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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장 Mar 01. 2024

전해줘야 할 사진이 있는 나라

어느 유목민 아주머니께

 

나를 찍어주세요


 하루는 관광 코스 중 하나인 유목민 가정집을 방문했다. 으레 관광지에 가면 하는 평범한 전통 체험 같은 것이었다.


 우연히 친해진 현지인의 집에 초대되는 것과 관광 상품으로 내놓은 집에 초대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간식거리를 내어주고 어색하게 웃는 유목민 가족, 입맛에 안 맞는 간식을 먹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는 우리, 그리고 그 사이를 겨우 연결해 주고 있는 현지 가이드까지. 그 순간은 여행 내내 허물없이 장난치던 가이드와 기사님까지 우리가 관광 상품으로 얽힌 이해관계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조금 피곤한 성격인 나는 어쩐지 그 순간이 조금 불편했다.


  가이드님은 대뜸 우리에게 기념사진을 제안했고,  유목민 가족과 우리의 그 어색한 순간은 영원히 박제되고 말았다. (차마 올리진 못하겠다... 내 어색한 웃음이 상당히 가관임...)


유목민의 집에서 보고 먹은 것들


말을 타는 아이 (초상권을 위해 덧그림ㅎ)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게르 밖에선 유목민 가족분들도 한결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말을 타는 꼬마에게 곧장 시선을 빼앗겼고,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내게 유목민 아주머니와 가이드가 다가왔다.


 "이분이 사진을 좀 찍어달래."


  게르 안에서 수줍게 웃기만 하시던 아주머니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좋은 카메라로 본인 사진을 찍고 싶대. 찍어서 나한테 보내주면 다음에 다른 관광객들 데려올 때 전해달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하자 아주머니는 해사하게 웃어 보이셨다. 카메라 앞이 어색하신지 조금 쭈뼛거리셨지만, 게르 안에서 함께 기념 촬영을 할 때보다 훨씬 예쁜 웃음이었다.


게르 앞에서 웃는 아주머니

나는 찍은 사진을 아주머니께 보여드렸다. 손가락으로 화면 속 자신을 어루만지며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같은 관광객과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으셨을 텐데, 저 혼자만 나온 사진 한 장이 갖고 싶으셨던 걸까? 어떤 마음으로 내게 사진을 부탁하신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조금 더 열심히 찍어드릴 걸 아쉬울 뿐.



전하지 못한 사진


 몽골여행에서 돌아왔다. 밀린 일상을 살아내느라 사진 정리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뒤늦게서야 사진을 다시 보다 몽골 아주머니와의 약속이 떠올라버린 것이다...(이런)


 부랴부랴 가이드에게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봤지만, 어째서인지 답은 오지 않았다. (우리와 여행이 끝난 후 남편과 미국에 간다는 얘길 했는데, 아마 그래서였지도...) 가이드와 연락이 닿질 않으니 사진을 전해주기는 힘들어졌다.

 

 '나중에 투어회사에 연락해 물어보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학교 생활을 하고, 알바를 하고, 취직을 하고. 어느샌가 아주머니와의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 사이에 몇 번이나 몽골 사진을 꺼내 봤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주머니도 기억 못 하시겠지.' 하며 부러 잊으려 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2024년.

몽골 여행기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사진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잊고 살던 사진 속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쳤다.


'7년도 더 지났으니 이젠 정말 잊으셨겠지' 하고 생각했다. ‘다른 맘씨 좋은 여행객에게 사진을 받으셨을 거야 ‘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문득, 카메라 화면 속 자기 모습을 보며 좋아하시던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참 이상했다. 늘 그랬듯 그냥 그렇게 잊어도 됐으련만, 어째서인지 이번엔 자꾸만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아직까지도 이 사진을 기다리고 계시면 어쩌나. 나 같은(사진 부탁을 받고도 보내주지 않은) 여행객이 많았으면 어쩌나. 내가 사진을 보내주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셨으면 어쩌나. 그래서 영원히 전해줄 수 없게 되면 어쩌나. 겨우 사진 한 장 찍어 준 사이인 주제에, 그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다시 몽골에 가야 할까?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 메일함을 뒤졌다. 다행히 투어회사와 주고받은 메일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운영 중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단 메일을 보냈다. 혹시 이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전해드릴 방법이 있느냐고.


무시하셔도 됩니다-라고 추신을 달아 놓긴 했지만 답장이 꼭 오길 바란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또다시 몽골에 가서 이 사진을 전해드려야 할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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