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초코파이 vs. 롯데 초코파이)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하다 보면 갑자기 멍해지면서 어지러움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당이 떨어졌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 미리 구비해 둔 초코파이로 자연스레 손이 간다. 초콜릿 옷을 입고 푹신한 마시멜로우를 감추고 있는 달달한 초코파이는 이 순간 떨어진 당을 단숨에 올려주는 최고의 간식이 된다.
초코파이는 1973년경 오리온(당시 동양제과)의 과자개발팀장이 미국 조지아주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문파이(Moonpie)'를 맛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은 1974년 원형으로 된 작은 크기의 빵과자 안에 마시멜로를 넣고 외부에는 초콜릿을 바른 제품을 개발하여 출시하면서 '초코파이'라는 상표를 사용하였다. '초코파이'는 오리온에서 처음으로 창작한 단어로서 그 이전에 이러한 상표가 사용된 사례는 전혀 없었다.
당시에는 마시멜로와 초콜릿이 들어 있는 과자를 맛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초코파이'는 출시되자마자 소비자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과자 제품으로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초코파이의 매출이 급상승하자 경쟁업체인 크라운제과, 롯데제과 등도 앞다투어 '롯데 초코파이', '크라운 초코파이'라는 상표를 등록하고 해당 상표가 부착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리온은 롯데제과가 '초코파이'가 포함된 '롯데 초코파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여 사용하자, 롯데제과를 상대로 '롯데 초코파이' 상표는 자신의 상표와 유사하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특허법원에 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특허법원은 오리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초코파이'는 원형의 작은 빵과자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콜릿을 바른 제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칭'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초코파이'에서 공통된 부분인 '초코파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칭에 불과하므로 앞부분에 표기된 '오리온'과 '롯데'의 차이로 인하여 양 상표가 다르다고 본 것이다[특허법원 1999. 7. 8. 선고 99허185 판결(확정)].
첫째, 초코파이와 같은 형태의 과자는 당시 국내에 출시된 바가 없었기에 이를 호칭할 적합한 보통명칭이 없었다. 초코파이는 이를 호칭할 적합한 명칭이 없는 상태에서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급격하게 보통명칭이 된 것이다.
둘째, 오리온은 '초코파이'만을 상표로 등록하여 사용하지 않고 '오리온'을 상표로 내세워 '오리온 초코파이'로 사용했다. 오리온은 '초코파이'만을 독자적으로 사용한 바가 없었기에 소비자들은 과자업계에서 잘 알려진 '오리온'을 더 강하게 인식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상표 관리의 중요성이나 등록된 상표가 보통명칭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오리온은 경쟁업체가 '초코파이' 상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거나 언론매체에서 초코파이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칭처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코파이'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등록된 상표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상표를 지키는데 실패하였지만 현재까지도 초코파이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2021년 글로벌 연매출은 5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판매량이 약 34억 개에 이르고 이를 일렬로 세우면 지구 5바퀴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초코파이'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칭이 되었음에도 오리온 초코파이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리온은 초코파이에 '마음'을 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눈빛만 보아도 알아~그냥 바라보면~마음속에 있다는 걸~" 마음속에 그리운 향수를 남기는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 CM 송이다.
1989년부터 시작된 오리온 초코파이 '情(정)' 캠페인 광고는 '이사 가는 날', '삼촌 군대 가는 날', '할머니 댁 방문' 등으로 이어졌고 가족 간의 '정', 이웃 간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情(정)' 캠페인 광고를 접한 수요자들은 여러 종류의 초코파이 중 자연스레 '情(정)'이 표기된 제품을 집어 들었다.
'情(정)' 캠페인은 해외에서도 통했다.
오리온의 '情(정)' 캠페인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리온은 각 나라에 특성에 맞게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한 단어를 선택하여 상표로 사용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仁)', 일본에서는 '미(美)',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띤(Tinh)’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진 사람을 가장 높게 생각하는 중국에서는 '인(仁)'을, 맛있고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일본에서는 '미(美)'를, 우리나라와 같이 '情(정)'을 중시 여기는 베트남에서는 정을 뜻하는 '띤(Tinh)’을 선택한 것이다. 각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는 놀라운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빼앗겼지만 '마음'을 훔쳤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정(情)'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놀랍게도 초코파이를 빼앗겼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치면서 다른 초코파이와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다른 초코파이에 없었던 가족과 이웃 간의 따뜻한 정(情)이 오리온 초코파이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초코파이는 브랜드를 빼앗긴 것이 아닌 오히려 수요자들이 그 맛있는 빵을 초코파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희생한 것은 아닐까. 광고 CM 송처럼 말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오리온 초코파이라는 것을 알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