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 OO이 엄마로서 당신한테 굉장히 감사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건강 잘 챙겨서 OO이한테 좋은 엄마 아빠가 됐으면 합니다. 언제나 내가 건강해야 주변을 챙길 수 있는 법이니 치료 잘 받고 건강히 복귀하길 바라봅니다."
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인가, 엄마가 전 남편에게 내 병증과 입원 소식에 대해서 알렸다. 그러고 나서 전 남편에게로부터 위의 메시지가 왔다. 참, 그 사람답다고 생각했다. 딱 할 말만 하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전 남편을 생각하면 풀밭이 떠오른다. 보드랍고 넓고 햇빛이 잘 쬐는 풀밭 말이다. 전 남편과 결혼하기 직전에 나는 다른 사귀고 있던 남자와 파혼을 했다. 그 연애는 너무 힘들고 자기 파괴적이었어서 나는 정말 괴로웠다. 파혼한 지 세 달만에 나는 전 남편을 소개로 만났다. 우리는 정말 잘 맞았다. 나는 흡사 거친 물결을 맨몸으로 건너와 저 멀리 있는 풀밭으로 풀썩 뛰어든 느낌이었다. 적어도 그때만은 그랬다. 나는 이제야 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왔다고 생각했다.
신혼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때는 나도 일을 하고 있을 때여서 하루가 참 바쁘게 지나갔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터져나왔다. 자연임신은 절대로 된 적이 없었다. 유산 한 번 겪지 않았다. 그래서 2015년부터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배란일을 받아와서 숙제처럼 섹스를 하는 걸 반복해도 아이는 끝끝내 들어서지 않았다. 자포자기할 때쯤 2019년에 드디어 인공수정 3번만에 아이가 들어섰다. 임신 기간에는 평탄하고 무난하게 보냈으나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곪디곪아 버린 전 남편과 나의 관계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이를 보면서 살기에는 너무나 다른 우리들. 툭하면 잔소리하는 남편과 절대로 바뀌지 않으려는 나. 남편은 내게서 나가떨어졌고 나는 혼자 자꾸만 고립되어 갔다. 사이에 끼어버린 어린 젖먹이는, 우리가 싸울때마다 울먹거렸다. 빼액빼액 우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다툼, 이혼을 결정한 날의 싸움은 정말 비참하게 끝났다. 니가 아이를 데려가니 내가 아이를 데려가니 하면서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전 남편은 아이를 아이 방에 가두고는 안방으로 와서 내게 화를 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어? 그러고도 니가 엄마야?" 하는 소리들.
2021년 1월에 별거를 하고 2021년 2월에 전세로 들어가서 살다가 2021년 6월에 이혼하고 2022년 3월에 집을 샀다. 이혼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가끔씩 전 남편과 아이 어릴 적 사진을 본다. 이 말도 브런치에 몇번을 쓴지 모르겠다. 나는 또 울고, 또 운다. 그때가 그리워서. 그때는 그 행복을 몰랐던 내가 안타까워서. 조금만 더 일찍 내 병증을 확신하고 인정하고 병원에 꼬박꼬박 다녔으면 이혼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혼 후에 조증이 심하게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이혼 당시에 자신감이 흘러넘쳤었다. 무슨 일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딸아이와 둘이 충분히 외롭지 않게 살아가리라 장담했다. 그러나 병증은 심하게 도졌고 나는 아이를 방치하다시피 내팽개쳐놔 버렸다. 조금 분하다. 이혼하고 누구보다도 더 잘 살아가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현실은 입원 신세라니. 내 병이 나는 정말 정말 싫다.
전 남편이 넌지시 말했다. OO이가 조금 더 크면 자기가 사는 곳으로 이사오라고. 그러면 왔다갔다 하면서 가까이 볼 수 있을 테니 좋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다. 일단 수도권으로 가기가 싫다. 전 남편과 가까운 곳에서 살기도 싫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내심 기뻤다. OO이를 정말로 사랑하는가 싶어서. OO이를 위해서라면 나와 가까이 사는 것조차 감당하겠다는 말로 들려서. 그가 재혼을 안 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OO이를 보살펴주는 친아빠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딸아이가 독점할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그의 자식은, 그의 혈육은 OO이뿐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여자와 만나서 다른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 OO이만 듬뿍 아빠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전 남편. 2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면접 교섭을 어긴 일이 없었다. 물론 양육비도 말이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동물원도 가고 아쿠아리움도 가고 놀이공원도 간다. 내가 못해 주는 것들을 전 남편은 해주고 있다. 그래, 개인적인 감정들은 차치하고 나 역시 당신에게 감사하다. 우리 딸을 금지옥엽으로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전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 전 남편과 심하게 싸웠을 때조차 나는 저 인간이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문제는 나다. 내 병증이 빨리 잡혀서 아이 양육을 잘해야만 한다. 물론 내가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내가 잘 살아야 아이도 케어할 수 있으니까. 전 남편의 메시지에 나는 힘을 얻는다. 우리 딸을 목숨처럼 보살펴주는 이가 나 말고도 또 있다는 걸 알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