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노코도를 걷자 07
“와, 너무 예뻐….”
걷기 좋은 오솔길.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집들. 저 너머로 보이는 단풍이 물든 작은 산. 타카하라 마을에 도착했다. 오솔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파도처럼 펼쳐진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이런 곳일까.”
내가 말했다.
“영화 비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찾던 파라다이스가 이런 곳일까.”
더스틴이 말했다.
“무릉도원이나 파라다이스는 좀 오버인가…. 근데 적어도, 내가 일본에서 늘 찾고 싶었던 곳인 건 맞아. 우리 일본 오면, 지하철 타고 도심 아무 데나 내려서 무작정 걷잖아. 일본 작은 마을들 구경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찾던 곳이 바로 여기야…. 타카하라 마을은 키리노 사토라고도 불린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뭔데?”
“안개의 마을. 너무 예쁘지 않냐! 이른 새벽이면 온 마을이 안개에 뒤덮여서, 산 위에서 보면 옅은 담요를 덮은 것 같은 모습이래. 상상만 해도 아름답지 않냐!”
마음 같아선 타키지리에서 숙소를 잡고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처박혀있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여기는 일본이니까. 방값 최소 10만 원. 밥값까지 하면…. 게다가, 타키지리에는 애초에 숙박시설이 없다.
“커피라도 마시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어.”
더스틴이 말했다. 쿠마노코도 지도에는 타키지리 마을에 커피숍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단풍이 떨어진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커피집이 나왔다. 커피 케야키.
“이랏샤이마세.”
미닫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반가운 친구가 된 기분이다. 커피숍은 나무로 지어진 작은 공간이었다. 나무 천장에 달린 은은한 조명. 계산대 옆으로 보이는 LP플레이어와 LP판들. 음악가들의 공연 소식이 게재된 작은 팸플릿. 손그림이 그려진 엽서.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면 창. 바깥 정원에는 중년의 커플이 앉아있었다. 산세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그들이 일어나 양 손을 뻗었다. 안개의 마을, 아름답다!라고 한껏 표현하듯.
“도죠.”
아주머니가 테이블 하나를 가리켰다. 천천히 나무 의자를 끌어내 그 위에 앉았다. 조심스럽다. 신선한 바람내음 가득한 카페 안 공기가, 반나절 동안 땀을 흘린 우리 냄새로 어리럽혀질까봐. 잘 정돈되어 있는 카페 바닥이 흙길을 오래 걸은 피로한 발에 더럽혀질까 봐. 아주머니가 얼음물 두 잔을 가져다주셨다. 우리는 메뉴판을 찬찬히 살폈다. 아주머니가 계산대 옆으로 가더니 LP플레이어를 만지작거렸다. 처음 들어보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잔잔하고 분위기 좋은 음악이 카페 안 공기를 가득 채웠다.
“야, 너무 좋아….”
더스틴이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만 같다. 메뉴는 단출했다. 가격은 쌌다. 라멘은 300엔, 카레를 550엔. 라멘과 카레를 하나씩 시켰다.
“왜 이렇게 싸지. 동네에 카페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 값을 좀 더 쳐서 받아도 될 텐데. …. 너무 좋아…. 우리 뜨내기인 거 뻔히 아실 텐데. 다시는 오지 않을 손님일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음악도 틀어주시고. 아주머니 개인 취향이 한껏 드러난 이 카페 공간 자체도 좋고…. 경치도 또 저렇게 아름답고….”
내가 말했다. 음식이 나왔다. 얼룩 하나 없는 유리가 덮인 테이블 위로 그릇 두 개가 놓였다. 라멘 위에는 파가 송송 올라가 있었다. 재료가 잔뜩 들어간 카레는 먹음직스러웠다.
“이게 인스턴트 라면일 거 아냐. 여기서 라면을 직접 만드시진 않으실 테니까. 근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해서 주셨어. 맛도…. 맛있어.”
더스틴이 말했다.
“맛있어…. 나 뭔가 눈물이 날 것 같아. 모든 게 너무 정성스럽잖아. 난 정말 이런 걸 배워야 해. 작은 거 하나에도 정성을 쏟아붓는 이런 태도 말이야. 인스턴트 라면을 하나 끓여도, 작은 카페를 하나 꾸리더라도…. 난 뭘 해도 대충이잖아.”
“맞아. 일본에 오면 늘 느끼는 게 그거야. 사람들이 다들 정말 정성이다. 그러면 나도 다짐하게 돼. 정성 들여 살아야겠다고.”
“응. 정성을 쏟기 위해선 내가 정성을 쏟고 싶은 대상을 찾아야겠지. 그렇게 정성을 쏟으면, 그 대상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게 다는 아니겠지. 아주머니도 돈 벌려고 하시는 장사일 테니까. 근데 아무리 돈 때문에 하는 장사고 카페지만,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면 돈이 다가 되는 것에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 그리고 나는 60대 정도 되신 아주머니가 이렇게 개인 취향이 있다는 것도 너무 멋지고 좋은 것 같아. 한국에서는 많이 못 그러잖아. 아무래도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가 일본보다는 훨씬 길었으니까, 개인 취향 같은 거 찾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것 같아.”
“홈메이드 요거트.”
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즈음,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요거트를 가져다주셨다. 블루베리잼이 살짝 올려진, 하얀 요거트가 담뿍 담겨있는 작은 그릇.
“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황송해진 우리는 벌떡 일어나 90도 인사를 했다. 우리 따위가 뭐라고 이런 감동 서비스까지…. 우리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상큼한 요거트를 입에 넣었다. 세상에, 맛있다.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다. 고작 800엔 난치 먹고 몇 시간을 앉아있을 순 없으니. 정원으로 가서 경치 한 번 구경하고, 카페 문 밖으로 나가 짐을 챙겼다. 앞 가방을 메고, 뒤로 배낭을 멘 후, 그 무게에 새삼 놀라 휘청대며 일어났다. 요란스러운 움직임을 들은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주머니가 고개를 꾸뻑 숙이며 외쳤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또 외친다. 그리고 또 외친다. 한참 쉬다 다시 배낭을 멘 탓에 균형을 잡느라 휘청거리는 모습에 아주머니가 호호호, 웃음을 터뜨리셨다.
“쏘 매니 백! (가방이 너무 많네요!)”
호호호호, 아주머니가 웃었다.
“쏘 헤비! (너무 무거울 것 같아요!)”
호호호호, 아주머니가 웃었다. 웃음이 많으신 분이다. 아주머니는 계속 호호호, 호호호, 꺄르르 웃으시며 우리를 뒤쫓았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주머니가 우리 뒤통수에 대고 열 번은 더 외쳤다. 몇 번이고 뒤돌아 답례를 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어 그만뒀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답례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인사를 하셨다. 황송해 미쳐버리겠다.
“우리, 오길 너무 잘한 것 같아. 쿠마노코도.”
내가 말했다. 그리고 호호호호, 꺄르르, 아주머니처럼 실컷 웃어버렸다.