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나오는 야산을 넘어

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13

by 두지

“아니 뭔데? 우린 왜 느닷없이 이런 뱀 나오는 야산을 걷고 있는 건데?”


수풀에 가려 사라졌다 슬며시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더스틴의 등짝. 그 등짝에 대고 외친다. 시끄러워, 소리 지르면 뱀 나와. 더스틴이 속삭이듯 말한다. 야, 소리를 질러야 뱀이 사람 있는 거 알고 달아나지! 내가 더 큰 소리로 외친다. 수지, 네가 뱀에 대해 뭘 알아? 큰 소리 듣고 공격적이 돼서 콱 물어버리면 어쩔 건데?


“이 씨…. 그냥 터널을 통과해 걸었어야 하는데….”

앞을 가리고 선 수풀을 양 팔로 걷어내며 내가 말했다. 야산에 들어선 이유는 터널 때문이었다. 잠곡리에서 사창리로 넘어가려면 1,533m 길이의 하오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우리의 평균 속도 시속 3km를 감안하면 삼십 분은 걸어야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건 싫었다. 터널 안 텁텁한 공기도, 좁고 어두운 공간도, 차선에 바짝 붙은 갓길도,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차들도, 차들이 통과할 때 나는, 새끼 잃은 짐승의 울음 같은 낮은 소리도. 그러다 발견했다. 터널 오른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 평화롭고 완만해 보이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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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감사해라. 평소에 세상을 세세하게 보는 섬세하고 다정한 눈을 가진 덕에 이런 길을 발견한 거야,라고, 오솔길을 걸으며 내가 지껄였더랬지. 두 사람이 함께 걷기에도 충분하게 넓었던 길은 한 사람이 걷기에도 비좁은 길로 이어졌다. 길 중간중간 방공호 비슷한 게 보였다. 모래주머니도 쌓여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커다랗고 시뻘건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군사들 훈련하는데인가. 그만 가고 왔던 길로 돌아갈까? 이 길이 사창리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더스틴이 말했다. 싫어. 내가 대꾸했다. 네 말대로 여기가 군사들 훈련하는 데면 길이 있겠지. 터널 위로 나있는 길이니 터널 건너로 이어지지 않겠어? 이미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건 정말 싫어. 그냥 가. 터널이 30분 거리니까 야산도 금방 끝날 거야.


하지만 야산은 끝나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걸으면 걸을수록 길의 끝 대신 수풀이, 나무가, 뱀이 나왔다. 뱀을 세 마리나 봤다. 길은 어딘가 닿으라고 있는 거 아닌가? 왜 이 길은 걸을수록 점점 더 깊고 좁은 숲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는가? 길이 아니기 때문인가? 악! 나의 비명. 왜, 뭐야, 괜찮아? 더스틴이 묻는다. 그의 얼굴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미끄러졌어. 내가 말했다. 수풀이 빽빽한 야산의 밑바닥은 축축했다. 풀에 잔뜩 덮인 길은 미끄러웠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발로 더듬어 걷다 미끄러졌고, 그 탓에 얼굴이 나뭇가지에 긁혔다. 우씨…. 나는 얄궂은 나뭇가지를 노려봤다. 저 앞으로 뭔가가 휘릭, 움직인다. 뱀, 또 뱀이야.


“야 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해? 지도 좀 확인해봐.”

더스틴이 멈춰서 물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뭐야. 아직 반도 안 왔어. 걸은 지 40분이나 됐는데. 40분이면 터널 통과하고도 남을 시간이잖아. 내가 말했다. …. GPS가 잘 안 터져서 그러는 걸 수도 있어. 야산이니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기계 대신 내 눈을 믿어보기로 하고 앞길을 가늠해본다. 코 앞에 닥친 수풀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디 있는 건지, 얼마큼 온 건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대체 걷다 보면 끝이 있긴 한 건지.


“아까 본 그 뱀 있잖아…. 그거 독뱀이다.”


얼굴이 다이아몬드 형태였잖아. 그건 살모사야. 독뱀. 그러니까 조심해. 더스틴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알았어. 대꾸는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독뱀을 조심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 앞을 스쳐간 뱀을 ‘독뱀’이라 결론지은 후, 아무도 말이 없다. 우리의 두 입은 다물어졌으며 네 발은 느려졌다. 혹여나 또 뱀이 튀어나올까 한 발 한 발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에너지바 반 개와 물 조금으로 아침을 때운 터에 배가 고팠는데. 강렬했던 허기와 갈증도 사라져 버렸다. 배낭의 무게도, 어깨의 통증도, 두 발의 피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엔 오로지 뱀만이 존재한다. 뱀과 함께하는 무아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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