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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진 Apr 10. 2022

송중기의 ‘펌핑 치약’, 누구나 사용할 수 있나요?

(LG 생활건강 vs. 애경산업)

미소가 해맑은 배우 송중기는 LG생활건강의 '펌핑 치약' 광고에서 시청자를 상대로 대화하듯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제 내꺼합니다", "하루 세 번 설렘", "당신을 보면 내 심장이 펌핑 펌핑하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태양의 후예를 보고 중기앓이를 하는 여심을 자극하고 연인들의 사랑고백 대사로 애용되면서 펌핑 치약은 매년 기록적인 매출액을 자랑하게 되었다.


일명 송중기 치약으로 알려진 '펌핑 치약'의 '펌핑'이 '심장이 콩콩 뛰는' 느낌으로 인식되어 상표권자인 LG생활건강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용기 상단의 펌프 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LG생활건강과 애경산업 사이에 치열한 법적 분쟁이 있었다.


<LG 생활건강 vs. 애경산업의 싸움>


LG생활건강은 'PUMPING' 또는 '펌핑'이 포함된 상표를 등록하였고, 2013년 7월경부터 '펌핑' 상표를 용기 상단의 펌프를 눌러 사용하는 치약에 표기하여 사용하여 왔다. LG생활건강의 '펌핑 치약'에는 유명 배우인 송중기가 광고 모델로 출연하였고 "당신을 보면 내 심장이 펌핑 펌핑하지 말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페리오 펌핑 치약]


 그런데 애경산업이 2018년 7월경부터 용기 상단의 펌프를 눌러 사용하는 '2080 펌핑 치약'을 출시하여 판매하였다.


[2080 펌핑 치약]

 

LG생활건강은 법원에 애경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애경이 치약 제품에 펌핑을 사용하는 것은 LG생활건강의 상표권을 침해한다'라는 이유로 '펌핑'의 사용 금지를 청구하였다.  


<누가 이겼나?>


특허법원은 '펌핑'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LG생활건강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주된 이유는 ‘펌핑’은 '용기 상단의 펌프 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형태'를 보통으로 표시한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고,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들이 제품을 설명하거나 소개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공익상 특정인으로 하여금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특허법원 2021. 9. 10. 선고 2020나1384 판결).


<이해의 길잡이>

기술적 표장이란?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3호는 ‘상품의 품질·효능·용도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에 해당하는 경우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상품의 품질·효능·용도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가 바로 기술적 표장이다. 예를 들어 앞서 OLED와 QLED와 같이 제품의 품질과 효능을 나타내는 표장이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게 된다. 

기술적 표장에 대하여 상표등록을 금지하는 이유는 거래계에서 누구라도 이를 사용할 필요가 있고 그 사용을 원하기 때문에 공익상 특정인으로 하여금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패 이유는?>


LG생활건강은 '펌핑'은 '심장이 콩콩 뛰는' 감성적 느낌을 강조한 것으로 '용기 상단의 펌프 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형태'를 뜻하는 기술적 표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송중기의 광고 문구와 함께 설문조사결과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증거로 제출된 설문조사결과는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펌핑'을 LG생활건강 제품의 브랜드 이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애경산업은 '펌핑'은 종래부터 '용기 상단의 펌프 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형태'를 갖는 제품에 많이 사용되어 왔고, 치약 제품에서 LG생활건강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도 '펌핑'이라는 표장을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LG생활건강의 설문조사결과에 반박하기 위하여 새롭게 설문조사결과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증거로 제출된 설문조사결과는 응답자의 상당수가 '2080 펌핑 치약' 제품 중 '2080' 부분을 상표로 인식하고, '펌핑' 부분은 '제품 상단을 위에서 아래로 눌러서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는 서로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었다. 펌핑 치약에서의 '펌핑'은, 일반 수요자가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아 LG생활건강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용기 상단의 펌프 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법원의 깊은 고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반 수요자가 '펌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양 당사자의 대립되는 설문조사결과가 중요한 증거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결국 법원은 LG생활건강이 제출한 설문조사결과는 배척하고, 애경산업이 제출한 설문조사결과를 채택함으로써 LG생활건강은 패소하게 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럼 왜 법원은 LG생활건강이 제출한 설문조사결과를 배척한 것일까?


LG생활건강은 설문조사의 모집단을 설정함에 있어서 '치약'은 생필품으로 일반 수요자가 여성으로 제한되지 않음에도 '여성'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남성' 배제하였다. 그리고 질문에서 "귀하께서는 '펌핑' 치약 브랜드를 어느 회사의 제품으로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하여 '펌핑'이 치약 브랜드라는 점을 명시하여 응답자가 원하는 답을 제시하도록 유도성 질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은 LG생활건강의 설문조사결과는 객관적 타당성과 신뢰성이 없다고 보고 이를 배척하였다.


반면, 법원은 애경산업이 제출한 설문조사결과는 모집단 설정 및 대표 표본 추출, 그 설문 내용, 질문 방법에 있어서 그 객관적 타당성과 신뢰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이를 증거로 채택하였다.


LG생활건강은 정말로 패배한 것일까?


'펌핑'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표장으로 LG생활건강이 이를 독점할 수 없게 되었지만,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과 수요자들에게 '페리오의 펌핑 치약' 또는 '송중기 치약'으로 인식되어 오랜 기간 동안 펌핑 용기 치약 분야에 있어서 높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펌핑'을 잃어버렸지만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페리오'와 '송중기'가 LG생활건강의 펌핑 치약 제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케팅의 힘이 아닐까?


LG생활건강은 상표 소송에서는 패배하였지만 마케팅 전략에서는 승자라고 본다. 결국 진정한 패배라고 보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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