착각인 것 같았다.
책뿐만이 아니었다. 조금만 집중하거나 애를 쓰면 금세 피곤해졌다. 그래서 평소 습관처럼 하던 일들 틈틈이 쉬어야 했다. 내가 지닌 것이라고는 습자지 같은 체력뿐이라는 것을 여과 없이 체험했다. 도대체 커피 없이는 일상을 유지할 수도 없단 말인가. 갑옷을 벗은 노 장군이 기력이 쇠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매트에 누워, 뻣뻣한 몸을 뻗어 스트레칭 했다. 덕분에 나의 진짜 컨디션을 잘 알아차릴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굳이 말해볼 수 있으려나.
일기장에는 날마다 생체 실험의 기록이 남았다. 대체로 나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내용이었다. 결심했던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친구에게 말했다. 정말 한 달간의 실험이 성공하면, 그날은 자축하는 마음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마시겠노라고. 막상 그날이 되니, 왜인지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저 전날처럼 카페인 한 방울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뿌듯하게 하루를 보낸 것이다.
사실은 다른 속셈이 있었다. 며칠 뒤, 보고 싶던 친구들이 내가 사는 곳 가까운 도시로 와주기로 한 터였다. 그날만큼은 친구들과 카페인 파티를 하리라 결심하였다. 낯선 곳에서 아침부터 만난 우리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카페를 찾아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주문한 카페라테는 집에서 내가 사용하던 머그잔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잔에 가득 담겨 나왔다.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그립던 커피 향기는 나를 데리고 꽃향기와 흙내음으로 가득한 이국으로 데리고 갔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아메리카노를 한잔 더 마셨다. 늦가을 밤바람을 닮은 쌉쌀한 커피의 맛이 입안을 채웠다. 한 달간 카페인을 절제한 나의 혀는 그 어느 때보다 커피 향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보고팠던 친구들을 만나서였을까. 한 달 하고도 닷새 만에 마신 커피 덕분일까. 친구들과 빼곡히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8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친구는 헤어지면서, 커피를 마신 내가 잠을 못 잘까 걱정했다. 하지만 웬걸. 그날도 나는 다디단 잠을 잤다. 그리고 그다음 날로 다시 한 달간 커피를 마시지 않는 두 번째 생체 실험이 시작되었다.
"꿈을 꿀 수 있는 한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 (…) 그러나 꿈을 꾸기 위해선 먼저 감정이 독자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꿈처럼 독창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 박완서,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중에서
꿈처럼 독창적인 것도 없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문장이, 커피 한 모금 닿지 못한 가슴 속에서 반짝거린다. 이제는 커피에 기대어서 멀리 갈 수는 없지만, 내 두 다리로 천천히 달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의지가 약하고 체력이 예전 같진 않지만, 나를 받쳐줄 인생의 지팡이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시시콜콜 온갖 감정들을 불러다가 쓰는 글쓰기나 친구들과 나누는 꿈에 대한 소소하지만 소중한 대화 같은 것들 말이다. 꿈꾸는 곳까지 갈 나만의 방법을 습득하는 것, 이 또한 꿈처럼 독창적이어야 하니까.
꿈꾸던 것처럼 높이 날아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오래 도약을 연습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책을 읽다가 여지없이 졸기는 하겠지만, 그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계속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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