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지 말아줘
대한민국의 장점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인터넷'이다. 어딜 가도 빵빵 터지는 '초고속 인터넷'. 무슨 놈의 나라가 지하철 안에서도 인터넷이 이리 잘 되는지. 물론 그 기술력을 야무지게 즐기며 사는 나지만, 가끔은 이런 환경 때문에 도리어 피로를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날아오는 각종 카톡과 문자, 전화, 이메일까지. 나는 성격상 연락이 오면 답장을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사람이다. 핸드폰 아이콘에 숫자 1이 떠있는 걸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한 사람. (내 핸드폰은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는 때가 아니면 대체로 무음모드. 진동모드도 아닌 완전 무음모드다.) 이런 사람이 살기에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다소 피곤한 나라일 수밖에. 어떤 나라는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안 터져 핸드폰 대신 책 읽는 사람이 더 많다던데. 가끔은 그런 나라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주위에 연락이 잘 안 될 거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실제로 몽골 여행 중 한국과의 연락은 고비 투어 중 잠시 들른 어느 마을에서 보낸 문자 두 통이 전부였다. 친구 한 명과 엄마에게 각각 한 통씩. (그 둘에게 나머지 친구와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 부탁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순간부턴 대체로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쓸데없이 폰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연락이라는 족쇄로부터 그야말로 해방이었다.
그렇다면 몽골에선 무료한 시간에 스마트폰 없이 무얼 하며 보내면 좋을까?
(관광과 이동시간을 제외한 완전 자유시간을 나는 이렇게 보냈다. 별거 없음 주의. 그래서 더 좋음.)
1. 책 읽기, 일기 쓰기
몽골 여행을 고민 중이라면 꼭 책 한 권은 들고 가시길 추천한다. 이보다 더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방해꾼은 날벌레 정도가 되시겠다. 책이 싫다면 노트 한 권을 챙겨 일기를 쓰는 것도 좋겠다. 몽골에서 한 무수한 생각들을 잡아 두자.
2. 사진 찍기
함께 간 여행 메이트, 현지인, 몽골의 갖가지 풍경까지. 눈과 렌즈에 담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정신없이 찍다 보면 어느새 배터리 부족. 인터넷은 안 터지지만 보조배터리와 카메라 배터리는 넉넉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다.
3. 멍 때리기
질리도록 멍 때릴 수 있는 최적의 나라다. 몽골 초원과 하늘 사이의 말이나 새, 혹은 별이나 세어보자.
아래 사진에 말은 몇 마리게요?
4. 음악 듣기
몽골에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받아 가자. 몽골 여행이 끝나도 그때 들은 음악들로 몽골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참고로 나의 몽골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페퍼톤즈- Ready, Get Set, Go!>와 <안녕바다 - 별 빛이 내린다>. 이 외엔 그 시절 인기 가요들을 많이 다운 받아 갔는데 잘 기억도 안 난다. 더 신중하게 선곡해서 갈 걸 그랬다는 생각.
5. 식은 맥주 마시기
냉장고가 없어 미지근한 맥주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체험해 보자. (그래도 맥주는 시원한 게 최고이긴 하지만)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 <여행>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지 말아 줘~'. 나를 포함, 이런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현실을 잊고 싶거나, 현실에서 잊히고 싶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몽골'은 아마 최적의 여행지가 아닐까? 물론 최근엔 몽골 인터넷 사정이 더 나아졌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응 나 몽골 여행 갈 건데, 사막 같은데 가면 연락이 안 될 거야.'하고 핑계대기 좋은 나라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