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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장 Jan 11. 2024

별똥별에 소원빌기가 제일 쉬운 나라

몽골의 은하수 지붕 아래서


몽골 하늘에서 별 찾기


 쉬울 줄 알았다. 당연히 첫날부터 은하수를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만큼 나는 완벽한 은하수를 보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으니까. 달이 밝지 않고, 평균적으로 날씨 좋은 때를 엄선해 여행기간을 정했다. 별자리 어플과 은하수 아래서 덮을 담요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그렇게 도심인 울란바토르를 떠나 게르 숙소에서의 첫날. 제야의 종이 치는 밤 열두 시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간절히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잠깐, 여기서 막간의 팁을 주겠다. 몽골 초원에선 날씨 어플이 필요 없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인 한국과 달리 높은 산도 건물도 드물다. 때문에 지평선 끝에 비구름이 보이면 곧 여기도 비가 오겠거니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투어 첫날 알아 버렸다. 그렇다. 갑자기 지평선 저 끝에서부터 짙푸른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별 보기 명당이래도 날씨 앞엔 장사 없었다.


번개 치는 초원 위의 강아지(라기엔 조금 듬직한 몽골 토종개 방하르)

 저 멀리 초원 한 구석에서 번쩍하고 불빛이 내리 꽂혔다. 번개였다. 시야에 가릴 것이 없어서인지 제법 가깝게 느껴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한국에선 종종 번개가 치면 정전이나 화재 따위의 위험한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도 서 있지 않은 그곳에선 불이 날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자연이 만드는 장관을 넋 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본대도 그보다 장관일 순 없었을 듯.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이런 광경을 보다니, 은하수는 내일 보지 뭐- 하고 나는 생각 했다.


해질녘의 게르 주변 풍경

 다른 날, 다른 숙소에서의 저녁. 그날은 오묘한 붉은빛과 보랏빛의 노을이 먹구름 대신 번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 오늘이 날이구나!


 최신식(?) 샤워장이 있던 유일한 숙소였다. 한낮에 묵은 땀과 흙먼지를 씻어내고 샤워장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발밑을 살펴 걸어야 할 정도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샤워 후 개운함을 토로하는 것도 잊은 채 곧장 하늘부터 올려다보았다.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은하수

 별이 쏟아지는 밤, 생애 첫 은하수


 지평선 저 끝에서 끝으로 무지개처럼 땅끝에 걸린 은하수와 별들. 손으로 쓸어 담으면 별사탕처럼 바글바글 모아질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별들과 우리 사이에 그 무엇도 없는 너른 하늘은, 그야말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케 만들었다.

드문드문 떨어진 게르들 앞에서 여행객들이 각자의 별구경을 즐겼다. 누워서 보면 마치 하늘의 모든 별이 내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우주의 보잘 것 없는 먼지가 된 듯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가요 소리, 희미한 풀 벌레 소리, 알아들을 수 없어 더 마음 편한 현지인들의 대화소리, 이대로 까무룩 잠들어도 좋을 듯한 선선한 날씨까지. 모든 게 다 완벽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몽골의 '별똥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른 셔터에도 별똥별이 찍혔다


 나는 별똥별이 매일매일 떨어진다는 사실을 몽골에서 처음 알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원 빌 기회가 있다니,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타이밍이었다.

 누군가가 말하길, 별똥별이 다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빌어야 이루어진다 했다. 기껏 몽골까지 와서 빌었는데 안 이루어지면 무슨 소용이겠나. 미신이래도 이왕이면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랩을 하듯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허나 별똥별의 속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잔머리를 굴렸다. “하늘을 보면서 같은 소원을 계속해서 빌어보자!” 무식한 방법이지만 꽤 효과적이었다. 빌다보면 한 번쯤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타이밍과 딱 맞아떨어졌으니까. 여자 넷이 돗자리 위에 누워 중얼중얼 소원을 비는 모습이라니. 조금 우습긴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몇 번씩이나 성공적으로 소원을 빌었다. 워낙 별똥별이 자주 떨어지다 보니 소원빌기가 아주 누워서 떡 먹기였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지을 적엔, 한국도 몽골 같은 밤하늘이었을까? 절로 헤아리고 싶어질 정도로 무수한 별로 가득 찬 하늘. 아마 그 시절 밤하늘이 지금의 한국과 같았다면,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쯔음에서 시가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목을 '가로등 헤는 밤'으로 바꿔야 했으려나. 이제는 시골 본가에 가도 별이 참 귀하다. 그러니 한국에서 밤하늘을 볼 때면 몽골의 밤이 더욱 그리워질 수밖에.


 몽골이든 어디든, 분명 죽기 전에 또 은하수를 보겠지. 분명 내가 모르는 더 환상적인 은하수 명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몽골에서 본 은하수는 '내 생애 첫 은하수'라는 기준이 되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박혀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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